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오후 3시에 4대강 사업에 대한 반대의 뜻을 모아
생명 평화 미사를 올리던 두물머리 강변에서
아주 큰 규모의 미사가 봉헌되었다.
미사는 9월 26일 월요일에 있었고
시간은 1시간을 앞당겨 오후 2시부터 이루어졌다.
공식적인 명칭은
4대강 사업 중단과 팔당 유기농 단지 보존을 위한
전국 집중 두물머리 생명평화 미사이다.
같은 시간 다른 곳에선 경기도가 주관하는 유기농 대회가 열리고 있었다.
그런 측면에서 보면 두물머리는 이율배반의 공간이다.
유기농 대회란 것이 유기농을 더욱 발전시시키고 확대하기 위한 대회일텐데
오히려 두물머리에선 그동안 유기농으로 농사를 짓던 농민들을
그곳에서 몰아내려는 정부의 만행이 자행되어 왔기 때문이다.
유기농을 진작시킨다면서
그곳에서 유기농의 기원을 열었던 농민들을 쫓아내려는 이율배반이
이명박 정권 아래서의 두물머리가 처한 운명이다.
미사는 그 이율배반을 확연하게 드러내면서
그냥 그곳에서 농민들이 계속 농사를 짓는 것이
그 이율배반을 정리하는 길임을 알린다.
그러나 농민들이 예전의 그 평화롭던 농터로 되돌아가는 일이 쉬운 일은 아니다.
그날 사람들이 그곳에 모인 것도
그 쉽지 않은 일을 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모아
농민들과 함께 이루려는 뜻에서 였을 것이다.
그 날의 미사는 곧 잔치이기도 했다.
지키려는 사람들은 주먹을 쥐고 구호를 외치게 되는 법이지만
그날의 사람들은 그보다는 기도와 잔치의 즐거움으로 마음을 모았다.
사진으로 돌아본다.
양이 좀 많다.
버스가 양수리로 들어가는 다리를 건널 때
아래쪽으로 두물머리가 엮어내는 풍경이 눈에 들어온다.
강에는 잔물결이 일고 있었다.
풍경은 평화롭기만 하다.
조금 늦어 조급해진 마음도 이 풍경의 앞에선 잔잔하게 가라앉는다.
사제들이 입당하고 있다.
나중에 소개할 때 보니
힘을 보태려 멀리 제주도에서도 올라오신 신부님들이 네 분이나 계셨다.
제주의 신부님을 소개하면더 단상의 신부님은
그럼 내달 4일에 제주도에서 봐요라고 하신다.
신부님들은 독수리 오형제도 아닌데
삽질 앞에서 위기에 처한 이땅을 지키기 위해
두물머리로, 제주로 아주 빠쁜 몸들이 되셨다.
미사가 열리는 이곳은 사실은 원래는 유기농 단지였다.
비닐하우스가 늘어선 것이 이곳의 풍경이었으나
정부의 협박에 못이긴 농부들이 떠나면서 쫓겨난 땅이 되었다.
오늘 농민들이 쫓겨난 그 땅에서 미사가 열리고 있다.
농민들을 쫓아내자 사제들과 신자들이 그 땅을 지키겠다고 찾아왔다.
미사의 집전은 천주교 수원교구의 이성효 주교님이 맡아주셨다.
여전히 두물머리의 농터를 지키고 있는 이곳의 농민 서규섭님.
농터를 지키려는 농민들과 함께 싸우고 있는
팔당공대위의 유영훈 위원장님.
매일 오후 3시의 미사에서 하루도 빠짐없이 사회를 보며
오늘이 있기까지 미사를 이끌어온 두물머리 김국장님.
지금까지의 그 오랜 미사가 하루하루 쌓인 것이 오늘의 미사이기도 하리라.
오늘은 뒤쪽에서 이것저것 도우러 다니시느라 바쁘시다.
두물머리의 미사에 매번 커피와 떡을 보내주시는 클라라님, 그리고 친구분.
이 날은 미사장 입구에 마련된 천막 아래서
두물머리의 후원금 모금을 위한 의류 판매 봉사를 하셨다.
주교님은 자유주의와 법치주의가
이 세상에 모든 이들의 자유와 정의를 가져온 것이 아니라
오히려 돈가진 자들만 자유를 누리는 불평등의 세상과 박해를 가져왔다며
그것의 현실을 보여주는 것이 이곳에서 쫓겨나는 농민들이라고 했다.
주교님 말대로 이곳에선 농사지으며 살게 해달라는 농민들의 염원이
법의 이름아래 짓밟히고 있다.
이날 모인 인원은 천명 가량된다고 한다.
딱 하늘의 뜻에 맞게끔 사람들을 모았나 보다.
