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위보다 더 무거운 구름 이야기 – 이창수의 시 「무거운 구름」

Photo by Kim Dong Won
2012년 8월 4일 경기도 강화의 고려산에서

한 편의 시가 내게서 두 곳으로 흩어졌다. 시인 이창수의 시 「무거운 구름」이었다.
내가 시의 앞쪽 절반을 만난 곳은 강화의 고려산이었다. 나는 몇 번 그곳을 찾은 적이 있었다. 가까운 곳의 많은 산들을 뒤로 한채 내가 시외버스를 타야 하는 불편을 마다않고 그곳을 찾아간 것은 그 산의 진달래 때문이었다. 봄이 되면 고려산은 온산이 진달래로 뒤덮였다. 그것은 산길을 걷다가 띄엄띄엄 만나는 진달래와는 확연하게 다른 느낌으로 나의 오감을 자극했다. 그 산에서 진달래가 만들어내는 군락의 위엄은 먼길을 마다않고 달려간 보람을 느끼기에 충분했다.
진달래 때문에 고려산에 갔고, 때문에 나의 걸음은 항상 진달래가 있는 곳까지만이었다. 나는 고려산하면 진달래를 떠올렸고 진달래를 보고 나면 내 걸음도 다른 미련을 갖지 않았다. 항상 고려산을 찾는 걸음은 진달래가 피는 시기와 맞물렸고 진달래가 있는 곳에서 걸음이 마무리되었다.
그러다 오랫만에 고려산을 찾은 8월 어느 날의 내 걸음은 지금까지는 시작 지점을 달리하고 있었다. 아마도 이미 진달래 철이 지난지 한참이 된 시점이었기 때문에 고려산에 대한 관심이 크게 떨어진 때문이었는지도 모른다. 그 날 강화를 찾은 나의 걸음은 고려산이 아니라 고려산의 줄기가 흘러내린 끝자락 쯤에서 바다를 마주하고 있는 낙조봉에 서 있었다. 낙조봉은 고려산의 정상에 오르면 바다쪽으로 내려다 보이는 봉우리이다. 한번도 그곳에 간 적이 없었다. 그런데 어쩌다 낙조봉 아래쪽의 적석사에 들른 걸음이 낙조봉까지 이어졌고, 나는 항상 멀찌감치 내려다보이던 봉우리에서 반대로 고려산의 정상을 올려다 보고 있었다.
낙조봉 봉우리의 표지판은 그곳에서 고려산 정상까지의 거리가 2.7km라고 알려주고 있었다. 8월 염천의 더위가 들끓고 있었지만 2.7km면 그렇게 먼거리는 아니다. 더위와 거리 사이에서 이루어지는 싱갱이에서 내 발길을 고려산 정상으로 이끈 것은 짧은 거리의 유혹이었다. 나는 고려산을 향하여 천천히 발걸음을 옮겨놓고 있었다.
폭도 좋고 잘 다듬어져 있어 걷기에 좋은 산행길이었다. 약간의 오르내림은 있었지만 대개는 산의 능선을 따라 흘러갔다. 거의 산꼭대기로 흘러가는 길이었다. 그리고 그 길에서 고인돌을 만났다. 고려산의 산자락 아래쪽에서 고인돌을 만난 적은 있었다. 하지만 산꼭대기에서 고인돌을 만나기는 그곳이 처음이었다.
바로 곁의 안내판에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어 있으니 걸터앉지 말라는 주의가 적혀 있었다. 처음 그곳의 고인돌을 접했을 때, 고인돌은 내가 고인돌에 대해 배운 그대로였다. 나는 그것을 어떤 사회적 위치에 대한 과시로 바라보고 있었다. 대개의 사람들은 자연에서 나서 자연으로 돌아간다. 그러나 사회적 위치가 높을수록 자연으로 돌아가는 것에 대해 완강하게 저항한다. 그렇지만 죽음 이후로는 버티는 것이 쉽지 않다. 때문에 자연을 빌려 자연으로 사라지는 것에 저항한다. 내게는 그것이 고인돌이다. 돌의 완강함을 빌려 살아서 누렸던 사회적 지위를 죽은 뒤에도 여전히 과시하고 싶은 욕심이 고인돌을 낳았을 것이다.
