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양천의 산책로를 따라
자전거가 달려간다.
걷는 사람도 있다.
자전거 바퀴에 빠른 속도로 시간이 채이고
사람들 걸음에 천천히 시간이 밟힌다.
채이고 밟히면서
시간은 저녁으로 접어들고 있다.
시간이 저녁으로 접어들자
햇살은 이제 때가 되었음을 다 안다는 듯이
서쪽으로 몸을 눕힌다.
한낮엔 쏟아져 내리던 꼿꼿한 햇살이 몸을 눕히자
안양천의 풀밭으로 빛의 밀물이 밀려든다.
아무리 밀물로 밀려들어도
풀들은 밀리지 않는다.
대신 풀들의 그림자가
낮게 밀려든 저녁 햇살에 휩쓸려
하천의 산책로로 길게 몸을 눕히기 시작한다.
해변의 모래밭을 간섭하는 파도처럼
풀들의 그림자가 길의 가장자리를 간섭한다.
풀들은 한번 일어서면 몸을 굽히지 않으나
풀들의 그림자는 그렇게 고집스럽지 않다.
밀려든 빛의 밀물에 풀들의 그림자가 몸을 눕히자
바람이 파도의 효과음이라도 보태겠다는 듯
풀들을 한번 뒤흔들고 지나간다.
바람이 풀을 흔드는 동안
그림자도 풀의 흔들림에 맞추어 함께 흔들린다.
곧 어둠이 몰려와 이불처럼 그림자를 덮어줄 것이다.
한번 몸을 세운 뒤로 몸을 눕히는 법이 없으며
몸을 눕히는 날 생까지 마감하며 긴잠에 드는 풀들은
그림자를 눕히고 재우면서 잠을 잔다.
2 thoughts on “풀과 그림자”
정말 사소하고 평범하다 못해 흔하기까지 한 작은 풍경에서 이야기 타래가 술술
풀리는군요. 저 같으면 쉽게 지나치거나 흥미를 못 느끼고 외면했을 것 같아요.
주말 새벽, 시간과 햇살과 바람이 한데 어울리는 멋진 변주곡을 들려주시네요.
친구가 술한잔하자고 해서 일찍 내려가서 사진좀 찍었어요. 안양까지 갔다가 술만 마시고 올라오면 좀 허무해서.. 햇볕은 좀 강했는데 덕분에 풀들의 그림자가 좋아서 얘기하나 건진 듯 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