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섬에 한 소년이 살았다.
소년은 항상 바닷속을 궁금해 했다.
같은 동네의 여자 아이가 소년에게 물었다.
“너는 왜 자꾸 바닷속을 궁금해해?”
“섬의 뿌리가 궁금해서.
바닷 속에 들어가면
섬의 뿌리를 만질 수 있을 것 같아.
바닷속으로 들어가서 섬의 뿌리를 만져보고 싶어.
섬이 흔들리지 않게 굳건하게 잡아주는 섬의 뿌리를.”
여자 아이는 섬을 떠나 도시로 갔고
그는 자라서 심해 잠수부가 되었다.
어느 날 섬을 찾은 그녀와 그는
어릴 때처럼 다시 섬의 바닷가에 나란히 앉았다.
여자가 물었다.
“그래 바닷속 깊이 들어가 보았니?”
남자가 고개를 끄덕였다.
“섬의 뿌리를 만져보았겠구나.”
남자가 고개를 가로 저었다.
여자가 다시 물었다.
“그럼 바닷속 깊은 곳엔 무엇이 있었어?”
남자는 그곳에는 아무 것도 없고
짙은 어둠만이 있었다고 했다.
여자가 또 물었다.
“그럼 아무 것도 보지 못했겠네?”
다시 남자가 고개를 가로저었다.
남자는 잠시 바다에 시선을 둔채 말이 없었다.
그리고 입을 열었을 때
그는 그 칠흑의 어둠이
마치 수만가지 사연으로 뒤엉킨
사람들의 삶 같았다고 했다.
그래서 그는 아프고 슬픈 사연으로 뒤엉킨 사람들의 얘기를 들을 때마다
심연으로 잠수를 했다고 했다.
그때면 마치 수만가지 사연으로 점점 어두워진
그들의 캄캄한 삶 속을 헤엄치는 기분이었다고 했다.
달리 그들에게 어떻게 해줄 수 있는 것이 없는 그는
사람들이 그들의 사연을 풀어놓을 때마다 심연으로 잠수하여
그저 어둠 속을 헤엄쳤다고 했다.
그리고 자신도 자꾸 어둠으로 채워지는 느낌이었다고 했다.
그러다 어느 날 그 칠흑의 어둠 속에서
배추흰나비 한마리를 보았다고 했다.
배추흰나비는 수면으로 날아올랐고
그가 나비를 따라 수면으로 떠오르자
배추흰나비가 사라진 그 자리로
자신의 어릴 적 그 섬이 흔들리고 있었다고 했다.
그리고 그때 그녀가 생각났다고 했다.
수만 가지의 색깔을 품은
바닥 없는 검은 우물
배추흰나비 한 마리
그 안을 날고 있다
─김점용, 「심연에 대하여─서시」 전문
여자가 남자의 어깨에 몸을 기댔다.
바다에서 배추흰나비 두 마리가 날아올랐다.
모두 그들의 섬으로 날고 있었다.
(2012년 5월 3일)
**인용된 시가 수록된 시집
─김점용 시집, 『오늘 밤 잠들 곳이 마땅찮다』, 문학과지성사, 2001
4 thoughts on “섬과 심연 – 시의 재구성 — 김점용의 시 「심연에 대하여─서시」”
동화 같은 상상력. 대단하십니다.
배추 흰나비는 죽음과 부활을 연상시키는군요.
4월 26일, 여든 셋 제 어머니의 봄날은 끝났습니다.
‘바닥 없는 검은 우물’ 안에서만 맴도는 나비가 아니었으면 합니다.
‘바다에서 배추흰나비 두 마리가 날아올랐다.’라는 글처럼 작은 몸짓이라도 비상하는 날개짓에서 위로 받고 싶습니다.
지금은 여기 시간으로 밤 2시, 어머니 없는 방에서 어머니의 유품을 정리하며 잠시 이 방을 찾아왔습니다. “시가 삶의 위로가 된다.”는 정호승 시인의 말은 진실입니다. 김동원님의 사진과 글에서 늘 확인하고 있는 사실입니다. 새삼 감사드리며…
상상력을 불러일으킨 건 시인의 시 한 편이었으니 시인들이 더 대단하죠, 뭐.
시리즈로 나가볼까 생각 중이예요.
이게 네 줄 시는 시인의 것인 건 알겠는데, 위 아래 글(시)은 각각 누가 쓴 건가요?
시인이 자기 시에 덧붙인 글인가요, 털보님의 해석/재구성이 들어간 건가요?
그게 제 상상력을 동원하여 시를 저의 상상력 가운데로 슬그머니 가져온 것이죠. ㅋㅋ
이런 식으로 시를 재구성하면서 읽어볼까 하는 생각이 들어 처음으로 시도해 봤어요.
재미날 것 같아 다른 대상을 또 물색하면서 시집을 뒤적거리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