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는 매일매일 뜨고 진다.
어쩌다 잿빛 구름이 하늘을 온통 뒤덮고
해가 오는 길을 모두 지워버리는 심술을 부려도
해는 뜨고 지는 그의 길목을 잊어먹는 법이 없다.
그런 날 하늘에서 해는 볼 수 없고
세상의 빛은 온통 뿌였기만 하다.
그러나 그런 날도 사람들은 해가 떳다는 것을 의심하는 법이 없다.
우리는 매일매일 일어나고, 그리고 또 잔다.
시간의 편차는 있어도
일어나고 자는 생활의 반복은 누구에게서나 크게 변함이 없다.
우리는 해뜨는 것을 보기 위해 먼길을 달려 동해나 혹은 남해로 간다.
우리는 해지는 것을 보기 위해 먼길을 달려 또 서해나 혹은 남해로 간다.
매일매일 일어나고 자는 우리의 일상이나
매일매일 뜨고 지는 해의 일상이나
무료하게 반복되기는 마찬가지이다.
그러나 뜨는 해와 지는 해는 그 앞에 서면
우리의 하루를 새롭게 하면서 가슴을 들끓게 만들고,
또 푸근하고 평화롭게 가라앉혀 준다.
왜 우리는 뜨는 해와 지는 해 앞에 서면
그렇게 가슴이 뛰고, 또 평화롭게 가라앉는 것일까.
9월 7일, 나는 뜨는 해는 여수의 향일암에서 맞고,
지는 해는 고흥의 염포 바닷가에서 지켜 보았다.
다들 알다시피 아침은 해가 밝힌다.
해가 오는 동쪽 하늘은 빛의 돔을 둥글게 펼쳐 아침의 징조를 알린다.
어떻게 보면 해는 바다 저편에서 떠오르는 것이 아니라
아득한 거리를 밤새도록 날아와
바다 위로 착륙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해는 골목길에서 갑자기 튀어나와 얼굴을 내미는 개구장이처럼
불쑥 얼굴을 들이밀고 우리를 놀래키는 법이 없다.
해는 우선 하늘을 붉게 물들이고,
가까운 구름의 언저리는 용암이 금방이라도 끓어넘칠 듯한
투명빛 진홍 레이스로 장식을 한다.
그렇구나.
아침은 그냥 불쑥 오는 것이 아니었구나.
저렇게 한참 동안 구름 뒤에서
아침을 낳기 위한 산고를 치르면서 오는 것이었구나.
아침이 동트기 전의 그 핏빛이란 사실은 산고의 빛이었구나.
혹시 우리의 잠도 그냥 매일매일의 피곤을 삭히기 위한 휴식이 아니라
사실은 오늘의 하루를 열기 위한 산고는 아니었을까.
밤에 잠들었을 때 우리가 그냥 자는 것 같아도
사실은 잠에서 깰 때쯤
우리의 하루를 낳기 위한
몸의 산고가 시작되는 것은 아니었을까.
드디어 해가 손톱만큼 고개를 내밀었다.
우리들이 졸리운 눈을 조금 열어
가늘게 실눈을 뜨고 아침을 받아들이 듯이.
그리고는 쑤욱 머리를 치켜든다.
“그만 일어나렴.”
잠을 털어버리고도 계속 눈을 감고 자리를 뭉개던 우리가
그 소리에 드디어 몸을 일으키는 것처럼.
떠오른 해는 그냥 멀리 쳐다보기에도 너무 눈이 부시다.
그러나 아침 해는 바다 끝의 부신 해로 머물지 않는다.
빛의 전령을 풀어 바다를 한숨에 내달은 뒤
우리의 발밑으로 달려와선 발목을 간지른다.
보통 우리의 경우엔
아침에 일어나 문을 열었을 때
문을 밀고 들어오는 아침 공기의 시원함이
해가 보낸 빛의 전령을 대신한다.
뜨는 해가 감격적인 것은
바로 그것이 그냥 뜨는 것이 아니라
하루의 잉태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해가 뜰 때 어렴풋이
매일매일 자리에서 일어나는 우리들의 그 사소한 일상이
사실은 하루의 잉태에 방불한다는 것을 깨닫는다.
그래서 해돋이를 보고 나면
우리는 스스로 해가 되어 돌아오는 것이며
그때의 느낌이 기억에서 무뎌질 때까지
또다시 새롭게 하루하루를 시작하며 도시를 견딜 수 있게 된다.
