억겁의 세월이 쌓인 지층 밑에서
나는 짙은 검정색으로 까맣게 잠들어 있었지.
어느 날, 네가 그 깊은 지층을 파고 내려와
나의 까만 잠을 깨웠지.
이글이글 불타는 뜨거운 세상이
너희들이 사는 바깥에 있다고
너희들의 세상으로 가자고 했어.
하지만 너희의 세상으로 나온 나는
그 밝은 세상에서도 졸음이 쏟아졌지.
그래서 나는 훤한 대낮에도,
또 칠흑같이 어둠이 밀려든 밤에도
여전히 까맣게 졸았어.
그러다 어느 날,
네가 나의 가슴에 뜨거운 불을 당겼지.
너의 앞에 선 나는 뜨겁게 달아올랐어.
내안에 숨겨진 뜨거운 온기를
모두 네게 주고 싶었지.
내가 까맣게 졸고 있을 때면 멀리하곤 하던 너도
붉게 타는 내 마음 앞에선
오래도록 머물곤 했어.
하지만 마음의 뜨거움이란
오래가지 못하는 법.
내가 가진 뜨거운 온기를
모두 네게 주었다 싶을 즈음,
내 몸도 식고, 마음도 건조해져 버리고 말았지.
그러고 나자 너도 나를 곁에 두지 않았어.
한치의 주저함도 없이 나를 버렸지.
그렇게 나는 밭에 버려졌어.
네가 버린 우리들의 마음이 밭에 한가득이었지.
이 나쁜 놈.
곁에만 있어도 따뜻하다며
내 곁을 떠나지 않을 때는 언제고.
하지만 버려진 슬픔으로 쓸쓸하면서도
한편으로 내 마음 한켠에선 정체모를 설레임이 느껴져.
이 설레임은 도대체 뭐지.
어쩌면 나는 버려진 것이 아니라
이곳에서 밭에 섞여 뒹굴고
그 뒤에는 내 속의 맛난 영양가로
이 밭에서 생명을 키우게 될지도 몰라.
어쩌면 그것이 정말 삶의 시작인지도 모르지.
삶이란 알고 보면
온기가 바닥나고 난 뒤 버려지는 뜨거운 마음이 아니라
내 품에서 푸른 생명을 새롭게 열 때
그 자리에서 비로소 시작되는 것인지도 몰라.
내가 지금 그 시작의 자리에
설레는 마음으로 서 있는 느낌이야.
그러니까 난 알고 보면 버려진 것이 아니라
사실은 새로운 시작 앞에 서 있어.
그게 내 설레임의 정체일지도 몰라.
6 thoughts on “연탄재의 독백”
그냥… 사진만 봐도 추억이..연탄을 갈고 날르고…
또 전봇대 곁에 버려진 높이 높이가 다른 집집 마다의 연탄들…
추억을 떠올리게 해주시네요…^^
화원들에서 화초 얼어죽지 말라고 연탄을 피우는 것 같아요.
그거 밭에 버려서 흙으로 삼는 듯.
저는 덕분에 좋은 글재를 얻구.
연탄재에 대한 최고의 시로 등재해야 할 것 같은데요.
적어도 제게는요.
저는 쑥스러운데 연탄재들은 좋아할 듯 싶어요. ㅋㅋ
끝이 새로운 시작이라는….말씀
공감합니다.
언제나 모든 것의 끝에 시작이 있기를요….
한동안 어디를 가나 석유 난로더니
요즘은 다시 연탄 난로를 자주 접하게 되요.
석유의 끝은 이산화탄소로 문제아가 되고 있는데
연탄의 끝은 오히려 밭에서 새인생 시작하는 듯 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