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사는 천호동의 동네 풍경

두 해 전 일본의 도쿄에 가서 열흘 정도 머물다 왔다.
유학 중인 딸을 보러 간 길이었기 때문에
딸이 다니고 있는 대학을 둘러보았으며
딸이 참가한 연극제를 관람했다.
그리고 나머지 시간은
사람들이 흔하게 찾는 관광지를 멀리하고
딸이 살고 있는 동네와 그 주변 동네를 둘러보는데 할애했다.
도쿄의 키타구에 속하는 주조와 이타바시, 아카바네가 그 동네들이었다.
내게는 아주 좋은 경험이었다.
말하자면 서울에 관광와서 흔한 관광지를 버리고
그냥 사람들이 살고 있는 평범한 동네를 돌아본 셈이었다.
그때 생각이 나서 문득 내가 사는 동네도 한번 돌아보면 어떨까 싶었다.
나는 천호동에 살고 있다.
그리하여 마치 도쿄에서처럼 내가 사는 곳을 어슬렁거리며 돌아다녀 보았다.
카메라 하나 둘러메고 내가 사는 곳으로 떠난
간편하면서도 재미난 여행이었다.

Photo by Kim Dong Won
2012년 4월 28일 서울 천호동에서

원래는 아파트 주민들의 길이었으나
고양이가 그 길의 한가운데 앉자
그때부터 그 길은 고양이의 길이 되었다.
사람들이 용케 그 사실을 알아차리고 길을 비켜갔다.

Photo by Kim Dong Won
2012년 4월 28일 서울 천호동에서

체구가 작아 눈에 잘 띄지 않는 개미들은
고양이처럼 사람들의 길을 대놓고 점거했다가는
큰 위험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리하여 개미들은 현명하게 머리를 굴려
계단과 계단이 맞물려 접히는 곳에 자신들의 길을 마련하고
열심히 그 길로 오가고 있었다.
사람들의 발걸음이 전혀 범할 수 없는 개미들의 길이었다.
사람들은 개미들의 길이 그곳에 있는지도 모르고 계단을 오르내렸다.

Photo by Kim Dong Won
2012년 4월 28일 서울 천호동에서

아파트, 거의 꼭대기층 창밖으로 빨간 화분 하나가 놓여있었다.
상당한 높이였으나 화분을 키우는 마음은
그 높은 높이를 가뿐하게 내려와 잠시 나와 함께 해주었다.

Photo by Kim Dong Won
2012년 4월 28일 서울 천호동에서

차들과 오토바이의 한판 맞장.
누가 이겼는지는 확인해보지 않았다.

Photo by Kim Dong Won
2012년 4월 28일 서울 천호동에서

으아, 재미나겠다.
타고 내려가면 꽈배기가 되어 나올 것만은 비상 탈출구.

Photo by Kim Dong Won
2012년 4월 28일 서울 천호동에서

보일러의 연통을 보면
꼭 대포의 포신같다는 느낌이 들곤 한다.
덮쳐오는 추위를 격퇴하려고
올겨울 뜨거운 열기를 내뿜으며 끊임없이 쏘아대기는 했겠지.

Photo by Kim Dong Won
2012년 4월 28일 서울 천호동에서

담은 우리를 환영해 주지 않는다.
우리의 걸음을 막고 제지할 뿐이다.
담쟁이는 그런 담의 세상이 삭막하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래서 벽을 넘어 푸른 손짓으로 지나는 사람들에게 인사를 건넨다.
담쟁이의 인사는 푸르지만 인사를 받는 사람은 마음이 따뜻해진다.
푸른 담쟁이는 붉은 벽돌담도 건네지 못하는 따뜻함을 갖고 있다.

Photo by Kim Dong Won
2012년 4월 28일 서울 천호동에서

네 명의 친구들.
하지만 이들의 우정은 보통이 아니다.
이들의 우정은 팔짱으로 엮인 절친 우정이다.
어지간 해선 떨어지질 않는다.

Photo by Kim Dong Won
2012년 4월 28일 서울 천호동에서

한걸음 한걸음 계단을 오를 때마다
화분들의 환영으로 사람을 맞아주는 집.

