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한산성을 아주 자주 다녔다.
집에서 가깝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주로 마천동 쪽에서 오르는 등산로를 이용했다.
하지만 자주 같은 곳으로 오르다 보니
등산길이 무료한 느낌이 들기 시작했다.
워낙 산성이 크고 많은 산들이 주변을 둘러싸고 있어
다양한 방향으로 오를 수 있는 곳이었다.
하남의 고골로도 올라보고, 객산으로도 올라보았다.
길을 바꾸니 느낌이 새로웠다.
남한산성은 산성에 도착한 뒤에 다리가 아프면
버스를 타고 내려올 수 있어 그것도 좋았다.
이번에는 경기도 광주의 광지원이란 곳에선 출발하여 남한산성을 올라보았다.
처음간 길이었는데 아주 좋았다.
집에서 경기도 광주가는 버스를 타고 갔다.
13번이나 13-2번이다.
버스가 남한산성 입구라고 말해주면 그곳에서 내리면 된다.
등산로 입구는 언젠가 버스타고 내려올 때 미리 봐두었다.
이번에 타고 간 산행길을
남한산성 홈페이지에서 구한 등산로 전체지도에 표시해 보았다.
아주 길게 타고 간 것 같다.
이 등산지도는 정말 자세하게 잘 표기되어 있어
앞으로 이 지도를 이용하여 남한산성의 등산로를 섭렵해볼 생각이다.
길가의 가파른 등산로를 따라 올라가게 되는 첫산은 노적산이라고 했다.
산을 올라가니 나무들이 겨우내 빈가지로 비워두었던 자리를
푸른 잎으로 채워가고 있었다.
더 짙어져 초록이 두터워지는 것보다
이만할 때의 신록이 제일 좋은 듯하다.
헉헉대며 걸어가니 소나무가 한마디 한다.
아저씨, 앞으로도 열심히 운동좀 하세요.
매일 집에서 컴퓨터 앞에만 앉아 계시면 저처럼 배가 나와요.
뭔 얘기야.
다른 나무들은 운동 안하는데도 날씬하기만 하던데…
각시붓꽃이 지천이었다.
나무 뒤에 핀 각시붓꽃도 있었다.
나무 뒤라고 한 것은
내가 뭐하냐고 물었을 때
각시붓꽃이 쉿하고 입을 가리며
숨바꼭질하는 중이라고 했기 때문이다.
설만 숨바꼭질하면서 나무의 앞에 숨을 리는 없을 것이다.
각시붓꽃, 한껏 푸르러진 신록,
그리고 바람에 눈처럼 꽃잎을 날려보내는 산벚나무에 계속 한눈을 팔면서
노적산 꼭대기까지 왔다.
높이는 해발 388.5m란다.
높이로 봐선 산이란 말이 무색했지만
그래도 정상이라고 표지석이 서 있었다.
높이는 그다지 높지 않았지만 계속 오르막이라 숨좀 몰아쉬었다.
푸른 잎들이 마치 탁탁 불을 튀기며
번져나가고 있는 느낌이다.
하긴 잎들은 초록의 불인지도 모른다.
생긴 모습도 처음에는 불꽃과 비슷하기까지 하다.
조금 더 걷자 또 하나의 정상이 나타나고
나무에 매달아놓은 안내판이 이곳이 약사산이라고 일러준다.
높이는 해발 415.9m란다.
등산지도 상으로는 그 다음에 약수산이라고 나온다는데
약수도 못만나고 그런 산에 대한 안내도 보지 못했다.
약을 사라고 나오고 약을 사겠다고 하면
약대신 약수를 내미는 곳이 이곳인가..
전생에 자신이 바다를 유영하던 물고기가 틀림없다는 생각이 든다면
이맘 때쯤 숲으로 가봐야 한다.
지금 숲에 물처럼 푸른 잎들이 차오르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면 산길을 걷는 것이 유영이 된다.
아련한 유영의 기억을 발로 일으키며 하루를 보낼 수 있다.
꽃을 보낸 진달래의 잎이 이리로 가시오 한다.
나는 알았소 했다.
이번 산행에서 자주 예술적 자태의 나무와 마주쳤다.
나무 껍질이 특이하여 확연히 눈에 띄는 나무였다.
이름이 궁금했으나 알 수가 없었다.
나중에 드디어 그 이름을 알게 되었다.
서어나무라고 했다.
5월쯤 잎보다 먼저 꽃이 핀다는데
그럼 잎처럼 가지끝에 매달려있는 것이 꽃이었나 보다.
어쨌거나 이름을 알게 되어 다음에 보면 아는체 할 수 있게 되었다.
나무의 껍질이 회색이어서
마치 뒤를 돌아보다 바위로 변한 나무가 아닐까 싶었다.
제비꽃도 많이 만났다.
한가지 알아두어야 점은
제비보다 제비꽃이 훨씬 이쁘다는 것이다.
제비가 난다 긴다 해도
미모만큼은 앉아서 평생을 사는 제비꽃만 못하다.
갑자기 눈앞에서 푸른 해일이 일었다.
숲의 푸른 해일은 일어나기만 할 뿐
그 밑을 가는 누구도 덮치질 않는다.
