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래에 그녀가 사진 배우기에 나섰다.
언젠가 그림을 배워보고 싶다며
집근처의 그림 학원에 등록한 적이 있었지만
결국 빈궁한 가정 경제의 사정 때문에 뜻을 접은 적이 있었다.
이번에는 오랜 투자 기한을 요하는 그림 대신 사진으로 뜻을 옮겼다.
30만원이라는, 거의 내가 하룻밤에 술값으로 탕진하기도 하는,
저렴한 액수의 금액을 큰 부담이라도 되는 듯
몇 번 나에게 그 금액을 언급하며
이 정도의 돈이 드는데 사진을 배워도 되겠냐고 물어보았다.
그리고는 당연한 나의 동의를 아주 즐겁게 챙겨서 사진 배우기에 나섰다.
그녀가 30만원으로 한 일은
한겨레 문화 센터의 사진 강의에 등록을 한 것이었다.
강의는 토요일마다 있고 10주 동안 계속된다.
그 사이에 한겨레에서 일반인의 사진작가 등용문이라고 표방을 하고 있는
포토워크숍에 참가를 했다.
이번 포토워크숍은 전주에서 2박3일의 일정으로 진행되었다.
참가자들이 제출한 사진 가운데서 두 명을 골라 최우수상과 우수상을 시상한다.
그녀가 세 명의 후보자들 가운데서
두 번이나 동점이 나오는 치열한 경합 속에 우수상을 받아왔다.
나는 상을 받았다는 사실에는 기뻤으나
상금이 없다는 사실 앞에선 실망스럽기 짝이 없었다.
그러나 그 나이에 상차리는 여자는 많아도
상받는 여자는 드물다는 지극히 현실적인 사실을 앞세워
그 기쁨으로 실망을 깨끗이 지워버렸다.
일단 그녀가 받아온 상패를 보여드린다.
우수상의 상패이다.
나는 혹시 경로우대가 적용된 것은 아니냐고 의심을 했으나
나이도, 사진에 곁들인 텍스트도 아니고
1차 심사는 오직 사진만으로 이루어졌다면서
그녀는 내 의심을 단칼에 베어 버렸다.
축하한다.
이제부터 조작가라고 불러야 되는거 아닌가 모르겠다.
그녀는 이 작가도, 그 작가도 아닌 조 작가이다.
실제로 내게는 항상 조만치 서 있는 작가이다.
—
그녀가 자신의 작품을 내기 전에
나는 그녀가 찍어온 사진 가운데서
내 마음에 드는 것을 골라 열 점을 가려냈다.
그녀가 심사에 낸 작품과는 다르다.
나는 그녀의 사진을 보며 사진의 뒤를 생각했다.
모든 사진은 무엇인가를 우리에게 보여준다.
보여주는 그대로 받아들인다면
사진에서 사진을 보는 사람의 자리는 없어지고 만다.
사진을 보며 사진의 뒤나 옆을 생각하면
우리는 그 생각을 통하여 사진을 넘어가거나
그 옆으로 우리의 자리를 마련할 수 있다.
나는 그녀의 사진을 보여주는 대로 받아들이기 보다
그 사진의 뒤나 옆에 나의 자리를 마련하며
그녀의 사진과 함께 서보고 싶었다.
그렇게 내가 사진의 뒤로 넘어가거나 옆에 서게 되었던
그녀의 사진 열 점과 그에 대한 나의 사진 독법을
그녀의 수상에 대해 내 방식으로 전하는 축하의 뜻으로 소개한다.
사진은 내게
카메라를 호기심어린 눈초리로 응시하고 있는
한 아이를 보여준다.
그러나 아이의 뒤로 넘어가면
아이를 안고 있는 한 아버지가 보인다.
사진의 앞에선 아이의 호기심이 보이고
사진의 뒤에선 그 아이의 호기심을 채워주기 위해
아이가 아직 갖지 못한 높이를
자신의 어깨로 내주고 있는 아버지의 사랑이 보인다.
사진은 내게
사람들로부터 등을 돌리고 무엇인가에 열중인 한 아이를 보여준다.
왜 아이는 자신이 하는 무엇인가를 대놓고 하지 못하고
등을 돌린 상태로 열심인 것일까.
사실 지금 아이는 열심히 게임 중이다.
혹 아이가 지금 열심히 책을 읽고 있는 중이라고 해도
등을 돌리고 자신이 하는 일을 숨겼을까.
아이는 은연 중에 공부 이외에는
아무 것도 인정받지 못하는 한국 사회의 교육 현실을
등을 돌리고 무엇인가를 숨기고 하고 있는 자신의 모습을 통하여 보여준다.
사진의 뒤로 돌아가면 그래서
무엇인가를 숨긴 아이가 아니라
공부 제일주의로 치닫고 있는 우리의 교육 현실이 보이기 시작한다.
사진은 내게
시장에서 나물파는 아주머니 한 분을 보여준다.
아주머니는 나물을 팔아야 한다.
파는 사람은 사는 사람과는 다르다.
사는 사람들은 그냥 지나가는 것이 아니라
알고 보면 파는 사람들의 시선을 거두어가면서 지나간다.
사는 사람들이 시선을 거두어가기 때문에
파는 사람들은 지나는 사람들의 표정에 자신의 시선을 빼앗기지 않을 수 없다.
그래서 언듯보면 무엇인가를 팔기 위해
사람들을 열심히 살피고 있는 아주머니의 얼굴이 보이지만
더 자세히 보면 사는 사람들이 거두어가고 있는 아주머니의 시선과
그 둘 사이의 역학 관계가 보인다.
