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의 걸음은 조심성이 없다.
바위들이 들쭉날쭉 머리를 내밀어
내딛을 발길의 갈피를 잡기 어려운 가파른 계곡도
아무 주저없이 길을 내려간다.
계곡을 내려갈 때면
물은 룰루랄라 콧노래까지 부른다.
물의 발끝이 흥얼거릴 때면
계곡에선 졸졸졸 소리가 난다.
오히려 물은 길이 넓어지면
걸음의 속도를 늦춘다.
우리는 폭이 넓고 곧은 도로에서 속도를 높이지만
물은 그와는 정반대이다.
강폭이 넓어지면 오히려 걸음을 늦춘다.
그렇지만 겨울의 계곡에선
물의 걸음이 말할 수 없이 조심스럽다.
하얗게 질린 얼굴로 한걸음을 떼고는
그대로 얼어붙어 버린다.
햇볕이 귀한 음지의 계곡에선 더더욱 그렇다.
발끝은 하염없이 멈추고
간혹 햇볕이 잘드는 날
햇볕이 열어주는 따뜻하고 환한 길로 발끝을 떼기도 하지만
그저 찔끔찔끔 한두 걸음을 내디딜 뿐이다.
겨울은 물의 걸음이 조심스러워
하얗게 질린 얼굴로
계곡의 급한 경사면에서 멈추어서는 계절이다.
물의 걸음이 다시 경쾌하게 풀리려면
봄까지 기다려야 한다.
봄기운은 물의 걸음끝에서
조심스러움을 걷어내 버린다.
봄기운에 취하면
그때부터 물의 걸음은 발끝에 뵈는 것이 없다.
겨울은 급경사의 두려움이 발끝에 밀려와
확연해지는 계절이다.
그 두려움으로
겨울내내 계곡을 내려가는 물의 걸음이 조심스럽다.
4 thoughts on “물의 걸음”
작가, 기자에 어떤 대목은 수사관 같은 느낌을 받습니다.
하나하나 치밀하게 관찰한 카메라맨의 촬영일기 같다고나 할까요.
간만에 산에 갔다가 이런저런 걸 보니
별별 생각을 다하게 된 것 같습니다. ㅋㅋ
/봄기운에 취하면
그때부터 물의 걸음은 발끝에 뵈는 것이 없다/
물의 걸음을 이렇게 풀어서 이야기해주시는 동원님^^
잼있어요… 그러네요 봄기운은 사람도 미치죠
얼음이 햇살에 쨍하면서 물소리가 졸졸졸…안미칠 수가 없지요^^
봄은 봄기운에 취해서 미치는 계절이고..
겨울은 찬바람 속에서 정신 바짝 차리게 되는 계절이라는.
빨리 봄이 와서 미친 물의 발걸음 소리 듣고 싶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