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의 등고선

Photo by Kim Dong Won
2012년 2월 7일 서울 남한산성의 마천동쪽 계곡에서

계곡을 내려가던 물이 얼어붙었다.
원래 물은 매끄럽게 흘러가는 존재였다.
그러나 얼어붙은 물은
자신이 등고선의 존재임을
확연하게 알려준다.
산은 등고선을 차곡차곡 쌓으며 높아지고
산을 내려오는 물은
그 등고선을 모두 버리며 낮아진다.
한여름 계곡을 내려가는 물에게서
그 등고선을 볼 수 없었던 것은
너무 순식간에 그 등고선을
모두 내려놓기 때문이다.
겨울이 오면 물이 얼어붙고
그러면 물의 등고선이 완연하게 드러난다.
그리고 겨울엔 볕이 좋은 날을 골라
천천히 그 등고선을 내려놓는다.
등고선은 완고한 높이의 연대이다.
산은 그 연대의 높이를 쌓아 산을 이루고
물은 그 연대의 높이를 버리며 물로 흘러간다.
연대의 높이를 쌓는 것은 문제가 되지는 않는다.
높다는 것이 무슨 문제가 되랴.
그러나 그 연대의 높이를 완고하게 고집하며
아래쪽의 등고선을 밟고 누르려 들면
우리들의 산과 계곡에는 봄이 오지 않는다.
봄을 맞으려면
우리들이 쌓아 산을 이룬 등고선을 버려야 한다.
계곡을 내려가다 얼어붙은 물에게선
등고선이 완연했지만
서서히 등고선을 버리며 녹아내리고 있었다.
물이 등고선을 버리며
봄을 부르고 있었다.

Photo by Kim Dong Won
2012년 2월 7일 서울 남한산성의 마천동쪽 계곡에서

2 thoughts on “물의 등고선

  1. 첫 사진을 보면서 이게 뭘까 하는 호기심이 와락 생겼는데, 확대해 봐도
    감이 잡히지 않았어요. 하늘 구름 위 같다는 느낌도 들고, 남극이나 북극 같은
    빙하지대의 한 장면 같아 보이기도 하구요. 계절의 경계선이었군요.

    1. 일이 끝나서 간만에 마천동쪽으로 해서 남한산성에 올랐다 왔어요. 북문으로 해서 하남쪽으로 내려갈까 했는데 아직 눈이 녹질 않아 길이 많이 미끄럽더라구요. 그래서 그냥 버스타고 내려와 버렸다는. 점점 조금 높은 산에 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더라구요.

답글 남기기

이메일 주소는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필드는 *로 표시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