사진은 내게 배추를 가지런히 쌓아놓고
손님을 기다리고 있는 아주머니를 보여준다.
그러나 사진의 속으로 슬쩍 들어가면
삼각 김밥과 매우 유사한 삼각 배추가 보인다.
삼각 김밥을 통하여
김밥은 그동안 김밥을 지배하던 원의 소용돌이를 벗어나
각의 세계로 탈출하는 환희를 맛볼 수 있었다.
아주머니의 삼각 배추도
배추가 갖는 원의 숙명을 뿌리치고
그 원을 맞대면 삼각의 구도로 손님을 부를 수 있음을 보여주며
바로 그 자리에 각의 구도로 손님을 유혹하는
아주머니만의 남다른 세계가 있다.
사진은 내게 닫힌 창, 돌들이 문양을 이루며 맞물린 벽,
그리고 희미한 연기를 내뿜고 있는 연통을 보여준다.
사진의 구성 요소들은 모두가 속은 무엇 하나 보여주지 않지만
그러나 사진의 속으로 슬쩍 들어가면
방을 채워주고 있을 따뜻한 훈기를 만나게 된다.
다시 말하여 겉에선 닫힌 문과 두터운 벽이 보이지만
그 뒤에선 따뜻한 훈기가 보인다.
연통에서 빠져나가고 있는 희미한 연기는
그 훈기의 직접적 증언자이다.
사진은 내게
기와의 처마와 가지끝을 맞댄
꽃나무 하나를 보여준다.
그러나 좀더 파고들면
사진 속의 꽃은 그냥 꽃이 아니라 매화로 구체화되며
그 매화의 시간을 미래로 확장하면
꽃이 핀 자리에서 매화가 아니라 매실의 꿈을 만날 수 있다.
사진은 내게
식사 중인 한 아저씨를 보여준다.
그러나 사진의 뒤로 건너가면
한끼의 식사를 위해
오전 내내 자신의 몸을 내준 아저씨의 노동이 보인다.
물어보니 아저씨는 대장간을 꾸려가고 있는 분이라고 했다.
아저씨의 노동은 더더욱 강도가 높을 것이다.
그러니 아저씨의 밥은 때되면 먹는 밥이 아니라
노동으로 만들어낸 밥이다.
앞에서 보면 다 같은 밥이지만
뒤로 돌아가면 아저씨의 밥은 땀으로 빚어낸 남다른 밥이다.
사진은 내게
물에 비친 소나무 한 그루와 굴뚝의 풍경을 보여준다.
왜 그녀는 반영을 찍었을까.
우리는 때로 그냥 보기보다 무엇엔가 담고 싶어한다.
담아내면 잘 차려진 느낌을 주기 시작한다.
예쁜 접시에 음식을 가지런하게 담아서 내놓는 것도
그러한 욕망의 발로이다.
그녀가 찍은 반영의 사진에선
그냥 날 것으로 내놓기 보다
사진을 잘 차려서 내놓고 싶다는 욕망이 만져진다.
우리는 보여주고 싶은 한편으로
단순히 보여주는데 그치지 않고 잘 차려서 내놓고 싶어한다.
사진도 때로 음식처럼 접시에 담아서 내놓고 싶어한다.
사진은 내게
허공의 가는 선을 붙잡으려 하는 듯한 손 하나를 보여준다.
손은 지금 선을 벗어나 있다.
요즘의 세상에선 선을 벗어나면 그곳은 오프라인의 세계이다.
오프라인을 마다하고 온통 온라인으로 몰려가고 있는 것이 요즘의 세계이다.
손은 온라인의 세상을 놓치지 않으려는 요즘 세상의 욕망을 보여주는 듯하다.
사진은 내게
창호지로 가려진 문앞에
비스듬한 자세로 서 있는 한 아가씨의 뒷모습을 보여준다.
창호지 문은 아래쪽의 두 칸을 빈틈으로 남긴 채 열어놓고 있지만
아가씨는 노골적으로 몸을 낮추어 그 빈틈에 시선을 맞대지 않는다.
때문에 아가씨의 앞으로 돌아가면
얇은 창호지로 가려진 문의 뒤쪽에 대한 궁금증과
그러면서도 자세를 숙이면서까지 그곳을 알고 싶지 않다는
묘한 자존심 사이의 팽팽한 긴장이 보일 것만 같다.
궁금증과 자존심의 대결에서 누가 승자가 되었는지는 나는 알 수가 없다.
가끔 사진의 뒤는 사진을 찍은 자밖에 아무도 모른다.
6 thoughts on “우수상을 타온 그녀”
상받는 여자^^ 그럼요 정말 축하 드립니다
이렇게 또 부부간의 축하법…참 흔치 않을듯 하네요
두 분 모두 축하 드려요 ~~
사진…참 좋네요!
상받은 것도 기쁜 일이지만
역시 가장 큰 즐거움은 좋은 사람들을 새로 만난 즐거움 같아요. ^^
나는 상을 받았다는 사실에는 기뻤으나
상금이 없다는 사실 앞에선 실망스럽기 짝이 없었다.
하하하하하하하
근데 사진 정말 멋집니다. 내용이 있는 사진이네요….
햐~
내용없는 사진인데.. 내용은 내가 채운 거예요. ㅋㅋ
이런 멋진 사랑법도 있었군요.^^
조작가님과 김평가님 덕에 사진이 훨씬 생생하게 다가오고
어느새 저도 사진속 어느 지점으로 들어갈 수 있었네요.
두 분께 축하와 감사를 함께 드립니다.
축하 고맙습니다.
아주 좋아서 하늘로 공중부양이라도 할 기세입니다. 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