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차의 삶은 둥글다 – 보성 차밭

보성 차밭을 지나면서
그녀로부터 줏어들은 얘기에 따르면
녹차는 겨울 해풍을 이기고 봄에 피어난 여린 잎이
가장 그윽한 맛을 낸다고 한다.
보통은 어렵고 혹독한 시절을 보내고 나면
정신이 황폐해지고 각박해지는 법인데
보성의 녹차는 그 반대인 셈이다.

Photo by Kim Dong Won

녹차밭은 물결이다.
그것도 때로는 동심원을 그리며 둥글게 둥글게 퍼져나가는 물결이다.
물결은 냇물의 건너 편에 앉은 누나의 손등을 간지르겠지만
녹차는 그윽한 향기로 사람들의 입속을 녹아들 것이다.

Photo by Kim Dong Won

이랑 하나에 겨울 추위의 하루를 넘기고
이랑 둘에 겨울 추위의 이틀을 넘기며
녹차밭은 겨울 바람을 넘어 봄으로 간다.

Photo by Kim Dong Won

녹차밭의 이랑은 원래는 둥글고 작은 섬이었는데
뭍을 향하여 헤엄쳐 나가면서 물결이 된 것인지도 모른다.

Photo by Kim Dong Won

녹차밭의 물결은 언제나
고요하게 일렁인다.
바람이 세게 분다고 노도처럼 몸을 세우고
성깔을 부리는 법이 없다.
그런 고요한 일렁임 속에서
그윽한 녹차향이 익어간다.

Photo by Kim Dong Won

녹차밭의 소나무는 솔향기가 아니라
녹차향이 날지도 모른다.
소나무가 제 향기를 버리고 싶을 정도로
녹차향은 그윽하다.

Photo by Kim Dong Won

녹차밭에선 그냥 아무 것도 하지 않아도 좋다.
녹차밭의 사이사이로 뻗은 작은 소로를 따라 천천히 발걸음을 떼다
녹차밭의 초록빛을 지긋이 눈에 담는 것만으로
하루가 짧을만큼 시간이 빠르게 지나간다.
그러나 그곳에선 시간도 그윽하여
아무도 시간이 흐르는 것을 눈치챌 수 없다.

Photo by Kim Dong Won

녹차밭에선 길을 걸을 때면
일렁이는 물결의 한가운데를 걷는 기분이다.
아마도 물결의 한가운데를 걷는다면
금방이라도 물결에 물들 것 같은 느낌이 들 것이다.
작은 소로를 따라 녹차밭 사이로 걸음을 옮기다 보면
그래서인지 초록 물결에 물들 것 같은 느낌이 든다.

Photo by Kim Dong Won

멀리 마을이 보인다.
조금 더 시선을 뻗으면 산자락이 눈에 들어온다.
오늘은 산 위의 푸른 하늘이 그 품에 구름 몇점을 띄워놓았다.
아마 하늘빛이 달라지면 오늘의 이 풍경도 느낌이 다를 것이며,
나무들이 초록 일색의 여름 정장을 벗어던지고
빛깔이 화려한 가을옷으로 갈아입으면 또 느낌은 다를 것이다.
녹차는 그 모든 계절의 변화를 지켜보며 익어간다.
어찌보면 보성 녹차의 그윽한 맛은
멀리 보이는 마을 풍경과 산자락, 그리고 하늘의 변화를
지긋이 한해 동안의 오랜 세월 속에 익혀낸 맛일 수도 있다.

Photo by Kim Dong Won

녹차밭에선 거의 모든 선이 곡선이다.
곡선은 직선과 달리 휘어진다.
직선이 내일을 향해 걷잡을 수 없이 뻗어나가려는 선이라면
곡선은 오늘을 감싸안으며 품안으로 껴안는 선이다.
둘이 걷다 보면
녹차밭에선 서로의 오늘을 껴안게 된다.

Photo by Kim Dong Won

서로의 오늘을 껴안으면
그곳에서 사랑의 샘이 솟는다.
녹차밭은 그냥 녹차밭이 아니라
가끔 사랑이 솟는 곳이기도 하다.

나는 녹차밭으로 올라갈 때
여기 보성 녹차밭은 이곳을 주제로 한 사랑 노래도 있다고 했다.
그리고 이렇게 노래를 불렀다.
“녹차밭 녹차밭 우리 처음 만난 곳도 녹차밭이라네. 우리 처음 사랑한 곳도 녹차밭이라네…”
그러자 그녀가 ‘그거 뭔가 좀 이상하네’라며 머리를 갸웃거렸다.
“그런데 왜 원래 노래가 뭐였는지 생각이 안나지?”
나의 얼렁뚱땅 노래가 그녀의 머리 속에서 ‘목화밭’을 하얗게 지워버리고,
그 자리를 온통 ‘녹차밭’으로 채워버렸다.

10 thoughts on “녹차의 삶은 둥글다 – 보성 차밭

  1. 이곳에도 녹차향이 가득히 퍼져오는군요.
    사실,저는 지금 녹차 마시는중이랍니다.ㅎㅎ넘그윽한 향기^^*
    푸른빛 초록빛의 색깔은 지친마음에 안식을 주며 마음을 편하게 해주는것 같습니다.
    보성 녹차밭 언제보아도 신비롭습니다.밤이 깊은데..좋은이야기에 쉬며 머물다 감니다.

  2. 녹차밭에 가면 정말 녹차향이 나나봐요?
    얼마전 기차를 타고서라도 그곳에 가려했는데
    마음이 바뀌었어요.
    새순이 가장 아름다운 초록빛일때 가보자고.^^
    그래도 맨윗 사진은 초록 가득이네요.^^

  3. 녹차를 한잔마셔야 겠군요..
    차한잔 할 여유가 없는건…분명 일이 바뻐서가 아니라….늦잠을 자서랍니다..
    ㅠ_ㅠ;;;

    1. 늦잠자부려갖고 항상 일에 쫓겨요..흙흙..
      나 살려라~~
      고칠수 없는 불치병…..귀차~아니즘…게으름…
      오늘 토욜인데 12시가 되도록 이불도 그대로고…씻지도않고 밥도 안먹고…굴러다니고있답니다..((((-_-;;;;

    2. 아주 이상적으로 살고 계신 거예요.
      근데 오늘 홍대로 출타 한번 하시죠.
      아키님도 만날 수 있을 것 같은데.
      파인더 모임이라서 거기에 가볼려구요.

  4. 나는 녹차밭을 내려다보면서 그 위로 뛰어내리면 융단처럼 깔린 저 위에
    포근히 내려앉을 것 같은 느낌이 들더라.
    대신 뛰어내리진 않고 돗자리깔고 누워서 하늘로 둥둥 날았지만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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