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을 다니다 보면 유난히 감성을 자극하는 곳이 있다.
대개는 도시와 멀리 떨어진 시골이 더더욱 그러하다.
맑은 날보다는 비오는 날이 더더욱 그러하다.
9월 11일의 아침 시간에
나는 도시를 멀리 벗어나 정선의 화암약수터에 있었고,
밤새 내리던 비가 아침에도 여전히 세상을 적시고 있었다.
산책길에 나섰다가 그곳의 풍경으로
사랑 연서 하나를 자연스럽게 엮게 되었다.
하지만 언제나 그렇듯이 내게 연애 편지는
내 마음을 전하는 말들이기 보다
사랑의 텍스트로 포장된 빈 상자에 가깝다.
그러니 내가 산책하는 동안 쿨쿨 단잠을 잔 그대여, 조심하시라.
조금이라도 방심하면 그 상자는 어디로 배달될지 모른다.
나는 사랑에 관한한 마음으로 채워진 상자를 상대에게 내미는 법이 없다.
누구든 빈상자를 스스로 채우는 사람이 내 사랑의 임자가 된다.
난 텍스트로 둘러싸는 사랑의 포장에 아주 능하다.
오늘 아침엔 비가 옵니다.
세상이 온통 비에 젖습니다.
비가 올 때면 종종 사랑을 꿈꿉니다.
마치 캡슐에 집어넣듯 빗방울에 담는 내 사랑을 꿈꾸죠.
빗방울에 사랑을 담는 순간, 비오는 날의 세상은 어디나 내 사랑에 물듭니다.
아마도 그대는 지금 잠에 들어 있겠지요.
하지만 그대가 잠에든 이 아침이 오늘은 내 사랑에 물들고 있습니다.
일어나 당신이 보는, 비에 젖은 세상이,
알고 보면 그대에 대한 내 사랑으로 물들여 놓은 세상입니다.
당신은 알고 있을까요, 문득 일어나 바깥을 내다볼 때 바로 그 사실을.
이 비오는 날의 아침 산책길에서
모양이 그대에 대한 내 사랑의 모습을 닮은 잎을 보았습니다.
잎의 사랑은 줄기를 따라 끊임없이 이어집니다.
잎은 마치 줄기를 따라가며 남긴 사랑의 발자국 같습니다.
오늘 산책길에 내가 하나하나 찍으며 걸어가는 발자국도
그대에 대한 내 사랑이 될 것입니다.
나는 천천히 걸음을 옮깁니다.
계곡을 건너는 목재 다리의 난간에
비에 젖은 나뭇잎 하나가 몸을 걸치고
풀로 붙인 듯 찰떡같이 붙어있습니다.
가끔 내 사랑도 그렇습니다.
비에 젖은 난간의 이파리처럼 당신에게 찰싹 달라붙습니다.
그대는 나를 떼어내기 어렵습니다.
누군가의 소망이 작은 돌들을 모아 탑을 만듭니다.
사랑도 그렇습니다.
사랑의 소망이 모이면 그것이 사랑의 탑이 됩니다.
하루를 살고 이틀을 살고, 그 하루 이틀이 쌓여 10년이 되고 20년이 됩니다.
알고 보면 살아가는 날들로 쌓아올리는 세월의 탑이 사랑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우리의 탑은 돌탑보다는 훨씬 높으리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노란 꽃 하나가 길게 목을 빼고 있습니다.
기다림이 꽃을 자라게 합니다.
아마 나도 그대를 생각할 때면
언제나 목을 길게 뺀 꽃으로 서 있었을 것이 분명합니다.
다행히 꽃은 비에 젖어 있습니다.
난 꽃이 기다림 끝에서 드디어 오늘 사랑에 젖었다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굳이 그대를 기다리는 길목에 나무로 서서 기다려야 한다면
나는 자작나무가 될 생각입니다.
자작나무는 내게 아무 것도 가린 것없이
순백의 마음으로 그대를 기다리는 나무입니다.
자작나무가 너무 많아 그대가 어느 나무가 내 마음인지 헤아리기 어렵다 해도
나는 그 모든 자작나무를 고집할 생각입니다.