Photo by Kim Dong Won
2012년 4월 28일 서울 천호동에서

내가 사는 천호동은 리히텐슈타인의 「행복한 눈물」을
거리의 벽에 걸어두는 엄청난 동네이다.

Photo by Kim Dong Won
2012년 4월 28일 서울 천호동에서

요즘은 집집마다 우편함에서 편지는 보이질 않고
고지서들이 돈을 내놓으라고 손을 벌리고 있는 세상이다.
그래서 고지서들에게 제 때 돈을 쥐어주지 않으면
사는게 힘든 세상이다.

Photo by Kim Dong Won
2012년 4월 28일 서울 천호동에서

골목을 따라 떠돌다 보니 절이 다 있다.
절의 이름은 감탄사.
감탄이 절로 나오는 절인가 보다.

Photo by Kim Dong Won
2012년 4월 28일 서울 천호동에서

어느 집의 집밖에 놓인 화분 하나에
민들레가 가득 차 있다.
일부러 가꾼 것은 아닐 것이다.
그냥 바깥에 내놓은 화분에
우연히 민들레가 자리를 잡은 것이리라.
빈화분 내놓고는 큰 선물을 받은 기분이었을 것이다.

Photo by Kim Dong Won
2012년 4월 28일 서울 천호동에서

여인숙이냐, 여관이냐,
그것이 문제인 골목.

Photo by Kim Dong Won
2012년 4월 28일 서울 천호동에서

회양목 우물에 나무가 빠진 날.

Photo by Kim Dong Won
2012년 4월 28일 서울 천호대교에서

연인의 길.
다른 이유는 없고 둘이 걷기에 딱좋은 폭이었다.
천호대교의 남쪽 보행로이다.
이곳을 통하여 한강으로 갈 수 있다.

Photo by Kim Dong Won
2012년 4월 28일 서울 천호동 한강변에서

올림픽 대교까지 걸었다.
불을 켜든 길이 공중을 휘감아 돌며 길을 찾고
하늘은 반달을 띄워 세상을 밝히고 있었으나
이제는 모두 가로등 빛으로 길을 찾아갈 뿐
아무도 달빛으로 길을 구하지 않았다.
그러나 하늘의 구름은 여전히 달빛으로 길을 찾는 듯 했다.

Photo by Kim Dong Won
2012년 4월 28일 서울 천호동 한강변에서

한강변의 가로등 불빛 아래, 자전거 한 대가 졸고 있다.
야, 집에 가서 자.

Photo by Kim Dong Won
2012년 4월 28일 서울 천호동 한강변에서

전철이 길게 꼬리를 끌며 한강을 건넌다.
많은 이들의 집으로 가는 걸음을 싣고.

Photo by Kim Dong Won
2012년 4월 28일 서울 천호동 한강변에서

서울은 점점 편해진다.
이제는 잠실 철교를 엘리베이터로 오르내릴 수 있다.
예전에는 이곳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있는 계단을 이용했었다.
계단은 이제 무용지물이 되었다.
편한 것 앞에서 나도 여지없이 무너졌다.

Photo by Kim Dong Won
2012년 4월 28일 서울 한강의 잠실철교에서

파리의 연인은 퐁네프 다리 위에 있고
서울의 연인은 잠실철교 다리 위에 있다.
밤이 짙어지면서 연인들의 사랑이 깊어간다.

2 thoughts on “내가 사는 천호동의 동네 풍경

  1. 자기가 사는 동네 여행. 익숙하면서도 낯선 새로운 여행 루트네요.
    뭐 새로운 게 있을까 싶지만, 막상 야행자의 눈으로 둘러보노라면 정말 새로운
    것들이 많을 것 같아요. 저도 한 번 따라하고 싶어지는데요.
    무엇보다도 이 여행엔 돈이 안 들어가 좋네요.^^

    1. 천호동이 평지라고 생각했는데 은근히 높은 곳도 있고 그렇더라구요.
      그냥 발길 닿는대로 올라가기도 하고 휘어지기도 하면서 다녔는데 사진찍을 거리가 많았어요.
      경복궁 서쪽 동네도 상당히 괜찮다고 들어서 거기도 한번 나가볼까 그러고 있습니다.
      딱 버스비밖에 안들더군요.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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