붓꽃의 화법

Photo by Kim Dong Won
2012년 5월 17일 경기도 안양의 안양천에서

이것이 바로 이 붓으로 그린 붓꽃이요.

오, 아름답습니다.
그럼 그 붓을 허공에 대고
스윽스윽 그으면
아무 것도 없던 허공에
이처럼 아름다운 붓꽃이 그려지는 것인가요?

그렇지는 않소.
붓꽃의 화법은 일반적인 화법과는 많이 다르오.
일반적인 그림에선
붓이 화가의 뜻을 물감에 담아
화판으로 옮겨주는 매개 역할을 하지만
붓꽃의 화법에선 붓 자체가 그림이 된다오.
때문에 붓꽃의 화법으로 그림을 그리려면
붓을 옆으로 눕혀선 절대로 아니되오.
마치 하늘을 화판으로 삼겠다는 듯이
붓을 똑바로 세워서 가능한한 높이 밀어올리는 것이 좋소.
그 다음에는 붓을 세 방향으로 쫙 벌려주면 되오.
말하자면 붓꽃의 화법이란
붓을 세운 뒤 그 붓을 세 방향으로 벌려
붓을 내놓고 꽃을 얻는 것이요.
단순히 붓으로 꽃을 그리는 것이 아니라
붓을 모두 내던지면서 꽃을 얻는 것,
그것이 붓꽃의 화법이요.
이제 곧 이 붓 또한 버릴 것이며
그러면 그 자리에서 붓꽃 한 점이 피어날 것이오.

그렇다면 진정 붓꽃을 그리려면
붓을 화판에서 놀리는 것으론 어림도 없겠군요.
그리는 자가 스스로 붓이 되어야 겠군요.

맞소.
아마 모르긴 몰라도 반 고흐의 명작 「아이리스」도
그렇게 얻어진 것일 거요.
고흐는 아마도
붓으로 그림을 그린 것이 아니라
그림을 그릴 때
붓을 잊고 꽃을 피우면서
그 붓꽃을 얻었을 것이요.

아, 그렇군요.
그렇다면 진정 붓꽃을 그리려면
스스로 붓이 되고
그 다음엔 붓이 된 자기를 버릴 수 있어야 하는 군요.

그렇소.
그렇지 않고선 그저 화판 위에 얼룩처럼 묻어있는
붓꽃과 유사한 형상을 얻을 뿐이오.
붓이 된 뒤 붓이 된 자기를 버리면서
붓꽃을 그렸다면 그 자리에서 사람들은
영원한 삶을 얻은 듯 살아있는 붓꽃을 만날 수가 있소.

아, 고뤠요?
그럼 전 안되겠네요.
그냥 사람불러야 겠어요.
그림은 화가에게 맡기고 저는 그냥 감상이나 해야 겠습니다.
앞으로도 쭈욱 좋은 작품 활동 펼치시길 빕니다.

내년 이맘 때 또 전시회하니 시간내러 보러 오시오.

알겠습니다.
다른 작품들도
주욱 둘러보고 가겠습니다.
(화법은 이해가 갔는데..
그림은 다들 비슷비슷해서
이 그림이 저 그림 같고
저 그림이 이 그림 같기는 했다.
그 때문인지 고흐 그림보다 훨씬 더 어렵게 느껴졌다.)

Photo by Kim Dong Won
2012년 5월 17일 경기도 안양의 학의천에서

6 thoughts on “붓꽃의 화법

  1. ^^ 붓꽃… 참 이쁘다.
    붓으로 글을 쓰게 되면
    처음엔 꼿꼿했던 붓끝이
    시간이 지나면서 갈라지는데
    그 갈라짐으로 그려나가는 여러 갈래의 강하고 여린 글자취가 더 여운을 주는 것..
    붓꽃과 붓이 비슷함을 생각해봤습니다.
    물론, 동원님이 말씀하신 그 차이도 알 것 같고요~^^

    1. 어제는 올림픽공원 갔었는데 붓꽃도 종류가 많더라구요. 내 눈에는 다 비슷비슷해서 구별하기도 어려웠지만요.
      올해는 거의 황사가 없는 한해를 보내는 것 같아요. 황사오면 얄라님 소식 가져올 듯 했는데 한국에서 고생하면 안된다고 얄라님이 막고 계신거 아닌가 싶다는.

  2. ㅋㅋ 대화체로 풀어 내신 붓꽃 작가 이야기 잼있네요^^
    어제 저녁 저도 잠깐 학의천에 나갔었는데요
    맞아요 키가 작은 붓꽃이 피어 있었어요
    언제 이 곳에 다녀 가셨네요^^
    요즘은 낮에 집에 없으니… 안양까지 오셨는데 뵙지도 못하는 시절이 되었어요..ㅠㅠ

    1. 안양에 사는 친구가 있어서 술먹으러 간 길이었어요.
      만나면 12시 넘도록 술먹는 친구라 다른 친구는 보기 힘들어서..
      다른 분들은 만나기 힘들다는.. ㅋㅋ

  3. 고흐의 아이리스 탄생 설화^^는 정말 그럴듯해 보입니다.
    고뤠에서 빵 터지고, 그 다음부턴 저도 편하게 구경했습니다.

    1. 안양천하고 학의천변으로 꽃밭을 가꾸어 놓았는데 붓꽃을 많이 심었더군요. 원추리도 눈에 띄었는데 아직 꽃이 피질 않았더라구요. 지금이 붓꽃 철인지 붓꽃이 많았습니다. 덕분에 붓꽃 전시회에 구경잘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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