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의 모습으로 봐선 믿기지 않는 과거가 있다.
내 경우를 예로 들면
나는 예전에는 사람들에게 말을 잘 붙이지 못했다.
낯선 동네에 가서 길을 찾을 때도
사람들에게 말을 붙이질 못해
모르는 길을 서너 시간 동안 그냥 헤매곤 했다.
지나는 사람을 붙잡고 물어보면
금방 해결될 수 있는 일인데도 내겐 그게 어려웠다.
여행을 다니면서 그런 내게 가장 반가웠던 사람들은
먼저 말을 걸어주는 사람들이었다.
대개는 카메라가 매개체가 되었다.
사람들은 “사진 찍으러 오셨나봐요?”라는 말로 운을 떼고는
자연스럽게 말을 주고 받을 수 있도록 인연을 만들어 주었다.
그 와중에 내가 배운 것은
낯선 동네에서 말을 붙이고 몇 마디를 나누는 것이
여행의 큰재미일 뿐만 아니라
그 짧은 몇 마디의 얘기 속에서 얻는 것이 많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렇게 여행 중에 내게 먼저 말을 걸어주는 사람들을 만나면서
이제는 내가 자연스럽게 사람들에게 먼저 말을 붙이게 되었다.
지리산 둘레길로 놀러갔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상황마을에서 등구재로 올라가는 길에
범상치 않은 풍모를 지닌 분을 만나게 되었다.
난 “아니, 오늘은 지리산 산신령께서
이렇게 마중을 나와 주셨군요”라고 인사를 했다.
그 말에 대한 산신령의 답은 환한 웃음이었다.
옆을 살펴보니
무슨 주역이니 관상이니 하는 문구들이 적힌 펼침막이 있어
점도 보시냐고 물었더니
아직 진짜는 나오질 않고 자신의 보조란다.
그래서 “그럼 조수 산신령이신가요?”라고 했더니
또 한번 크게 웃으셨다.
지리산의 조수 산신령은
고개 넘어 가면 나오는 지리산 풍경에 대해
미리 설명을 해주었고
그 설명 덕에 고개를 넘어간 뒤 마주한 지리산을 바라보며
천왕봉, 중봉, 하봉을 정확히 짚어낼 수 있었다.
그리고 옆을 지나다 궁금해 하는 사람들에게
마치 산을 올라보기라도 한 것처럼 설명을 해줄 수 있었다.
요즘의 나는 아주 넉살이 좋아져서
여행가면 그냥 모르는 사람들 사이에 끼어들어
술도 한잔 얻어먹고 음식도 마다않을 정도가 되었다.
가끔 그냥 숟가락과 젖가락만 들고 돌아다녀도
굶어죽지는 않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그렇게 사람만나서 몇 마디 나누는 재미가 요즘 여행길의 내 재미이다.
옛날에는 생각도 못했던 변화이다.
2 thoughts on “지리산 산신령”
털보님께 그런 과거가 있을 줄은..^^
이 조수 산신령은 신수가 환하신 게, 다른 건 몰라도 사람은 좋게 생기셨네요.
산신령치곤 패션 감각도 제법 있어 보이구요.^^
나이 먹으면서 갖게 된 미덕 같습니다.
왜 그렇게 물어보질 못하냐고 하면
입술이 두꺼워서 무게 때문에
입떼기가 어렵다고 핑계를 대곤 했습지요. 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