그냥 시간이 흐르면 자기 자취를 모두 거두어 들이고 자연으로 돌아가는 것도 좋은데라는 심정으로 고인돌을 내려다 보고 있을 때, 시인 이창수가 전혀 다른 목소리를 내게 속삭였다. “주검을 누르고 있는 저 무거운 바위는 삶의 고달픔을 나타내는 청동기인들의 흔적이 아니었을까”라고. 시인은 산다는 것이 무섭다며 “다시는 이 무서운 세상으로 나오지 말라는 비원의 무게로 수천 년 동안 엎드려 있”었던 것이 바로 저 ‘바위들’일지도 모른다고 했다.
삶이 힘들면 삶이 무거워지고, 도저히 삶의 무게를 감당할 수 없는 정도가 되면 삶이 무서워지기에 이른다. 공교롭게도 시인이 거닐었던 고인돌 마을에도 진달래가 피어 있었나 보다. 그러나 삶의 무게를 그대로 짊어지고 그 고인돌 앞에 선 시인에게 진달래는 겨울을 이기고 봄을 열면서 우리들의 가슴을 흔들어놓는 아름다운 꽃이 아니다. 시인의 눈에 진달래는 엷은 분홍이기 보다는 차라리 붉어 보인다. 그 진달래의 붉은 빛은 힘겨움 삶 뒤에 땅에 묻힌 한많은 죽음이 진하게 배어든 빛이다. 시인이 “유난히 고인돌이 많은 이 마을은 송장의 진을 먹고 자란다는 진달래도 붉다”고 말한 것은 그 때문일 것이다.
나는 그렇게 고려산에서 시의 앞쪽 절반을 만났다. 나머지 시의 뒤쪽 절반을 만난 것은 하루 뒤의 한강변에서 였다. 아파트 베란다에서 내다보이는 하늘의 구름이 좋다고 느낀 나는 구름을 사진에 담아두겠다는 생각으로 자전거를 타고 한강으로 향했다. 어깨엔 물론 카메라를 둘러메고 있었다.
서울의 한강다리 중, 가장 위쪽으로 있는 천호대교와 광진교 사이에 이르렀을 때, 잔잔한 한강물을 거울 삼아 구름이 강에 그 모습을 내려놓고 있었다. 물에 비친 구름의 반영은 사람의 눈길을 끌기에 충분하다. 나는 너무 더운 날씨 때문에 구름도 그림자를 물속으로 내려 더위를 식히고 있나보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이번에도 시인 이창수는 내게 전혀 다른 말을 속삭였다. “강물에 잠겨 있는” 구름의 반영이 사실은 “무거운 구름”이라고. 나는 다소 놀랐다. 구름이 무겁다니! 구름마저도 무거울 수가 있다니!
구름도 무거워질 때가 있다. 삶이 무거울 때이다. 삶이 무거우면 구름이 아무리 가벼운 무게로 하늘을 둥둥 떠다녀도 삶의 무거움을 중화시켜 주지 못한다. 구름이 무거워지면 구름은 바람이 잔잔한 날 강의 표면에 그 모습을 비춰보는 것이 아니라 강으로 가라앉는다. 따라서 구름이 가볍게 하늘을 떠다니게 하고, 날 더운 날 그 그림자를 강으로 내려 물장구라도 치게 해주려면 무엇보다 사람들에게서 삶의 무게를 거두어 주어야 한다. 사회가 그런 역량을 잃으면 구름도 무거워지고 만다.
시인은 그것을 증명이라도 하겠다는 듯이 강에 비친 ‘먹구름’을 향해 돌을 하나 던져 본다. 강엔 물결이 친다. 그러나 그 물결이 시인에겐 “이마 가득” 잡히는 힘겨운 삶의 ‘주름’이다. 그리고 우리들이 던진 돌은 강바닥에 쌓여 ‘돌무덤’이 된다.
한강이 바닥을 드러내는 일은 거의 없다. 그러나 한강 상류로 거슬러 올라 팔당댐을 눈앞에 둔 팔당대교쯤으로 이르면 가끔 강의 중간으로 바닥이 드러나기도 한다. 내가 자란 고향 영월에선 더더욱 그런 일이 잦았다. 가뭄 때면 강이 예외없이 속을 드러냈고, 강이 바닥을 드러낸 곳엔 온통 “지상보다 많은 돌무덤이 쌓여” 있었다. 이창수는 가뭄이 드러내는 강바닥이 곧 돌무덤이기도 하다고 말하고 있었다.
두 곳으로 흩어져서 내게 말을 걸었던 이창수의 시는, 그의 시에서 결국 하나로 합쳐져 다시 나를 맞아주었다.

