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의 동쪽 끝에서 살다보니
동쪽으로 조금만 나가면 만나는 하남의 산과 친하게 지내고 있다.
어느 해 사정이 궁핍하여 먼 곳으로 여행을 하지 못하게 되면서
이 하남의 산과 남한산성을 돌아볼 기회가 생겼고
그때 객산에서 남한산성의 벌봉으로 이어지는 길을 알게 되었다.
지금은 안내가 잘 되어 있는데
그때는 표지판 하나 없는 길이었다.
작은 야산을 몇 번 오르내리는 그 길은
다른 무엇보다 진달래가 아름다운 길이었다.
사실 나는 이곳보다 더 진달래가 아름다운 곳은 지금까지 경험하지 못했다.
바야흐로 진달래가 한창인 때이다.
오랫만에 그 길을 다시 걸었다.
객산을 타고 남한산성 벌봉까지 가고
그곳에서 다시 남한산성의 북문으로 걸었다.
북문에선 성바깥으로 나가
법화골로 이어지는 산길을 타고 그곳의 마을로 내려왔다.
벌봉에서 북문까지의 남한산성 구간을 제외하면
계속 진달래와 함께 할 수 있는 길이었다.
어느 해의 기억과 마찬가지로 여전히 그곳의 진달래는 아름다웠다.
진달래와 놀며 쉬며 걸었다.
야, 그만좀 내리 눌러.
아래 진달래 다 찌부러진다.
그러게 말예요.
우리처럼 이렇게 포개진 듯 만 듯 서야
좀 품위가 사는 건데 그걸 잘 몰라요.
그저 좋으면 뭉개질 정도로 비비려 든다니까요.
진달래 둘이 깊게 입을 맞추었다.
주변의 진달래들,
시선을 어디에 둘지 몰라 적지 않게 당황했다.
여기저기로 시선을 피하느라 완전히 난리였다.
몇 번 걸어갔던 길이다.
그러나 오늘은 같지만 같지 않은 길이다.
오늘은 멀리 길의 중간에서 분홍빛의 그녀가 기다리고 있다.
누군가가 기다리면 같은 길도 완전히 새로운 길이 된다.
나무의 연인이 된 진달래.
진달래야, 니가 좋다니 어쩔 수가 없다만
나무와 사귀면 큰 오해가 생길 수 있단다.
사람들이 나무를 기둥서방이라고 오인할 수 있거든.
그러니 잘 생각해서 사귀도록 해.
진달래의 3자 대면.
무슨 일인지 모르겠는데
3자 대면까지 가고 그래.
하여간 셋이서 얼굴까지 맞댔으니
잘 해결들봐.
야, 누가 날 불렀어?
뭐, 아무도 안불렀다구?
진달래는 함부로 불러선 안된다.
특히 진달래를 뒤에서 부르는 일은 절대로 피해야 한다.
진달래는 한번 고개를 돌려 뒤를 보면 다시는 앞을 못본다.
그래 이 많은 진달래를 정말 네가 몰고 왔다는 거야?
너 표몰이 장사하면 아주 잘하겠다.
자자, 줄을 서시오.
서라고 해서 서긴 선다만 도대체 이게 무슨 줄이지?
진달래 넷이 영문도 모르고 줄을 서 있었으며
나도 무슨 줄인줄 알 수가 없었다.
흥, 그래 나는 빠져줄테니, 너네 둘이 어디 잘해봐라.
진달래 하나가 등을 돌리고 떠나려 하자
남겨진 진달래가 그게 아니라며
내 말좀 들어보라고 붙잡으려 하고 있었다.
그 사이에서 벌 한 마리가 무슨 일이냐며
이 진달래와 저 진달래 사이를 오가며
궁금증을 달래지 못해 안달이었다.
빨리 안오고 뭘해.
응, 곧 갈테니까 먼저가.
그러나 말은 그렇게 해도
진달래의 마음은 뒤쪽으로 돌아서 있었다.
얽히고 설킨 것이 우리들의 삶.
그러나 그 어지러운 삶 속에서 아름다움이 꽃핀다.
마른 나무들이 얽힌 어지러움 속에서
진달래의 봄이 아름답게 피어 있었다.
진달래의 꽃그늘에 들었더니
하늘에 진달래가 가득이었다.
분홍빛 눈이라도 쏟아질 듯한 느낌이었다.
너도 활짝필 절정의 그 날을 기다리고 있겠지.
하지만 살아보니 너만할 때가 가장 아름답더구나.
넌 분홍빛 립스틱 짙게 바르고 세상에 나온 애구나.
해가 산등성에 걸렸다.
산등성을 넘어와 높이를 눈에 맞춘 저녁해에 진달래가 물들었다.
진달래는 분홍빛 별이 되어 반짝였다.
이상한 일이었다.
진달래는 진달래로 있을 때보다
저녁해에 물들었을 때 더욱 아름답게 빛났다.
우리도 그럴 것이다.
사랑하는 사람에게 물들었을 때
가장 아름답게 빛난다.
저녁해에 물든 진달래가 말해주었다.
우리들이 사랑의 빛에 물들었을 때
바로 이와 같이 아름다웠노라고.
2 thoughts on “하남의 객산, 남한산성의 벌봉, 법화골의 진달래”
가까운 곳에 이렇게 진달래 많고 아름다운 곳이 있었네요.
꽃들과 이런 대화를 나눌 수 있는 내공을 기르려면 수삼년은 지켜봐야겠죠?
주말에는 많이 지겠구나.. 그런 생각이 들더라구요.
이번에 알았는데 고골에서 벌봉쪽으로
진달래길이라고도 있는 것 같았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