사랑도 기다림으로 모아놓다 보면
하나가 아니라 둘 셋으로 자라는 법이니까요.
다시 나무 다리 하나를 건너다
나무 판떼기와 판떼기 사이의 좁은 허방으로 뿌리를 내린
강아지풀 하나를 보았습니다.
비가 올 때마다 빗물이 줄줄새는 허망한 자리였는데
그 자리에서도 강아지풀은 용하게도 생명을 일구었더군요.
사랑이란 어찌보면 비옥한 토양에서 가꾸어내는 풍요로운 결실이 아니라
허방으로 모두 흘려보내는 빗물의 와중에서
겨우 붙잡은 한두 방울의 빗물로 가꾸어낸
목마른 생명에 가까운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니 내가 그대에게 언제나 넘쳐나는 사랑의 단물을 요구한다면
그건 사랑이 아닙니다.
그대의 사랑이 모두 허방으로 빠지고
내가 그저 단 몇방울로 목을 축인다해도
그것으로 살아나는 것이 나의 사랑이겠지요.
빗물이 널판지와 널판지 사이로 모두 빠지는 나무 다리 위에서
생명으로 일어선 강아지풀 하나가 내게 말합니다.
사랑은 단 몇방울의 빗물로도 그 생명을 일으킬 수 있는 것이라고.
빗물은 모두 새지만 다리는 튼튼하여
나는 그 다리를 안심하고 건너 또 산책길을 걷습니다.
멀리 산위에서 안개가 피어오릅니다.
산이 안개로 일어나는 느낌이기도 합니다.
가끔 나는 내가 나를 버리고 당신으로 일어나는 느낌이기도 합니다.
그대가 일어나면 내가 일어나는 느낌이고
그대가 누우면 내가 눕는 느낌이기도 합니다.
내가 그대와 뒤섞입니다.
산과 안개가 뒤섞입니다.
꽃 하나를 보았습니다.
아마도 쑥부쟁이 같습니다.
하지만 철쭉의 무리들 속에 살다보니
꽃은 구별이가도 몸은 잘 구별이 가질 않습니다.
철쭉이 한창이던 시절엔 철쭉꽃을 얼굴로 가졌을 철쭉이
지금은 쑥부쟁이를 제 얼굴처럼 내밀고 있습니다.
우리도 이만큼 뒤섞여 몸과 얼굴을 서로 구별하기 힘들어 졌을까요.
범람하는 초록속에 쑥부쟁이의 얼굴은 확연했지만
몸은 제 몸을 버리고 있었습니다.
나도 이제 내 몸은 내 몸이 아닌 듯한 느낌입니다.
지금쯤 그대도 잠에 든 그대의 몸이 산책길에 나선 느낌일지도 모릅니다.
나무 사이로 놓인 벤치 두 개를 만납니다.
아마도 그대와 같이 걸었다면 하나는 비워둘 것입니다.
둘에게 벤치는 둘이 필요하지 않습니다.
단 하나만 있으면 그만이죠.
사랑할 때의 둘은 무엇이든 하나만 있으면 그것으로 둘을 채웁니다.
하나는 비워두어도 좋을 때가 바로 우리가 사랑할 때입니다.
떨어진 나뭇잎 하나가 나뭇잎에 찰싹 붙어 있습니다.
바람이 흔들어도 떨어뜨릴 수가 없습니다.
비가 없었다면 어림도 없는 일이죠.
비는 사랑의 메신저임에 틀림없습니다.
서로 들러붙어 떨어지지 않도록 해줍니다.
사랑한다면 바람부는 건조한 날을 경계하고 비오는 날을 반길 일입니다.
다시 또 나무 다리를 만났습니다.
나무 네 개가 몸을 엎드려 다리를 만들어줍니다.
함께 살다가 길이 끊긴 작은 골짜기를 만난 날이 왜 없었겠어요.
훌쩍 몸을 날려 그 골짜기를 타넘었다면
우리는 다른 길을 갔을지도 모르겠어요.
