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들과의 매우 정치적인 대화

오랫만에 가까이 있는 산들을 찾았다.
첫날은 하남에 있는 야트막한 야산에 올랐다.
그래도 산인지라 객산이란 이름을 갖고 있다.
그 이튿날은 팔당대교를 건너 예봉산에 올랐다.
오르고 내리는 동안 꽃들을 만났다.
때가 때인지라 마주친 꽃들과
자꾸만 정치적인 대화를 나누게 되었다.
그다지 나쁘지 않았다.

Photo by Kim Dong Won
2012년 4월 6일 경기도 하남의 객산에서

올해 처음으로 진달래를 만났다.
한 열흘 정도 지나면 본격적으로 필듯 싶었다.
진달래에게 물었다.
너는 투표권있으면 어느 정당에 찍을 꺼니?
-나는 진보신당이지.
엇, 왜 하필 진보신당이야?
혹시 그 당의 홍세화를 꽃으로 잘못알고 있는 거 아냐?
홍세화는 꽃이름이 아니라 사람이라구.
-그건 아니구
같은 진씨라서 친숙하게 느껴지는데다가
그 당이 믿을만해 보이더라구.
그렇구나.
진달래랑 진보신당이 모두 진씨구나.

Photo by Kim Dong Won
2012년 4월 6일 경기도 하남의 객산에서

가다 보니 이제 몽우리가 잡힌 진달래와
어느 정도 몽우리를 열어
꽃의 모습을 갖춘 진달래가 함께 서 있다.
아이와 젊은 엄마 같다.
곧 몽우리가 꽃을 피우면
둘이 누가 엄마고 누가 아이인지 알 수 없어질 것이다.
그렇게 아이들이 커서 엄마가 되고 아버지가 된다.
진달래는 어릴 때나 커서나 진달래의 채색을 버리진 않는다.
하지만 요즘의 양상을 보면 우리는 많이 다르다.
이상하게 젊을 때는 진보적 색채를 가지나
나이들어가면서 보수적 색채로 변질이 된다.
아이 하나 잘되는 걸 평생의 소원으로 삼아
자기 인생을 다 받쳐 고생고생하며 키워놓고는
선거 때만 되면 이상하게 투표를 하여 그 아이의 미래를 가로막는다.
도대체 왜 이러는 걸까요?
알 수가 없다.
아마 진달래도 모를 것이다.

Photo by Kim Dong Won
2012년 4월 6일 경기도 하남의 객산에서

몽우리는 작아도 이렇게 모아서 터뜨리면 엄청난 힘이 될거다.
투표도 비슷한 것이 아닐까.
진달래가 꽃을 터뜨리며 봄에 투표하고
우리도 나라를 겨울 공화국으로 몰고간 세력을 몰아내겠다는 의지로 한표 찍어
이 땅의 봄을 다시 불러올 것이다.

Photo by Kim Dong Won
2012년 4월 6일 경기도 하남의 산곡동에서

봄에 만나는 꽃들 가운데 노란 꽃이 상당히 많다.
동네 근처에선 산수유가 세상을 노랗게 칠하고 있다.

Photo by Kim Dong Won
2012년 4월 7일 경기도 팔당의 예봉산에서

산으로 가면 산수유와 비슷하게 생겼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분명하게 차이가 나는 생강나무가
노란꽃으로 또 세상을 물들이고 있다.

Photo by Kim Dong Won
2012년 4월 6일 서울 천호동에서

동네에선 또 개나리가
골목길을 지나는 사람들의 마음을
노란 빛으로 물들인다.

Photo by Kim Dong Won
2012년 4월 7일 경기도 팔당에서

길가에선 민들레가 노랗다.
산수유, 생강나무, 개나리, 민들레가 모두
세상을 노랗게 칠하자고 했다.
빨갛게 칠하자는 꽃은
이 봄에 거의 만나지 못했다.
꽃도 뭔가 아는 눈치였다.

Photo by Kim Dong Won
2012년 4월 7일 경기도 팔당에서

봄에 만나는 꽃들은 작은 것들이 많다.
주의를 기울이지 않으면 그냥 지나치게 될 정도로 작다.
축대의 돌틈의 사이에서 작고 어린 꽃들을 만났다.
혹시 이 작은 꽃들이 여기저기서 피어 봄을 열고 있는 것은 아닐까.
적어도 요즘 이 땅의 선거에선 그런 듯하다.
젊고 어린 사람들이 표를 모아 봄을 열고 있다.
나이가 들면 젊은 시절로 되돌아갈 수는 없다.
하지만 나이가 들어도 젊게 생각하는 것은 가능할 것이다.
또 젊게 투표하는 것도 가능하다.
나는 젊게 투표할 생각이다.

Photo by Kim Dong Won
2012년 4월 7일 경기도 팔당의 예봉산에서

동네 근처의 밭두렁 같은 곳에서
흔하게 만날 수 있는 것이 제비꽃이지만
제비꽃도 산으로 높이 올라갈수록 희귀해진다.
동네 근처는 살기에 편하지만
높은 곳은 사는 것이 만만치 않다는 뜻이리라.
어렵고 힘겨운 곳에서 꽃을 피웠으니
사는 것이 어려운 사람들의 심정도
어느 정도 더 잘 이해해 줄 수 있지 않을까.
제비꽃을 슬쩍 꼬신다.
-제비꽃아, 제비꽃아, 너도 한번 출마해보는 건 어떠니?
네가 나오면 내가 꼭 한 표 찍어주련다.
너는 공약 내세우기도 좋잖아.
유권자 여러 분, 저는 제비꽃입니다.
저는 당선되면 제 이름값을 하도록 하겠습니다.
꽃을 피워 봄을 부르고
봄이 올 때 제 이름을 내세워 제비도 함께 부르겠습니다.
그리하여 아버지에게 물려받은 검은 유산으로
부과 권력을 독식하려는 놀부 세력을 몰아내고
당연히 누려야할 세끼 식사의 권리를
마치 거지라도 된 듯 빌어먹어야 하는 흥부 계급에게
분배와 나눔의 박씨를 나누도록 하겠습니다.
그 분배의 박씨로
부과 권력의 세습에서 소외된 흥부 계급이
능력도 없는데 애만 많이 낳았다는 서러운 얘기를 듣지 않고
의무 급식, 의무 교육으로 돈없이도 애를 키울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사랑이 죄가 되지 않도록 모든 아이들을 밥의 사랑으로 껴안겠습니다.
제비꽃아, 네가 출마해서 요렇게 선거운동하고 다니면
내가 너한테 주저없이 한표를 내줄께.
근데 너 색깔이 보라색인게 어디 지지하는지 은근히 표난다.

2 thoughts on “꽃들과의 매우 정치적인 대화

답글 남기기

이메일 주소는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필드는 *로 표시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