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픔의 섬, 그곳에서 보낸 하루 – 고흥 녹동의 소록도

소록도는 슬픔의 섬이다.
그 슬픔의 연유를 들추면
우리는 그 섬에서 갇혀 지내야 했던 한센병 환자들의 애환을 만나게 된다.
섬의 곳곳엔 그 슬픔의 흔적이 남아 있다.

Photo by Kim Dong Won

소록도는 이미 그들을 가둔 곳이었지만
섬은 그 안의 감금실에 또 그들을 가두었다.

Photo by Kim Dong Won

그 감금의 세월, 높아보이기만 했을 붉은 벽돌담을
오늘 담쟁이 덩쿨이 우르르 떼를 지어 넘고 있다.
아마 그 옛날에도 그랬지 않았을까.
그냥 담장밖을 넘어가는 낙엽 하나에도
갇힌 자의 한을 끊임없이 실어보내지 않았을까.
그리고 담쟁이 덩쿨이 그 한을 그대로 기억한채
오늘 그들의 한을 달래듯 우르르 담을 넘고 있는 것은 아닐까.

Photo by Kim Dong Won

창살은 흔들면 금방이라도 부서질 듯 낡아있었다.
하지만 그 낡은 창살로 인하여
그 창으론 바람도 몸을 들이밀다 몸통이 걸릴 것만 같아 보였다.
창살은 몸을 가두는 한편으로 우리의 마음도 그 방에 가둔다.
창살이 무서운 것은 바로 그 때문이다.
그것은 몸만 가두는 것이 아니라 사람의 마음을 가둔다.

Photo by Kim Dong Won

복도의 저 끝이 아득해 보인다.
아마 소록도 바닷가에서 녹동 앞바다 저 건너편의 뭍을 바라볼 때면
눈에 곧바로 잡히는 그 짧은 거리 또한
평생을 헤엄쳐도 건널 수 없는 아득한 거리로 보였을 것이다.

Photo by Kim Dong Won

수탄장(愁嘆場).
슬픔과 탄식이 가득한 곳이란 뜻이다.
한센병은 흔히 나병이나 문둥병이란 이름으로 알려져 있기도 하다.
이는 유전병은 아니고 전염병의 하나이다.
예전에는 병의 전염을 우려하여
환자의 자녀들을 부모로부터 격리시켜 생활하게 했다고 한다.
그들이 만나는 것은 한 달에 한 번.
바로 이곳의 거리에서 한 달에 한 번,
서로의 얼굴을 바라보다 돌아가는 것이 그들의 만남이었다.
당연히 그들 사이에 슬픔과 탄식이 가득할 수밖에 없는 만남이었다.
그들이 만났던 이 거리의 이름이 수탄장이 된 연유이다.

Photo by Kim Dong Won

소록도의 중앙공원에 있는 조형물.
조형물에 선명하게 새겨놓은
‘한센병은 낫는다’라는 글귀는
희망이 아니라, 현재는 실제가 되었다.
한센병은 치유되고 있으며,
완치가 될 때까지 국가가 무료로 치료해주고 있다.

Photo by Kim Dong Won

녹동항과 소록도를 오가는 배.
사람은 들고 나는데 1000원.
들어갈 때 1000원을 내면 나올 때는 그냥 타고 나오면 된다.
차를 싣고 가면 소형차는 10000원.

Photo by Kim Dong Won

유치원 아이들이 소록도의 중앙공원으로 놀러간다.
재잘재잘, 아이들은 즐겁기 그지 없다.
갑자기 그들이 가는 섬의 슬픔이 그들의 천진난만한 하루로
즐겁게 희석될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슬픔의 섬에선 숙연하고 슬프게 보내기 보다
아이들처럼 그곳에서 즐거운 하루를 보내는 것이 나을 것 같다.
그러면 그곳의 슬픔이 즐거움으로 희석될 것 같다.
아이들은 우리보다 생각이 더 깊은 것 같다.

Photo by Kim Dong Won

배는 우리를 싣고 소록도로 향한다.
10분여의 거리였다.

Photo by Kim Dong Won

벤치에 바다 색깔을 칠해 놓았다.
앉으면 일렁일까?

Photo by Kim Dong Won

자전거를 타고 가다 길을 물었더니
숲길을 가리키며 계속 가면 된다고 했다.
나무가 우거진 숲길이었다.
숲길을 따라 갔더니 결국은 우리가 처음 출발한 곳이 나왔다.
나중에 알고 보니 섬의 서쪽 반을 자전거로 돈 것이었다.

Photo by Kim Dong Won

섬의 곳곳에서 낡은 옛건물을 만나게 된다.
아득한 추억처럼 낡아버린 건물들이다.
그 낡은 건물 앞에 서서
안내판에 적힌 건물의 사연을 읽다 보면
자꾸만 마음이 슬퍼진다.
하지만 그곳에서 만난 사람들이 우리에게 건넨 웃음은
그 일들은 다만 기억에만 담아두고
이제 이곳에서 즐겁게 하루를 보내다 가라고 말하고 있었다.

Photo by Kim Dong Won

아마 내년쯤에는 배가 아니라
다리를 건너 소록도에 갈 수 있을 것 같다.
헤엄쳐서 섬을 빠져나가려 해도
파도가 거칠어 자꾸만 소록도로 되밀려 가야했다던 그 녹동 앞바다를
다리 위에서 내려다보며 유유히 걸어 섬으로 들어가고, 또 나가보고 싶다.

Photo by Kim Dong Won

배에 차를 싣고 소록도를 떠난다.
슬픔에 또 슬픔을 얹으면
못견딜 정도로 슬픔이 깊어질 수 있다.
우리는 소록도 중앙공원으로 소풍가는 아이들에게서 실마리를 얻어
좀 철없이 자전거를 타며 그곳에서 즐거운 하루를 보냈다.
그리고 다시 배에 차를 싣고 즐거운 마음으로 소록도를 떠났다.

4 thoughts on “슬픔의 섬, 그곳에서 보낸 하루 – 고흥 녹동의 소록도

  1. 제가 어렸을때 살았던 경기도에도 산을 몇개 넘으면 나병 환자들이 모여사는
    마을이 있었어요.
    양계장을 많이 하고 있었는데 언제나 닭이나 계란이 필요하면 엄마랑 그곳에 가서 사왔었죠.
    어린 우리들은 그곳에 대한 무서운 소문들을 그대로 믿었고 가기도 꺼려했던 기억이 나네요.
    실제 가서 느낀건 우리와 다를바 없이 아이들도 있었고 노인들도 있었는데.^^

    1. 그런 기억을 생각하면 참 소문이란 무서운 거죠?
      나이들면서 얻게 되는 미덕의 하나는 실제로 보기 전에는 소문은 아무 것도 믿지 않는게 좋다는 깨달음을 얻게 되는 거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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