벗의 기쁨

Photo by Kim Dong Won
2012년 1월 11일 서울 화곡동에서

자라면서
벗이 있어 멀리서 찾아오면
이 어찌 기쁘지 아니하냐고 배웠다.
그러나 세상이 달라지면서
벗이 찾아오는 그 기쁜 일은
거의 접하기 어렵게 되었다.
대신 이제 벗이 있어 모두가 공평하게 종로에서 모이니
이 어찌 기쁘지 아니하냐는 세상에서 살게 되었다.
온라인에서 만나 벗이 된 사람들과
간만에 종로에서 만났다.
사실 간만이란 말은 좀 무색하다.
몇몇은 얼굴 본 것이 일주일도 안되었기 때문이다.
어쨌거나 우리는 종로에서 만났고 기쁘기 이를데 없었다.
밤 11시쯤 종로에서의 모임을 일차적으로 마무리해가고 있던 우리는
멀리 화곡동의 벗에게 전화를 걸었다.
우리의 전화는 벗에게 왜 나오지 않냐는 힐난을 전하기 위한 것이었다.
화곡동의 벗 김주대 시인은
원래 나오려는 마음을 슬쩍 종로로 내보냈으나
마음의 자장이 강하질 못해
그 마음이 몸을 이끌어내는데는 실패하고 만 상태였다.
가끔 마음은 굴뚝 같아도 그 마음이 몸을 일으켜 세우진 못한다.
전화를 하던 우리는 얘기 끝에
벗이 있어 멀리서 찾아오면
이 어찌 기쁘지 아니한가라는 우리의 옛날식 교훈이
가만히 앉아서 찾아오는 벗의 즐거움만 탐닉하는 수동적 즐거움이라는데
의견을 모으기에 이르렀다.
그리하여 우리는 앉아서 날로먹는 그런 구시대적 우정을 과감히 작파하고
적극적으로 찾아가는 완전 현관앞 택배 서비스 스타일의 우정을 택하기로 했다.
우리는 작은 그녀의 승용차에
무려 다섯 사람이 구겨지듯 밀고 들어가 빽빽이 실내를 채우고는
살과 살이 5cm씩은 족히 교집합을 이룰 듯한 고난을 감내하면서
종로를 떠나 야밤의 화곡동으로 내달렸다.
그리고 우리는 그곳에서 새벽 3시까지 술을 마시며 웃고 떠들었다.
나중에 얘기를 들으니 끝까지 남은 셋은
아침 여섯 시에야 술잔을 손에서 내려놓을 수 있었다고 한다.
멀리서 찾아간 택배형 우정은 날밤을 까게 한다.
사실 아무리 멀리서 찾아가도 날밤을 세우긴 어려운 세상인데
하필 그 동네엔 24시간 운영하는 순대국집이 있었다.
날밤을 세운 우정의 화근 역할을 하기에 충분했던 것은
바로 그 순대국집으로 보인다.
이번 모임으로 인하여 우리는
벗이 있어 멀리서 찾아오니 이 어찌 기쁘지 아니하냐는 생각이
완전 켸켸묵은 구시대적 발상이며
벗이 있어 먼길을 마다않고 달려가니
이 어찌 기쁘지 아니한가가
우리 시대의 새로운 즐거움이란 것을 깨닫기에 이르렀다.
더불어 술이 벗을 만난 기쁨을 증폭시켜 주는 촉매제란 것도
다시 한번 확인했다.
벗과 술이 있어
그것이 우리 사는 세상의 즐거움이었다.

Photo by Cho Key Oak
2012년 1월 11일 서울 화곡동에서

6 thoughts on “벗의 기쁨

  1. 와 사진만 봐도 참 즐거운 시간이셨음을 느껴요!
    갑작스레 만나서 한 밤중에 웃음 보따리들을 풀으셨겠어요
    동원님은 참 언제나 젊은 마음이신듯해요1
    신나시고, 신기하시고, ㅋㅋ
    얄라셩님 맑게 웃으시네요
    중국 가신다고 들었었요…여기 저기서…^^

    1. 오늘 화곡동 오냐고 전화왔길레
      가면 도토리님이랑 같이 가지 혼자서 갈일이야 있겠나 했는데
      모두가 우르르 몰려가게 되었다는. 그것도 완전 야밤에.
      이번에는 노래방도 즐겁더라구요.
      그냥 부르고 싶은 사람 부르고 부르지 않으면 그냥 놔두고 하면
      노래방도 아무 문제가 없는 듯 싶어요.
      간만에 쿨하게 논 듯 싶어요.

    1. 공자님과의 한판 승부..ㅋㅋ
      실제로 찾아갔더니 아주 좋았던 점이 있었습니다.
      다양한 맥주를 냉장고에서 술먹는 사람이
      직접 꺼내다 먹는 술집이 있었다는 것이었어요.
      일반 술집의 절반값이더라구요.
      컵라면도 먹을 수 있었구요.
      종로에선 매번 똑같은 술집에서 모이는데
      이렇게 순례를 하니 다양한 술집을 만나서
      아주 좋은 듯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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