천 명의 사람들이 하늘을 울려 끝내 이곳을 지켜냈으면 하는 바람이다.
이곳 두물머리를 지키고 있는 마지막 농민분들이다.
모든 분들이 보기만해도 농민이란 것을 한눈에 알아볼 수 있다는 느낌이 든다.
그냥 농민이 된 것이 아니라
농사를 지으면서 땅을 닮아버린 사람들이다.
하늘과 땅의 사이에 사람들이 있다.
하늘의 뜻으로 땅을 지키려는 사람들이다.
주교님이 강론 중이시다.
조용히 두물머리의 상황을 요약하고 그 의미를 말씀해 주셨다.
자주 봐서 얼굴은 아는데 아직 이름은 챙기지 못한 두물머리 농민분.
얼굴빛이 농토를 닮았다.
그냥 햇볕에 그을려선 나올 수 없는 빛이다.
두물머리 농민들이 이곳에서 나온 유기농 채소를 봉헌했고,
주교님이 환한 웃음으로 이를 받았다.
기도하시는 신부님의 얼굴에 땀이 송글송글 맺혀 있다.
농부가 농사를 지을 때도 주체할 수 없이 땀이 흐를 것이다.
이곳이 농사의 땅이기 때문인지
신부님이 기도하며 땀을 흘리고 계신 것이 아니라
땀흘려 기도를 경작하고 계시다는 느낌이었다.
영성체의 시간이다.
천주교에 대해 잘 모르는 나로선 이 시간의 의식이
음식먹는 것을 단순한 식사로 보지 않고
신의 은혜를 몸으로 받는 시간으로 보는 듯한 느낌이다.
지난 해 비워두었던 논에 올해는 씨를 뿌렸다.
이곳에서 아직 농사가 이루어지고 있다는 것을
이곳에 씨앗을 뿌려 키운 농사로 증명한다.
논으로 옮겨졌을 때 한뼘밖에 되지 않았던 벼가
벌써 사람들 허리춤을 가려줄 정도로 자랐다.
사람들이 익어가는 벼들 사이로 논둑길을 걸어 계속 미사장으로 모여든다.
위로는 차들이 빠른 속도로 달려가는 길이 보인다.
하지만 이곳을 찾는 사람들은 그 길을 버리고
천천히 걸어 이곳의 미사장으로 들어오고 있다.
땅에선 빠른 속도란 없다.
뿌려 거두려면 언제나 누천년 동안 변함이 없는 일정한 시간이 흐른다.
이곳의 사람들과 이곳을 찾는 사람들은
바로 그 땅을 지키고 싶어한다.
마음과 기도의 힘이란 가끔 얼마나 큰가.
그저 신부님들에게 고맙기만 하다.
또 사제가 걸어가는 생명과 평화의 길에 동참한 분들의 마음 또한
얼마나 고마운가.
외국인으로 보이는 신부님도 한 분 눈에 띄었다.
팔당 공대위의 유영훈 대표가 그간의 두물머리 상황을 정리하고
이곳 농민들의 입장을 밝혀주었다.
그냥 단순하게 정부의 정책을 반대하는 것이 아니라
이곳의 유기농을 지키면서
유기농 단지를 관광화할 수 있는 대안도 마련했다고 한다.
이러한 대안이 받아들여지지 않으면
두물머리 농민들은 각오가 되어 있으며,
그때 어떤 일이 벌어질지는 비밀이라고 했다.
비밀이라는 말에 사람들이 크게 웃었다.
서규섭 농민과 그의 예쁜 딸.
딸이 둘인데 가을이와 하늘이이다.
난 두 딸을 구별할 정도로 잘 알지는 못한다.
둘이 서로 손벽을 치는 모습이 정겹다.
수녀님들 종이판들고 구호를 외치다
내가 카메라들이대니 수줍어서 얼굴가리셨다.
미사 끝나고 신부님들이 펼친 노래 마당이 있었다.
순서를 기다리는 수녀님들이 흥겨워서 흐르는 노래에 동참하신다.
프란치스꼬 작은 형제회와 마리아 전교자 프란치스꼬 수녀회에서
직접 작곡한 곡을 선물했다.
수사님 한분의 머리 때문에 혹시 소림사에서 동참하셨나 했다.
프란치스꼬 수도회의 순서이다.
왼쪽은 수도회의 원장 윤종일 신부님이고 가운데는 최영선 수사이다.
자주 봐서 낯익은 분들이다.
최수사는 내 친구이기도 하다.
이곳을 찾게 된 것도 순전히 최수사 덕분이었다.
서규섭 농민과 딸이 맨 앞자리에서 공연을 관람 중이다.
간만의 흥겨운 시간에 종종 얼굴에 웃음이 피었다.
끝내 승리하여 그의 웃는 얼굴 마주하고
가끔 이곳의 농지에서 술한잔 하고 싶다.
