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 6일, 그녀와 내가 순천만에 도착했을 때
하늘은 잔뜩 흐려있었다.
그러나 가늘게 날리던 빗줄기가 얼마안가 그치더니
드디어 푸른 하늘이 얼굴을 내밀었다.
지구는 내 집이다.
오늘은 순천만의 용산에 올라 그곳을
우리 집의 앞뜰로 삼았다.
내 집에선 날이 밝으면
날씨가 아무리 흐려도 항상 창을 열어 둘 수 있다.
창을 여니 멀리 와온해변의 솔섬이 보인다.
하늘은 또 누군가의 집이다.
그 집은 내 집의 저 멀리 맞은 편에 있다.
하늘은 가끔 날이 밝았는데도 창문에 드리운 커튼을 거두는 법이 없다.
하늘에 드리운 짙은 커튼을 우리들은 곧잘 비구름이라 부르곤 했다.
저 집에 비구름 커튼이 드리워져 있을 때는 세상이 온통 잿빛이다.
아직 물기가 덜말라 있을 때면 가끔 그 커튼에선 물이 뚝뚝 떨어지기도 한다.
하지만 남의 집 창문을 우리 마음대로 열 수는 없는 법.
그러니 그냥 그 집이 커튼을 걷고 문을 여는 순간을 기다릴 수밖에 없다.
그러나 그 기다림이 때로 설레임이 되기도 한다.
하늘이 비구름 커튼을 걷고 창문을 열었을 때의 느낌을 알고 싶다면
조금 늦게 일어난 맑은 날의 우리들 아침을 상상해보면 된다.
그런 날, 졸리운 눈을 비비며 문에 드리운 짙은 커튼을 젖히면
창문으로 와르르 햇살이 쏟아져 들어온다.
하늘이 커튼을 걷으면
그때는 그 집의 창에선 맑고 푸른 하늘이
우리들 세상으로 와르르 몰려 나온다.
몰려나온 하늘은 갑자기 세상을 온통 파랗게 물들인다.
그리고 창이 열렸을 때 엿보면
그 집의 집안에 뭉게구름이 걸려있을 때가 있다.
믿기지 않지만 그게 비구름을 깨끗이 빨아서
그냥 구겨진 채로 뭉텅이째 걸어놓은 것이라는 얘기를 들었다.
하늘이란 그 집은 참 이상해서
그 집에 커튼을 쳐져 있을 때는 세상까지 어둡고
그 집의 커튼이 걷히면 세상이 온통 빛의 천지가 된다.
때로 그 집에선 구름들이 와와
서쪽이나 동쪽으로 몰려가며
경주를 벌이기도 한다.
놀라운 것은 그 구름에 실어
우리 마음도 하늘 높이 띄울 수 있다는 것이다.
흐린 날에도 와온해변의 솔섬은 보이지만
맑은 날에 보면 이상하게 그 섬의 느낌이 투명하게 와닿는다.
그건 아마 하늘의 푸른 빛이
암암리에 솔섬을 물들이기 때문이 아닐까.
그러고 보면 하늘이 비구름 커튼을 걷고 창문을 여는 날엔
솔섬 뿐만이 아니라 이 세상 모든 것이
그 푸른 빛에 물드는 것인지도 모른다.
심지어 해변의 붉은 칠면초도 푸른 빛에 투명하게 물들어
더욱 붉게 보이는 것인지도 모른다.
저 사람들은 알까 모를까.
자신들이 오늘 푸른 하늘에 물들어 물길을 가고 있다는 것을.
저녁이 오고,
그러면 그 푸른 하늘은 슬그머니 집으로 돌아가
하루 내내 열어놓았던 창문을 닫아 걸 것이며,
저녁 시간이 좀더 지나면 이제 검은 빛이 진한 커튼을 칠 것이다.
그렇지만 그날 빛이 강한 오후의 한낮내내 순천만의 해변에 있었던 나는
푸른 하늘에 물들대로 물들었다.
그렇게 푸른 하늘에 깊게 물든 날이면
그런 날은 밤도 깊고 푸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