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꽃

Photo by Kim Dong Won
2012년 5월 19일 서울 천호동 동구햇살 아파트에서

아파트로 이사오기 전 단독에 살 때
손바닥만하긴 했지만 마당이 있었고
그 마당에 나무가 세 그루 있었다.
그 중의 하나가 감나무였다.
나무를 키우면서 가장 큰 재미는
내 집의 마당에 있기 때문에
집을 들어오고 나가면서
한해내내 나무를 볼 수 있다는 점이었다.
감나무 구경이야 시골로 걸음을 옮겨놓으면
누구나 할 수 있는 것이지만
감나무를 모르는 사람에겐
감나무를 감나무로 금방 알아볼 수 있는 시기는
감이 열려있는 가을로 국한되기 쉽다.
모르는 사람에겐 꽃이 열리는 시기의 감나무는
그 앞을 지나치면서도
그 나무를 감나무로 알아보기가 쉽지 않다.
그러나 마당에 감나무가 있으면
그건 잎이 다 떨어지고
나무 줄기와 가지만 남아도
그것이 감나무임을 언제나 알 수 있다.
그렇듯 감이 열려야 알아보는 것이 아니라
한해내내 언제나 알아볼 수 있는 것이
내 집 마당의 감나무이다.
내 집의 감나무는
그 생긴 모양과 열매, 또는 꽃으로 알아보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있는 자리로 알고 지낼 수 있다.
아파트로 이사오면서 가장 아쉬웠던 것이
마당에 있던 나무들과의 이별이었다.
집의 나무들은 그냥 나무가 아니었다.
때로 집을 나설 때면 나무가 배웅을 해주는 느낌도 있었고
또 들어올 때면 나무들이 시선에 들어오는 순간
나무들이 마중을 나온 듯한 반가움도 있었다.
이사온 아파트에도 여러 나무들이 있었지만
그 이름들을 알기가 어려웠다.
그러다 꽃이 피기 시작하면서
드디어 아파트 나무들의 이름들을 거의 다 챙겨놓을 수 있게 되었다.
이제 이름을 챙기고 그 자리를 봐두었으니
여기 사는 동안
언제나 나무들을 그 이름으로 불러줄 수 있을 듯 싶다.
그리고 그 중에는 감나무도 있었다.
감나무는 감꽃이 피면서
그 이름을 확실하게 알 수 있었다.
지난 집에서 감꽃과 안면을 익혀놓은 덕택이다.
감꽃은 다른 꽃들과 달리 느낌이 독특하다.
다른 꽃들은 거의 대부분 화사한 느낌이 나는데
감꽃은 쪼글쪼글한 느낌을 풍긴다.
마치 감을 보내고 난 뒤에 남겨진 감꼬투리를
미리보는 듯한 느낌이다.
꽃들이 대부분 오늘의 화려함에 취해 그 한철을 보내는데
열매를 보내고 난 뒤에 남겨질
먼 미래의 꼬투리를 미리 생각해보며 피는 꽃이
감꽃인지도 모르겠다.

Photo by Kim Dong Won
2012년 5월 19일 서울 천호동 동구햇살 아파트에서

4 thoughts on “감꽃

  1. 조금 더 폈을 때 딱 한개만 따먹어보셔요.
    완전 달달하니 맛나다눈요..^^
    어렸을 때는 목화다래도 따먹다가 어른들한테 혼나고는 했는데…ㅎㅎ

  2. 감꽃이 정말 재밌게 생겼네요. 다른 꽃들과 모양이 달라 한 번 보면 다음부턴
    제대로 알아볼 것 같아요. 그런데 이게 꽃이 완전히 핀 건가요, 피려 하는 건가요?
    단독의 감꽃만큼은 아니어도 동구햇살의 감꽃들도 좋은 주민의
    따뜻한 시선을 받아 어느 때보다 행복할 것 같습니다.

    1. 피려하는 거예요. 그런데 다 피어도 거의 비슷해요. 크게 달라지진 않는다는. 작은 아파트인데 사람들이 나무를 여러가지를 심어 놓았더라구요. 이름을 모두 알아놓았으니 내년 봄에는 잎나기 전에 나무들이 가져올 푸른 봄을 좀더 친숙하게 기다릴 수 있을 듯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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