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에게 바칠 수 있는 가장 흔한 헌사로
‘아름답다’나 ‘예쁘다’는 말이 있기는 하지만 그것도 한두 번이다.
볼 때마다 그 말을 되풀이하다 보면
꽃도 지겨워지고 나도 지겨워진다.
나는 그래서 봄의 산길을 걸으며 그냥 진달래와 놀았다.
진달래와 노는 것은 아주 간단하다.
그냥 진달래를 우리 삶의 한가운데로 끌어들여
우리의 곁에 세우는 것이다.
그 예쁜 진달래에게
온갖 애환으로 점철되는 우리의 삶을 덧입힌다는 것은 미안한 일이지만
매해 겨울을 이기고 꽃을 피우는 것이 녹록치 않을 것이란 점을 생각하면
진달래나 우리의 삶이나 비슷한 측면도 있을 것이다.
어쨌거나 그렇게 하여
나는 4월의 어느 봄날에 산길을 걸으며 진달래와 놀았다.
다들 고만고만한데 너네 셋은 왜 이렇게 키가 커?
도대체 뭘 먹은 거야?
진달래가 우유를 마셨을리도 없구.
혹시 골대가 아래로 내려다 보이는 농구 슈터를 꿈꾼 거 아냐?
진달래는 멀리 산을 바라보고 있었다.
허걱, 그렇게 높은 꿈을.
다들 가지 하나씩들 꿰차고 따로따로 자리를 잡으셨군.
요즘은 작은 방을 하나 마련하고
그곳에서 혼자 살아가는 것이 대세인 원룸 시대라더니
진달래 세상도 빠르게 시대의 조류를 읽으셨나 보다.
그럼 이렇게 꽃이 핀 건 원룸형 진달래라 그런 건가.
난 자욱한 갈색의 가을 추억 위에
분홍빛 기치를 높이 든 봄의 깃발이라오.
넌 어떻게 된거야?
아, 말시키지마.
지금 목아파 죽겠어.
바람이 하도 몰려가길레 뭔가 궁금해서 목을 빼다가
완전히 목이 빠져버렸어.
내가 궁금증에 죽고 못살어.
우린 서로 등을 맞대고 바퀴가 되어
이 진달래 세상을 굴려가겠어.
같이 가자, 먼저 가지 말고.
무슨 소리야,
아까부터 이제 오나 저제 오나 주구장창 기다렸는데 계속 거기 있으면서.
굳어진 거리가 오해를 낳고 그 오해가 평생의 운명이 되어 버렸다.
얘야, 왜 이렇게 버팅기니.
등에 좀 붙어라.
너를 업어키우는 진달래 엄마 너무 힘들다.
아니, 웬 자리 싸움이야.
자리가 한 자리면 진달래도 어쩔 수가 없는 거야.
진달래는 봄의 한철, 자신의 꽃으로 세상을 채운다.
우리도 우리의 삶으로 세상을 채우고 있을 것이다.
우리가 세상에 채우는 우리의 삶도 진달래꽃처럼 예쁜 것일까.
진달래 막대 사탕.
사탕이라고 했다고
혓바닥 날름거리지 마시구요,
그냥 눈에게 양보하세요.
둘이 붙어 있으니 분위기가 화사하기 이를데 없군.
연인들의 분위기란 것이 이런 것이겠구나.
반짝반짝 빛이 나는 것을 보니
펄 화장을 했나 보구나.
그냥도 아름다운데 무슨 화장이냐.
다음부터는 그딴 거 하지 마라.
너는 있는 그대로도 눈이 부시도록 아름답다.
진달래 반상회.
자, 다들 모였나요.
그럼 반상회 시작합니다.
오늘은 안건은 그러니까…
연인은 두 가지다.
같은 방향을 보는 연인이 있는가 하면
등을 맞대고 다른 방향을 보는 연인도 있다.
다만 그 둘이 붙어 있다는 것은
어느 경우에나 공통점이다.
그러므로 연인에게 있어 둘이 바라보는 방향은 중요하지 않다.
연인이란 붙어있느냐 마느냐로 증명이 되는 것이지
둘이 바라보는 방향으로 증명이 되지 않는다.
우리 이제 찢어져.
그래 좋아 찢어져.
인간 세상에선 갈라서면 그다지 보기에 좋지 않으나
진달래의 세상에선 갈라서도 여전히 아름다웠다.
진달래로 좌우로 늘어서면
갑자기 그 길이 환상처럼 느껴진다.
진달래는 우리가 걷는 길을
정신이 아득해지도록 만드는 환상의 힘을 갖고 있다.
삶을 활처럼 휘어서 은하수처럼 걸어볼 일이다.
같은 꽃이지만 진달래를 가지에
어떻게 걸어놓느냐에 따라 분위기가 확 바뀐다.
삶도 마구 살기 보다 가지런하게 가지에 걸듯 살아보면
은하수처럼 빛나지 않을까 싶다.
이쁘긴 정말 이쁘다.
진달래의 이쁜 미모는 걸음을 붙잡고 놓아주질 않는다.
진달래 뿔났다.
선거할 때 투표 좀 잘하시고,
뽑힌 사람들은 일들 좀 잘하셔.
야, 내가 너네 둘에게 해줄 얘기가 있는데 말야.
꼭 이간질 재미에 흠뻑 빠진 진달래 같기도 했다.
여긴 진달래 립스틱 가게인가 보군.
이런 가게는 며칠을 못가더구만 계속 문을 열긴 하는군.
꽃은 하나밖에 남지 않았지만
진달래가 부른 꽃의 노래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이제 잎들이 그 노래를 이어받아 푸른 노래를 부르기 시작한다.
진달래의 노래는 분홍의 서곡으로 시작되어
푸른 노래로 이어진다.
푸른 잎의 노래가 서서히 고개를 들고 있었다.
2 thoughts on “산길을 걸으며 진달래와 놀기”
산길을 걷다 진달래 만나면 그 앞에 서서 카메라를 들이대며 두런두런
대화를 나누신 털보님 모습이 떠올라 보는 내내 미소를 지었습니다. 이쯤 되면
털보님이 놀아주신 건지, 진달래가 놀아준 준 건지 도통 구분이 안 되는데요.
평일이라 그런지 사람들은 거의 없었어요.
진달래 꽃몽오리 따는 사람들 몇이 눈에 띄던데..
어디다 쓰려고 그러는 건지 모르겠더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