한참 동안 그 밑에서 쉬어가고 싶었다.
드디어 성곽이 나타났다.
남한산성에 다왔나 싶었는데 그것은 아니었다.
길의 이정표가 옆으로 조금가면 한봉이라고 알려준다.
지나는 김에 가본다고 가봤다.
종이에 적어 안내를 해놓고 있었다.
높이는 418.1m라고 한다.
내려갔다 올라와서 상당히 올라온 느낌이었는데
겨우 2.2m를 올라왔단 말인가.
길은 다시 또 내려가기 시작한다.
나뭇가지들 사이로 멀리 봉우리 하나가 보인다.
저쯤이 남한산성일 것 같기도 하다.
녹음이 우거지면서 어디가 어딘지 분간하기가 어렵다.
한봉으로 접어들면서 노랑각시붓꽃을 많이 만났다.
오늘의 산행길은 초입에선 각시붓꽃으로 나에게 즐거움을 주고
한봉부터는 노랑각시붓꽃으로 다시 또 기쁨을 주었다.
그렇게 흔한 꽃은 아닌데 오늘 산행길에선 아주 흔하게 만났다.
이 길로 오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여기저기 푸른 싹들이 나고 있다.
얘, 너는 노래를 부르는 거니..
아님, 햇볕을 마음껏 들이키고 있는 거니.
드디어 남한산성에 도착이다.
이 부분은 봉암성 정도가 될 것 같다.
이곳을 지나 조금 걸어가면 벌봉이 나온다.
봉암성에서 남쪽으로 바라본 풍경이다.
산에 반점처럼 박혀 있는 희끗희끗한 것들은 산벗나무들이다.
머리는 푸른 염색머리에.. 흰수염의 존재라니.
푸른 패기와 연륜을 동시에 갖추기 힘든 법인데
그걸 모두 갖춘 식물인가 보다.
벌봉을 거쳐 동장대에 도착했다.
내가 타고 온 산들이 왼쪽으로 한눈에 조망이 된다.
아래쪽으로 보이는 성곽은 동문으로 향하는 성곽이다.
중간에 국청사의 약수터에서 마른 목을 달래고
바닥을 드러낸 물병도 채웠다.
그리고 서문에 도착하니 서쪽으로 몸을 눕힌 햇볕이
성문으로 길게 꼬리를 들이밀고 있었다.
서문의 전망대에서 바라보니 서울은 뿌옇다.
내가 사는 도시이다.
오늘은 석양이 아름다울 듯 싶기도 하다.
하지만 나는 일몰을 기다리지 않고 다시 숲으로 들어가기로 했다.
나는 이제 저 푸른 숲으로 들어갈 것이다.
그리고 숲을 다 나올 때쯤
내가 숲에 완전히 소화되어 온몸에 푸른 봄이 배도록
다시 또 숲에 나를 맡길 것이다.
마천동쪽 계곡엔 벚꽃의 꽃잎이 계곡물에 내려앉아
여기저기 물웅덩이가 꽃웅덩이가 되어 있었다.
오빠와 여동생이 자전거를 타고 있었다.
둘다 모두 체구에 비해 자전거가 작다.
둘은 언덕길을 끌고 올라간 뒤
내리막을 이용해 자전거를 타고 내려오고 있었다.
세발과 두발 자전거가 그렇게
언덕을 천천히 올라갔다 쏜살같이 내려오고 있었다.
벽은 낡아도 철쭉은 낡는 법이 없다.
철쭉은 봄만되면 언제나 그렇듯이 항상 새롭다.
항상 새롭고 싶다면 벽을 쌓지 말고 꽃을 가꿀 일이다.
강아지 두 마리가 배를 땅에 깔고 앉아
지나는 사람을 무심히 쳐다본다.
영업중이라는데 어서오라고도 하지 않네.
그냥 지나칠 것을 한눈에 알아본 건가.
오늘의 남한산성 산행은 멀리 동쪽의 노적산에서 시작되어
남한산성의 북쪽 성곽을 거친 뒤 서쪽의 마천동에서 마무리되었다.
나에겐 동서를 가로지른 대장정이었다.
4 thoughts on “노적산에서 시작한 남한산성 산행”
산에 가고 싶은 날은 이집에 놀러오는 날..^^
저 조그만 잎들이 빛을 받아 투명하게 반짝일 때
정말 꼼짝할 수 없는 시간입니다.ㅎㅎ
아… 산 땡겨요~!!
어제는 1년에 서너 차례 만나는 분들과 남한산성을 탔는데 그다지 힘들지 않아서 두 분이 따님들 데리고 와도 아주 좋을 것 같더군요. 물론 완전히 돌지는 않고 절반만 돌았어요. ㅋㅋ
이게 말입니다, 차 갖고 가지 않고 운전하지 않아야 가능한 코스인데 부럽습니다.
어제 또 다른 남한산성 나들이도 즐거우셨다면서요. 다음엔 꼭 같이 가겠습니다.
언제나처럼 즐거움이 컸는데 세 명이 빠진 허전함도 컸습니다.
아주 좋았는지 다들 다음에 남한산성을 또 오자고 하더군요.
제 고향 영월로 놀러가자는 말도 나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