하지만 사랑을 하나 둘 엮어 그 좁은 골짜기에
아마도 뗏목처럼 엮은 나무 다리를 놓지 않았나 싶어집니다.
건너뛰면 서로 제 갈길을 따로 가지만
사랑으로 엮은 나무 다리를 건넌 둘이 가는 길은
여전히 사랑의 길일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 듭니다.
골짜기로 물이 내려옵니다.
폭을 좁혔다 넓혔다 합니다.
걸음을 급하게 재촉하다 잠시 쉬기도 합니다.
사랑도 걸음을 급하게 재촉하다 잠시 쉬기도 하고 그랬을 것입니다.
작은 소로가 나무 사이로 흘러갑니다.
사랑의 길이 있다면 아마도 넓은 찻길보다는
이런 숲속의 작은 소로를 닮았겠지요.
기계의 속도에 몸을 싣고 씽씽 달리는 길이 아니라
몸이 감당할 느린 속도로 천천히 걸어가며
서로의 체중으로 길을 다지게 될 거예요.
숲속의 작은 길로 사랑이 흘러가고
내가 그 사랑을 따라 걷고 있습니다.
소나무 잎이 물방울을 머금었습니다.
그 물방울에 빛이 담깁니다.
소나무 잎의 끝에서 물방울이 반짝거립니다.
흔들면 폭죽처럼 터질 것만 같습니다.
우리가 한창 때, 서로 사랑에 젖었을 때도 저리했을 까요.
건드리면 우리도 후두둑 빛을 내며 물방울을 떨어뜨릴 것 같았을까요.
소나무의 사랑을 방해하지 않으려 그 밑을 조심조심 걸었습니다.
이번에는 나무숲 가운데 벤치가 하나 보입니다.
둘이 앉기에 좋을 듯 합니다.
주변은 온통 푸른 풀로 물들어 있습니다.
난 알고 있습니다.
이 푸른 빛이 비가 물들인 사랑의 빛이란 것을.
텅빈 벤치의 주변으로 비가 물들인 푸른 사랑이 지천입니다.
다음에 그대와 함께 이곳에 오면
그물 침대에 서로 몸을 누이고 흔들흔들거리며 시간을 보내다 갈 생각입니다.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서로 하나되어야 한다고 말하지 마십시오.
오래 살다보면 둘은 떨어져 있어도 하나이고
하나로 뒤섞여도 하나입니다.
푸른 그대도 주황의 나이고, 주황의 그대도 또 푸른 나입니다.
나뉘어져 있어도 하나인 신비가 사랑 속에 있습니다.
우린 여유롭게 그물 침대에 누워 하나로 흔들리다 갈 것입니다.
비오는 날의 아침 산책길,
걸음 하나마다 사랑을 걷고 있습니다.
4 thoughts on “화암 약수터의 아침 산책길에서 쓰는 사랑 연서 – 영월, 정선 기행 번외편”
이 연애편지 작은 책으로 만들어 가방에 넣고 다니고 싶습니다. 시인이 될 수 없는 제 감각이 참 원망스럽기까지. 감사한 월요일 아침. 건조한 곳에서.
저도 시인이 아닌 걸요, 뭘. 시인은 김주대라는.
고흐 그림 보게 해주신 것에 대한 작은 감사라도 되었으면 싶어요.
본편들도 아름다웠지만, 번외편은 주제가 또렷해서 그런지 정말 아름답습니다.
다 쓰고 남은 사진이 아니라, 아껴두었던 비밀스런 사진들을 한 장 한 장 사알짝
수줍게 올리는 모습이 절로 그려집니다.
덕분에 한 번도 가본 적 없던 영월과 정선이 별로 낯설지 않은 곳이 됐습니다.
언젠가 황동규 시인이 이곳을 다녀가면서 쓴 시들이 있는 것 같아요. 몰운대행이라는 제목의 시집이 있으니 말 다했죠, 뭐. 그때는 그냥 그러려니 했는데 이곳은 시적 감성을 자극하는 측면이 많은 곳이구나 하는 생각이 드는 곳이었어요. 이곳의 낡고 오래된 여관에서 며칠 묵고 싶더라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