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이 꽃가게에 놓여있으면 당연히 상품이다.
그 꽃을 사랑하는 사람에게 건네며 사랑 고백을 곁들이면
그 순간 그건 상품이 아니라 사랑의 메신저이다.
꽃병에 꽂아 탁자 위에 올려놓고
학생들이 모두 그 꽃을 각자의 스케치북으로 옮기고 있으면
그 순간의 꽃은 그림의 모델이다.
꽃은 같지만 그것이 서 있는 곳이 어디냐에 따라 그 성격이 바뀐다.
우리는 수많은 브랜드의 상품 속에 묻혀 생활하고 있다.
그것은 상품으로 우리에게 와서 일상 용품으로 우리와 함께 한다.
하지만 그것의 무대를 우리의 일상 속이 아니라
예술 공간으로 옮겨보는 것은 어떨까.
꽃을 사랑 고백의 메신저로 끌어들이는 것이 가능하다면
상품 브랜드를 예술 공간으로 끌어들여 새로운 예술적 대상으로 삼고
느낌이 새로운 예술을 만들어내는게 가능하지 않을까.
9월 16일 토요일, 올림픽 공원의 페이퍼테이너 뮤지엄에서 열리고 있는
“여자를 밝히다”와 “브랜드를 밝히다’의 전시회에 다녀왔다.
9월 15일부터 12월 31일까지 전시한다고 한다.
입장료는 10,000원이었다.
“브랜드를 밝히다” 부분의 전시에선 원없이 사진찍을 수 있어서 정말 좋았다.
바람개비가 돌아갑니다.
이제 과거는 잊으십시오.
예전엔 바람개비 도는 곳에 항상 바람이 있었지만
이제는 시대가 달라졌습니다.
우리들의 시대엔 바람개비는 돌아가지만 바람은 없습니다.
눈의 착각은 얼마나 행복한 것인가.
컨테이너 하나의 작은 공간을 끝없이 증식시켜
드넓은 공간을 만들어낼 수 있는 것도 눈의 착각 때문이다.
하지만 당신의 시선만 이곳으로 들여놓고
몸은 절대로 들여놓아선 안된다.
면벽 수행이란 얘기를 들어보셨나요.
벽을 마주하고 깨달음의 대화를 시도한다고 하더군요.
아마도 그 대화는 십중팔구 벽에 막히겠지요.
하지만 그것도 옛날 얘기입니다.
당신은 이제 깨달음을 얻었을 때의 희열처럼
노래가 흘러나오고 춤이 있는 놀라운 벽을 보게 될 것입니다.
그냥 동네에서 흔히 보고 지나쳤던
허름한 식당 하나가 그녀들의 관심을 끈다.
하지만 들여다 보다 보면 약간씩의 변형이 있다.
신발끈으로 만든 냉면도 그 중의 하나이다.
어떻게 먹느냐구?
신발에게 먹이면 되지 않을까?
이곳의 주전자는 더 이상 물을 담지 않는다.
대신 장미를 담는다.
당신의 일상도 가끔 이렇게 슬쩍 비틀어 보는 건 어떨까.
“여자를 밝히다”의 전시에서
‘밝히다’는 지나치게 탐하다라는 뜻이 아니라
심도있고 깊이 있게 예술적으로 말하다라는 뜻의 밝히다이다.
이곳에선 사진을 찍을 수 없다.
욕조와 벗어놓은 욕실의 신발은
묘한 상상을 불러 일으킨다.
상품이 예술 공간으로 자리를 옮겨오자
그 상상이 넌즈시 우리 앞에 희미한 윤곽을 드러낸다.
머릿속이 복잡하시다구요?
그렇다면 당신은 헝클어진 생각의 감옥에 갇힌 것입니다.
생각의 감옥은 자물쇠 옆에 바로 열쇠가 매달려 있는데도
그 열쇠가 눈에 잘 보이질 않습니다.
빛이 몰려들거나 혹은 퍼진다고 생각하고 계신 건가요?
사실은 빛이 가는 줄을 타고 곡예를 벌이는 중입니다.