이제 동쪽을 뒤로 하고 서쪽으로 몸을 돌리시라.
후딱 하루가 가고 말았다.
그리하여 멀리 해가 지고 있다.
아직 해는 한뼘이 족히 남아 있다.
너무 눈부셔 시선을 맞출 수가 없다.
해가 세상을 비추는 낮동안,
우리는 해를 쳐다볼 수가 없다.
그 한낮엔 열심히 세상을 보며 하루를 살아야 한다.
아직은 눈이 부셔 해를 정면으로 쳐다볼 수 없다면
그것은 눈길을 세상에 두고 열심히 삶을 살아야 하는 시간이란 뜻이다.
그러나 뜨는 해와 마찬가지로 지는 해도
해가 지고 있음을 하늘의 빛으로 알려준다.
푸르던 하늘이 붉게 물들어가면
그것이 바로 해가 하루의 종착역에 다다랐다는 징조이다.
우리의 밤도 그렇게 온다.
몸의 피곤으로.
싱싱한 몸으로 이끌던 아침의 하루와
피곤이 가라앉히는 저녁의 하루는 그 색이 다르다.
하루의 마지막 순간 해는 서산에 턱을 고인다.
그 순간 해의 시선은 우리의 눈높이에 있다.
눈과 눈이 마주하는 순간,
그것이 바로 해가 지는 일몰의 시간이다.
그리고 드디어 해는 서쪽으로 넘어간다.
넘어간 하늘의 뒤끝에도 해는 빛을 남긴다.
아침 하늘을 붉게 물들였더 그 빛이 산고의 빛이었다면
저녁 하늘에 남은 붉은 노을은 위안의 빛이다.
해는 그 노을빛으로 하루를 위로한다.
그래서 같은 해가 빚어낸 빛인데도
아침엔 그 빛을 보고 있노라면 가슴이 뛰고
저녁엔 마음이 푸근하게 가라앉는다.
그녀가 바닷가에 앉아 노을을 바라본다.
나는 그날 그녀가 잠들기를 기다렸다
잠든 그녀의 얼굴을 내려다본다.
잠든 그녀는 나의 노을이다.
지는 해를 보는 자리에서 우리는 어렴풋이
우리가 서로의 위안이란 사실을 깨닫는다.
일몰의 바닷가에서 우리는 사실 해가 되어 돌아오는 것이며,
그 순간의 느낌이 기억에서 무뎌질 때까지
서로의 잠든 얼굴에서 위안을 보며 다시금 도시를 견딜 수 있게 된다.
해는 그러나 아직 그냥 가지 않았다.
알다시피 달은 저 혼자 빛을 내지 못한다.
알고보면 그 희미한 달빛은 해가 우리를 잊지 않고 있다는 징표로
밤하늘에 걸어놓은 약속과 비슷한 것이다.
우리는 매일밤 잠들지만
그렇게 잠든 동안
사실은 서로의 곁에 달처럼 하룻밤 내내 떠 있다.
4 thoughts on “해는 뜨고 그리고 진다 – 여수 향일암의 일출과 고흥 염포의 일몰”
저도 부러워요.^^
그 어떤 남편이 그것도 10여년 넘게 살았다면
아내가 잠들기를 기다려 고요히 내려다 보려 할까요.
뭐 어디 몸이 안좋아 병상에 누워있다면 그때는 내려다볼지 모르겠네요.^^
아..저 붉은 해 덩어리. 진짜 눈이 부시네요.
제가 눈이 안좋아서인지 굉장히 눈부셔요.
근데요. 좋은 카메라를 가지고 찍은 사진은
실제 눈으로 보았던 그 빛 그대로 찍히던가요?
아님 아무리 좋은 카메라도 차이는 있는지?
좋은 카메라는 찍다보면
카메라가 영상을 만드는 것인지
내가 찍는 것인지 헷갈릴 정도로 성능이 뛰어나답니다.
잠든 그녀의 얼굴을 내려다본다.
잠든 그녀는 나의 노을이다.
와~우~~넘 부럽 부럽^^*
저는 이렇게 함께 아름답게 살아가는 분들 보면 존경심이 들어요.
우리 그이는 약속을 너무 안지키는 사람, 그래서 힘들때가 많거든요.ㅎㅎ
감사해야할 삶입니다만,..감사를 모르고 사는것 같아 부끄럽기도 한,동원님..가족과 함께..행복한 주말 이루세요~!!
글은 약간의 포장임을 감안하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