주검을 누르고 있는 저 무거운 바위는 삶의 고달픔을 나타내는 청동기인들의 흔적이 아니었을까. 다시는 이 무서운 세상으로 나오지 말라는 비원의 무게로 수천 년 동안 엎드려 있던 바위들, 유난히 고인돌이 많은 이 마을은 송장의 진을 먹고 자란다는 진달래도 붉다. 돌무덤과 진달래로 아득한 강가 걸으면, 강물에 잠겨 있는 무거운 구름. 먹구름에 돌 던지면 강은 이마 가득 주름 잡으며 가슴에 돌무덤 쌓는다. 가뭄에 한 번씩 속 드러내는 강바닥엔 지상보다 많은 돌무덤이 쌓여 있다. 강물에 잠긴 구름이 지상의 바위보다 무거운 까닭 알겠다.
—「무거운 구름」 전문

종종 삶이 무거워진다. 구조 조정으로 해고의 위협에 내몰렸을 때, 삶의 무게는 말할 수 없이 무거워질 것이다. 쌍용차를 비롯해 이 땅의 무수한 기업에서 그런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 농사를 평생의 업으로 알고 살아가려 했으나 농지에서 쫓겨났을 때 삶의 무게는 또 무거워진다. 경기도 팔당의 두물머리에서 그런 일이 있었다. 부당하고 억울하게 밀려나고 쫓겨나 삶이 무거워지는 경우에는 더더욱 그 무게가 무거울 것이다.
그렇게 하여 삶이 무거워지면 “구름이 지상의 바위보다” 더 무거워진다. 때로 삶이 무거워진 우리의 세상에선 그렇게 바위보다 구름이 더 무겁다. 구름마저도 제 무게를 덜 수 없는 세상이다. 요즘의 우리가 사는 세상이 거의 어디나 그렇다. 구름이 구름처럼 가벼운 세상, 그게 세상을 살아가는 우리들의 희망이 되어 버렸다. 무거운 먹구름이 가끔 한없는 눈물처럼 지상을 적시는 세상이다.
(2012년 8월 20일)

Photo by Kim Dong Won
2012년 8월 5일 서울 천호동의 한강변에서

**인용된 시는 다음 시집에 수록되어 있다
이창수, 『물오리 사냥』, 천년의시작, 2005

2 thoughts on “바위보다 더 무거운 구름 이야기 – 이창수의 시 「무거운 구름」

  1. 긴 글에 쌩뚱맞아 보이는 우문 하나.
    무거운 구름 같은 시는 해설 없이 전문을 대하면 시라기보다는 산문처럼 보이는데,
    요즘 이런 시들이 부쩍 늘어나는 것 같습니다. 이 경우 어떻게 구분하나요?
    시인이 쓰거나 시라고 부르면 시가 되는 건가요? 아니면 다른 기준이라도 있는지요?

    1. 아마 제 해설이 시를 산문화한 경우가 아닌가 싶어요. 행갈이를 했다고 해도 시가 아닌 경우가 있고, 산문처럼 보이지만 시인 경우가 있는 듯 싶은데.. 구별은 거의 본능으로 하는게 아닌가 싶습니다. 산문시가 산문에 가까워지면 시에서 느낄 수 있는 어떤 리듬감이 사라지는 것 같습니다. 사실 딱히 구별은 어렵죠. 시인 자신만 구별할 수 있다는 것이 맞는 생각일 듯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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