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고향은 강원도 영월의 문곡이란 곳이다.
영월 읍내에서 북쪽으로 40여리를 더 들어가야 하는 시골 마을이다.
고향을 떠올릴 때마다 내가 가장 아쉬운 것은
길가와 학교를 둘러싸고 있던 나무들이다.
어느 해 내려갔더니
고향까지 가는 길이 말끔하게 포장되어 있는 것은 좋았지만
그 나무들은 모두 잘려나가고 없었다.
어렸을 적 고향의 길가는 미류나무들이 길을 따라 함께 달리고 있었지만
지금은 그때의 나무를 하나도 찾아볼 수 없다.
나무가 없는 길은 왠지 횅하기만 하다.
이번 9월에 남해안을 여행할 때
서울로 오기 위해 18번 국도를 타고 보성 읍내를 지났을 때
가로수가 끝없이 이어지는 그림같은 도로를 만날 수 있었다.
어렸을 때의 고향길과 나무들이 생각났다.
길은 대체로 어디를 가기 위한 길이다.
우리가 보성 읍내를 지난 뒤
18번 국도로 들어선 것도 고속도로를 타기 위해서 였다.
중간에 만난 표지판은 이 길이 문덕을 지나 구례로 이어짐을 알려주고 있었다.
그러나 가로수가 끝없이 이어지는 아름다운 길에 들어서면
우리는 길이 어디를 가기 위한 길이란 사실을 잊어버린다.
아니, 그런 길에서 우리는 우리가 가야할 ‘어디’를 버리게 된다.
그런 길에선 그냥 길이 끝날 때까지 그 길을 계속 달려가야 한다.
우리들이 가야할 ‘어디’를 버리게 되면
그때부터 길은 길의 속 깊숙한 어디론가로 들어가는 듯한
전혀 다른 느낌의 길이 된다.
양쪽으로 가로수가 우거지다 보면
가로수가 그냥 길가에 우두커니 서 있는게 아니라
손을 모아 길을 감싸게 되기에 이른다.
가로수가 감싼 길은
길이라기 보다 하나의 품이다.
그러면 우리는 길을 가는 것이 아니라
길의 품에 들게 된다.
길을 갈 때,
시선을 뒤로 두면 가로수는 우리에게 안녕을 고하며
빠른 속도로 아득하게 뒤로 밀려난다.
그러나 시선을 앞으로 두면
항상 가로수가 달음박질을 하여
우리 앞의 마을로 먼저 달려간다.
그래도 이런 길에선 나무와 달리기 시합을 하기는 싫다.
그냥 나무를 먼저 보내고 천천히 길을 가서
먼저갔던 나무와 다시 만나는 반가움을 우리의 몫으로 삼게 된다.
가로수 길도 길이긴 마찬가지여서
우리는 그 길에서도 끝간데 없이 달리고 싶다는 욕망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그래서 우리는 차를 세우지 못하고 그 길을 계속 달려간다.
그러나 한편으로 그 길은 우리들로 하여금
아늑한 품에 깃들고 싶다는 욕망을 자극한다.
왜냐하면 그 길은 길이자 품이기 때문이다.
그 길에서 우리는 달리면서 동시에 깃든다.
길은 때로 휘어진다.
휘어지는 곳에서 길은 곡선이 된다.
곡선은 부드럽다.
품의 아늑함으로 보자면
휘어지는 곳에서의 느낌이 품의 느낌에 더 가깝다.
가끔 나무들이 자리를 비워둔 길가로
우리가 가야할 길이 저만치 멀찌감치 보이기도 한다.
나무들이 한쪽 길가로 줄을 서서
우리들이 오는 것을 기다리고 있다.
길이 품의 느낌으로 와닿는 것은
가로수가 나뭇가지를 손길처럼 뻗어
그 길을 감싸고 있기 때문만은 아니다.
가로수가 양쪽으로 늘어선 아름다운 길에 들어서면
우리는 길을 간다기보다
나무와 동행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기 시작한다.
혼자가면서도 누군가 마음에 맞는 사람과 동행하고 있는 듯한 아늑한 길.
보성의 북쪽 언저리로 위치한 18번 국도의 가로수 길로 들어서면
그때부터 우리는 길을 가는 것이 아니라
길의 품에 깃드는 것이며,
계절이 아직 나무의 차림새를 가을빛으로 갈아입혀주기 전이라면
나무들과 나누는 짙은 녹빛 대화가 끝없이 깔리는
아늑한 동행의 길을 가는 것이다.
4 thoughts on “길의 품에 들다 – 보성 북쪽 구간의 18번 국도”
가로수가 양쪽으로 늘어선 아름다운 길
우리는 길과 함께 동행한다.
제게도 함께 동행하는 사람이 있으면 참 좋겠다 생각하는밤입니다.ㅎㅎ
기쁠때만 동행하는,슬플대도 변함없이 동행하고싶은데..물론 있겠지요.ㅎㅎ
차보다는 자전거 타고 가고 싶은 길이더라구요.
차도 별로 안다니고.
저 나무가 물들때 가면 엄청 멋있겠어요.^^
그때는 정말 분위기잡기 최고일듯.ㅋㅋ
물들 때는 약간 붉은 색이었던 것 같아요.
그때는 담양쪽으로 갔었는데 카메라가 지금처럼 좋은게 아니어서 좋은 사진은 못찍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