많은 분들이 출연하여 이름을 다 기억을 못하겠다.
이 신부님은 앞의 신부님들이 너무 노래를 잘불러 부담감이 크지만
자신은 질보다 양으로 승부하겠다고 했다.
그러면서 하신 말씀… 제가 부를 노래는 5절까지 있습니다.
노래도 양으로 승부하는 방법이 있다는 걸 알려주신 고마운 신부님이다.
그러나 절망스럽게도 질도 갖추고 계셨다.
앞으로 양으로 승부하면 되겠구나 했던 나는 크게 절망하고 말았다.
신부님들 모여서 비밀 회의중이다.
아무래도 정부가 농민들의 대안을 받아들이지 않으면
농민들이 어떻게 나올지는 비밀이라는 유영훈 대표님의 말이 무척 궁금하여
그 비밀을 듣고 싶어 모인 것인지도 모르겠다.
내가 일찍이 그 노래 실력을 경험한바 있는 이상헌 신부님이 등장하셨다.
기타잡은 분은 최재철 신부님이다.
직녀에게와 윤도현의 사랑 Two를 불렀다.
청중들의 환호에 넘어가신 이상헌 신부님은
나 디스크 취입할까봐요라고 하셨다.
중간 휴식 시간에 함께 연대의 힘을 보태기 위해
다른 종교에서도 참석하여 마음을 나누어 주었다.
말씀하시는 분은 목사님이다.
신부님들의 노래 실력이 보통이 아니라며
아무래도 자신은 노래 실력이 모자라 목사가 되었나 보다고 하셨다.
같은 마음으로 함께 길을 가고 있다며
김용택 시인의 그 강에 가고 싶다를 외워주셨다.
공연의 압권은 김선태 신부님이었다.
다른 신부님들은 모두 옆으로 무대에 올랐는데
김선태 신부님은 앞으로 무대를 올랐다.
복장부터가 남다르다.
하얀 옷에 빽구두가 눈길을 확 끌어당겼다.
첫곡은 나훈아의 영영이었고 둘째 곡은 예쁜 당신이었다.
노래 중간에 현란한 스텝을 밟아 사람들을 모조리 쓰러뜨리셨다.
영영이란 노래를 소개할 때 온국민이 다아는 노래라고 했는데
나는 그것을 양양이라고 알아듣고 무슨 강원도 양양군의 노래인가 했다.
온국민이 다아는 노래라는데 나는 알 수가 없었다.
국민에서 밀려난 느낌이었다.
손을 한번 꼬았다 풀어주자 또 사람들이 쓰러졌다.
마지막으로 부른 노래는 백년 친구란 노래였다.
노래끝내고 옷을 갈아입은 모습을 보니 구두가 가장 먼저 눈에 들어왔다.
낡은 검정색 구두였다.
무대 위에서의 모습과 달리 분명한 신부님이었다.
김선태 신부님의 노래가 불러낸 흥에
이곳의 농민분들이 춤으로 즐거움을 얹어준다.
빨간 모자쓴 분은 최요왕이란 분이다.
마지막으로 밴드가 올라왔다.
기타치며 노래부르는 신부님은 이승주 신부님같다.
머리 때문에 빛나리란 애칭을 갖고 계신 거 같다.
바위처럼, 함께 가자 우리 이 길을 이라는 노래를 불렀다.
민중가요들이다.
노래에 앞서 왜 우리를 김선태 신부님 뒤에 배치했는지
불가사의하다고 말씀하셨다.
이때쯤 그늘이져 객석이 산그림자에 덮이게 되었다.
왼쪽이 먼저 그늘에 덮였고 오른쪽은 여전히 빛에 드러나 있었다.
신부님은 우리는 항상 왼쪽, 즉 좌에 앉아야 한다고 말씀하셨다.
좌에 앉으니 그늘이 져서 편안하지 않냐며
아주 노골적인 좌편향적 말씀을 하셨다.
마지막으로 남아계시던 신부님들이 모두 무대에 올라 합창을 하셨다.
왼쪽에서 세번째 신부님은
4대강 사업 반대 천주교 연대의 대표를 맡고 계신 조해붕 신부님이다.
내 평생 이렇게 재미나는 공연도 있나 싶을 정도로
아주 즐거운 시간이었다.
나는 몇 번 쓰러졌고, 몇번은 함께 노래불렀다.
어떤 노래에선 저절로 주먹을 쥐게 되었다.
그러나 옆에선 모두 박수를 치며 음을 맞추고 있었다.
주먹쥐고 결연하게 맞서는 것보다
즐거움으로 이기는 더 높은 차원의 싸움이 있는 듯 싶었다.
나도 슬그머니 주먹을 풀고 박수를 치며 노래 불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