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 등뼈와 푸른 날개

Photo by Kim Dong Won
2012년 5월 5일 우리 집 베란다에서

처음 막
가지를 냈을 때의 나무는
푸른 등뼈 동물이다.
푸른 등뼈에 푸른 날개가 돋고,
그 때쯤이면 나무는
등뼈와 날개로만 이루어져 있는
새의 일종이 된다.
아마도 나무는 아득한 옛시절,
이 땅에 살지 않았으리라.
등뼈와 날개만으로 하늘을 날며
발에 흙먼지 하나 묻히지 않고 살았으리라.
그러다 발하나 디딜 곳없는 하늘이 문득 허망하여
땅으로 내려와 아예 한자리를 파고
뿌리를 내렸을 것이며
꼼짝도 하지 않고 한평생 그 자리를 살아가는
나무의 삶을 시작했으리라.
이제 나무는
하늘을 날던 비행의 기억은 잊어버렸다.
오늘 바람이 심하게 분다.
바람은 나무를 지나가면서
그 아득한 비행의 추억을 뒤흔든다.
나무는 푸른 날개를 휘저으며
잠시 마음의 동요를 보여주지만
이내 하늘의 허망함을 생각해내곤
땅의 자리를 그대로 지킨다.

2 thoughts on “푸른 등뼈와 푸른 날개

  1. 이 시 – 털보님이 평론뿐 아니라 괜찮은 시인 맞죠?^^ – 를 읽으면서
    문득 남반구와 북반구를 엎어놓아 거꾸로 보는 지도가 생각났습니다.
    뿌리와 가지의 선후관계, 상하관계를 뒤엎는 발상이 새롭고 특이합니다.

    1. 저는 시인은 못되구요.. 시인이 되려면 언어가 자유로워야 하는데 저는 그렇질 못해서..
      그냥 사진찍고 그 사진에 사진의 느낌을 달리 전해주는 글을 쓰는 것이 제 수준인 듯 싶어요.
      물론 그와 달리 시평은 꽤 잘하지만요.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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