맑은 날엔 선명한 건물들의 윤곽선 뒤로
그 사이를 메우고 있는 산들이 보였다.
흐린 날엔 건물의 윤곽마저 흐려졌고
그 사이를 메우고 있던 산들은 하나도 보이질 않았다.
건물의 윤곽들 사이로
산이 부드럽게 얼굴을 내미는 날이 있었다.
그 날은 날이 맑았다.
어떤 날은 건물들 뒤로
산이 제 몸을 숨기고
하루 종일 얼굴을 보여주지 않았다.
그 날은 날이 매우 흐렸다.
건물의 뒤로 산이 있었다.
가끔 산은 건물의 아주 바로 뒤까지 바짝 다가와
내게로 발돋음을 했다.
그런 날이면 날이 맑았다.
가끔 누군가 산의 뒤쪽으로 살금살금 다가와
산의 눈을 가리기도 했다.
산은 하루 종일 눈을 가린게 누군가 점쳐야 했고
영 맞추질 못하곤 했다.
산의 눈을 가린 손은
하루 종일 눈을 풀어주질 않았다.
그런 날이면 하루 내내 날이 흐렸다.
다시 날이 맑으면 산은 발돋음을 하여
얼굴을 가까이 들이밀었으나
그때면 이미 흐린 날 얼굴을 가린 누군가는
어디로 갔는지 감쪽같아
여전히 오리무중이었다.
종종 풍경은 텍스트의 샘이다.
텍스트의 샘이 솟으면서
굳어 있던 풍경이 살아 꿈틀댄다.
2 thoughts on “맑은 날과 흐린 날의 풍경”
저는 아침에 일어나서 식탁 창으로 보이는 예봉산 봉우리를 두고 비슷한 관찰을
하곤 합니다. 선명하게 보이는 맑고 화창한 날이 있는가 하면, 구름이 둘러싸고 있는 날, 구름에 완전히 가린 날, 아무것도 안 보이는 날 등 풍경이 제법 다채롭죠.
종종 풍경이 텍스트의 샘인 건 공감하지만, 아무에게나 그 샘이 솟진 않는 것 같아요.^^
옥상에 올라갔다가 건물들 사이로 흐르는 산의 윤곽이 좋아 사진을 하나 찍었는데 흐린 날 올라가니까 그 산들이 전혀 보이질 않더라구요. 그래서 그 장면도 찍었더니 그 풍경에 대해 말하고 싶어지더군요. 풍경의 변화를 찍으면 얘기 거리가 되는 듯 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