당신은 당신 스스로를 딛고 서 본 적이 있나요.
이곳에선 그게 가능합니다.
단 치마를 입었을 때는 조심하는게 좋을 거예요.
슬라이드 필름은 작다.
하지만 그건 언제 커다란 그림이나 사진으로 불쑥 제 몸을 키울지 모른다.
알라딘의 마술 램프 속에 그 큰 덩치를 숨기고 지냈다는 지니의 얘기는
사실 그냥 환상으로 지어낸 동화가 아니다.
슬라이드 필름 속엔 크나큰 덩치의 그림이나 사진들이 지니처럼 몸을 오그리고 있다가
우리가 현상기의 주문을 외는 순간 불쑥 제 몸을 키워 우리 앞에 나타난다.
슬라이드 필름이 다닥다닥 붙은 그 지니의 방에 계신 당신,
조심하시라.
혹시 당신이 실수로 현상기의 주문을 입에 올리는 순간,
그 모든 슬라이드 필름에서 그림이나 사진이 튀어나올지 모른다.
당신은 혼자 그 화려한 색의 기둥들을 보고 있다고 생각했겠죠.
그러나 당신 옆엔 또다른 그녀가 있었습니다.
그녀가 손을 뻗어 당신의 손을 잡고 있었지만
당신은 그걸 감쪽같이 몰랐죠.
그녀의 한쪽 신발은 어디로 갔죠?
바로 여기에 있죠.
무심한 사람들!
그녀의 신발을 주어
그녀의 발에 신겨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더군요.
그녀가 어쩌다 신발까지 흘리며
천정을 뚫고 위층으로 올라갔냐구요?
카스를 마셨기 때문입니다.
바로 요 맥주죠.
다음에 이 맥주를 마실 땐, 항상 노천 까페를 이용하세요.
자전거를 탈 때는 사랑하지 맙시다.
자전거를 타며 사랑하면 바퀴가 찌그러 집니다.
사랑은 세상 모든 것을 사랑으로 물들이는 성향이 있기 때문입니다.
글자들을 항상 옆으로 늘어놓는 건, 이제 지겹지 않으세요.
이제 글자들도 번지 점프를 하듯 수직으로 꼿꼿이 하강할 수 있도록 해주세요.
그럼 글자들이 비가 되어 세상을 촉촉히 적시게 될 거예요.
나에게 이 전시회에서 가장 헷갈렸던 부분은
차와 간단한 식사를 팔고 있는
전시장 한쪽 부분의 찻집이었다.
잠시 사람이 자리를 비운 상황에서
그 찻집 뒤쪽 주방으로 몸을 들여놓았던 나는
그 주방을 전시물로 착각을 했다.
나중에 보니 그건 전시물이 아니었다.
사실 사태는 좀더 심각하여
찻집에서 주문하여 받아든 커피도 이게 상품인지 작품인지 헷갈렸다.
예술과 일상은 사실은 동떨어진 것이 아니라
서로 스며들면서
예술 속엔 일상이, 일상 속엔 예술이 녹아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5 thoughts on “예술 공간에서 브랜드를 만나다 – 올림픽 공원 내 페이퍼테이너 뮤지엄”
하트 자전거 바퀴앞에 모델이 참으로 이쁘시네요.
작품인줄 착각했네요…..^^
이히히, 님 덕분에 제가 점수 따게 생겼어요.
사랑은 세상 모든 것을 사랑으로 물들이는 성향이 있다는 말씀도 좋구
동원님의 글들은 편안함이 느껴지고 무척 부더럽고 매끄럽습니다.
부럽군요. 감상이 무척 즐겁습니다.
찬사의 말은 역시 언제 들어도 기분이 좋아요.
감사, 또 감사.
근데 입장료가 너무 비싸요. 한 5천원 정도가 좋으련만.
맞아. 넘 비싸. ㅜㅜ
예술… 즐기기 쉽지 않어.
그래도 도시락 싸들고가서 공원에서 놀고 전시회도 보고 오는 건 아주 좋은 가을나들이가 될거야.
공원 여기저기에 가을이 오고 있더군.
올 가을 자전거로 자주 가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