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향의 아파트 베란다는 겨울에도 따뜻하다.
그곳의 화분에 사는 꽃은 말할 수 없이 몸이 편하다.
추위와 힘겹게 싸우며 봄을 기다릴 필요도 없고
갈증난 목을 부여잡고 비를 기다리는 경우도 없다.
목이 마르다 싶으면
집주인이 물을 가져다 뿌리를 적셔 준다.
베란다의 화분은 꽃의 낙원이고 천국이다.
그러나 아침이 오면
햇볕이 베란다 난간의 창살을 그림자로 눕혀
화분의 꽃까지 슬쩍 밀어보내며 꽃에게 말한다.
“넌 낙원에 살고 있는 것이 아니라
사실은 그곳에 갇혀 있는 거야.”
가끔 아침 햇살은 무섭다.
따뜻한 빛으로 와서
아침을 밝히고 봄소식을 전하는 듯 하면서
부드럽게 망상에 쌓인 세상을 뒤엎는다.
하지만 꽃은 햇볕의 말에 좌절하지 않는다.
조용히 꽃이 햇볕에게 말한다.
“나를 가두어 놓을 수는 있어도
꽃마저 가둘 수는 없어요.
내가 이곳에서 꽃을 피우는 이유는
바로 그걸 알려주기 위해서죠.”
베란다 바깥에서 바람이 둘의 대화를 엿듣고 지나갔고
그 얘기를 벌써 아래쪽의 동네 나무들에게 전한 눈치였다.
나무들이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2 thoughts on “아침 햇살과 화분의 꽃”
조용하기만 할 것 같은 아파트 베란다에서 기싸움이 한창이군요.^^
곧 봄이 와 창문까지 열어 바람까지 가세해 동네 나무들과 협공을 펼치면
당분간 아침 햇살이 한 수 접어야 할 것 같은데요.
겨울에 거실 절반을 넘어들어왔던 햇볕이 이제는 겨우 베란다 정도만 어른거릴 정도로 물러났어요. 햇살이 그립던 시절이 서서히 가는 듯 싶습니다. 나무에 새싹나기 시작하면 곧 연두빛이 고운 세상이 올 듯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