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탄재의 독백

Photo by Cho Key Oak
2012년 3월 5일 서울 상일동의 화원 근처에서

억겁의 세월이 쌓인 지층 밑에서
나는 짙은 검정색으로 까맣게 잠들어 있었지.
어느 날, 네가 그 깊은 지층을 파고 내려와
나의 까만 잠을 깨웠지.
이글이글 불타는 뜨거운 세상이
너희들이 사는 바깥에 있다고
너희들의 세상으로 가자고 했어.
하지만 너희의 세상으로 나온 나는
그 밝은 세상에서도 졸음이 쏟아졌지.
그래서 나는 훤한 대낮에도,
또 칠흑같이 어둠이 밀려든 밤에도
여전히 까맣게 졸았어.
그러다 어느 날,
네가 나의 가슴에 뜨거운 불을 당겼지.
너의 앞에 선 나는 뜨겁게 달아올랐어.
내안에 숨겨진 뜨거운 온기를
모두 네게 주고 싶었지.
내가 까맣게 졸고 있을 때면 멀리하곤 하던 너도
붉게 타는 내 마음 앞에선
오래도록 머물곤 했어.
하지만 마음의 뜨거움이란
오래가지 못하는 법.
내가 가진 뜨거운 온기를
모두 네게 주었다 싶을 즈음,
내 몸도 식고, 마음도 건조해져 버리고 말았지.
그러고 나자 너도 나를 곁에 두지 않았어.
한치의 주저함도 없이 나를 버렸지.
그렇게 나는 밭에 버려졌어.
네가 버린 우리들의 마음이 밭에 한가득이었지.
이 나쁜 놈.
곁에만 있어도 따뜻하다며
내 곁을 떠나지 않을 때는 언제고.
하지만 버려진 슬픔으로 쓸쓸하면서도
한편으로 내 마음 한켠에선 정체모를 설레임이 느껴져.
이 설레임은 도대체 뭐지.
어쩌면 나는 버려진 것이 아니라
이곳에서 밭에 섞여 뒹굴고
그 뒤에는 내 속의 맛난 영양가로
이 밭에서 생명을 키우게 될지도 몰라.
어쩌면 그것이 정말 삶의 시작인지도 모르지.
삶이란 알고 보면
온기가 바닥나고 난 뒤 버려지는 뜨거운 마음이 아니라
내 품에서 푸른 생명을 새롭게 열 때
그 자리에서 비로소 시작되는 것인지도 몰라.
내가 지금 그 시작의 자리에
설레는 마음으로 서 있는 느낌이야.
그러니까 난 알고 보면 버려진 것이 아니라
사실은 새로운 시작 앞에 서 있어.
그게 내 설레임의 정체일지도 몰라.

6 thoughts on “연탄재의 독백

  1. 그냥… 사진만 봐도 추억이..연탄을 갈고 날르고…
    또 전봇대 곁에 버려진 높이 높이가 다른 집집 마다의 연탄들…
    추억을 떠올리게 해주시네요…^^

    1. 한동안 어디를 가나 석유 난로더니
      요즘은 다시 연탄 난로를 자주 접하게 되요.
      석유의 끝은 이산화탄소로 문제아가 되고 있는데
      연탄의 끝은 오히려 밭에서 새인생 시작하는 듯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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