별은 왜 빛나는가 – 고흐의 「아를의 별이 빛나는 밤」

Photo by Kim Dong Won
고흐의 작품 「아를의 별이 빛나는 밤」

선명하게 남아있는 밤하늘에 대한 기억이 있다. 어느 하늘이나 별이 반짝이고 있다.
그 기억 하나를 들추어 보면 오래전 어둔 밤에 대관령 옛길을 걸어 강릉쪽으로 고개를 넘어가던 날이 나온다. 그 걸음의 끝에서 마을에 도착했을 즈음 길거리에 놓인 빈평상에 몸을 눕히고 한참 동안 밤하늘을 올려다 보았었다. 하늘엔 그 어둠을 모두 메우고도 남을 정도로 별이 촘촘했지만 여전히 그 밤은 어둡기만 했다. 아무 생각없이 밤하늘의 별을 올려다 보기만 했었다.
용문에 있는 친구의 별장에서 하루를 묵은 날도 밤하늘의 기억 하나를 내게 남겨주었다. 앞산의 능선을 어둠이 지우고 켜놓은 집안의 불빛만 덩그러니 남게 되었을 때 하늘에 별들이 촘촘히 떠 있었다. 제 무게를 이기지 못해 스르르 아래쪽으로 쓸려내려올 것만 같이 많았지만 밤하늘에 둥둥 떠있는 별들은 머리맡에서 제 자리를 지키며 꼼짝도 하지 않았다. 그 날도 하염없이 별만 쳐다보았다.
그리고 드디어 고흐의 별밤 앞에 섰다. 그의 별밤은 「아를의 별이 빛나는 밤」이라고 했다. 항상 별밤은 평상에 누워 위로 올려다 보았었는데 그의 밤은 그 앞에 모인 수많은 사람의 까만머리 저편에서 정면으로 반짝이며 수직으로 서 있었다. 사람들의 머리가 밤하늘의 어둠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또 마치 내가 그림의 부력으로 하늘만큼 공중으로 몸을 부양했다는 생각도 들었다.
수없이 밤하늘을 올려다 보았지만 한번도 묻지 않았었다. 그러나 고흐의 별밤 앞에 서자 마치 그 순간을 위하여 오랫 동안 예비해 두었던 것처럼 질문 하나가 그림의 앞으로 툭 튀어나갔다.
별은 왜 빛나는가.
고흐의 별밤은 별이 빛나는 아를의 밤하늘을 보여주기 위해 내 앞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질문에 답하기 위해 그 자리에서 밤하늘을 펼치고 있었다.
별은 어둠에 덮인 밤하늘이 사실은 짙은 녹빛이란 것을 알려주기 위해 빛나고 있었다. 내가 수없이 올려다보며 길어내도 길어내도 어둠밖에 나오질 않을 것 같다고 느꼈던 그 칠흑의 하늘이 사실은 짙은 녹빛이었다. 밤하늘의 어둠은 너무 깊어 그 하늘의 어둠을 벗겨내고 내일 날이 밝는다는 것도 의심스러울 때가 많았다. 그러나 고흐의 별밤은 그 하늘의 어둠이 가리고 있는 것이 우리가 생각하는 푸른 하늘이라기 보다 짙은 녹빛의 풀밭에 가깝다고 말하고 있었고, 별빛은 바로 그 짙은 녹빛을 우리들에게 어렴풋이 보여주기 위해 그 어둔 밤에 밤새도록 반짝이고 있었다.
어둠의 뒤쪽으로 내비치는 하늘이 녹빛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일까. 이제 별은 별로 보이질 않았다. 마치 빛을 꽃잎처럼 펴든 꽃이란 느낌이 더욱 강해졌다. 별이 꽃이라면 밤하늘이 짙은 녹빛을 띌 것은 더욱 자명해진다. 꽃은 풀밭에서 필 것이기 때문이다. 난 잠시 고흐의 하늘이 하늘이 아니라 무성한 풀밭이란 환시에 빠진다. 그 순간 하늘과 지상이 그 위치를 바꾼다. 하늘은 하늘이 아니라 또 하나의 지상이다. 아마 우리들이 꿈꾸는 지상이 하늘일지도 모르겠다.
그 꿈의 하늘에선 별들이 꽃처럼 피고 지며, 그때면 별을 따라 우리들의 꿈도 피어난다. 그 꿈은 하늘에 머물지 않고 지상으로 내려와 강을 물들이고, 또 우리의 지상마저도 물들인다. 그리고 어둔 밤에 잠에 들지 않고 그 밤길을 나온 한쌍의 남녀를 물들인다. 강으로 길게 뿌리를 내린 가로등의 반영은 어찌보면 별들이 지상으로 하늘의 꿈을 흘려보내는 빛의 수로인지도 모르겠다.
가슴은 쿵쾅쿵쾅 뛰었고, 별들은 꽃처럼 빛나면서 우리들의 꿈은 별에서 희망을 보는 것이 아니라 이 지상에서 어둠을 벗겨내고 짙은 녹빛의 푸른 생명감을 다시 밝히는 것이라고 말하고 있었다. 그때나 지금이나 인간과 자연의 푸른 생명감을 짓누르는 세상의 어둠이 문제이다.
수없이 밤하늘을 올려다보면서 한번도 묻지 않았던 질문이 있었고, 그 대답을 들었다. 고흐의 별밤 앞에 섰을 때 그 질문은 드디어 별은 왜 빛나는가라고 묻고 있었고 대답은 하늘이 짙은 녹빛이란 것을 알려주기 위해 반짝이고 있는 것이라고 속삭여 주었다.
녹빛의 푸른 생명감이 되살아날 내일을 위해 고흐의 별밤이 밤하늘을 밝히며 반짝거리고 있었다.

Photo by Kim Dong Won
2011년 9월 25일 서울 예술의 전당에서

**트위터 친구 Ranunculus님이 표를 보내주셨다.
고흐의 그림 앞에 섰을 때
표를 보내준 Ranunculus님께
감사의 말을 꼭 챙겨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의 쿵쾅거리던 가슴의 박동소리와 함께
그림에 대한 느낌을 적은 이 글로 고마움을 표한다.
전시회는 9월 29일까지로 연장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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