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이 열흘을 넘기고 있었지만 거리를 점령하고 있는 계절은 여름이었다. 안좋은 뒤끝처럼 남겨진 여름의 열기가 거리를 빈틈없이 메우고 있었다. 가만히 서 있어도 땀으로 몸이 젖었고 땀은 곧 끈적이는 불쾌감으로 바뀌었다. 여름은 우리가 흘리는 몸의 땀으로 연명하는 괴물이었다. 허기가 질 때마다 여름이 그 열기를 뜨겁게 높였고 그때마다 몸에선 걷잡을 수 없이 땀을 흘렀다. 8월 중반부터 꺾이기 시작하여 9월에는 계절의 표지를 가을로 내걸 수 있었던 그간의 습관은 올해 들어 아무 소용이 없었다. 한낮의 시청 광장은 그늘에 몸을 숨겨도 아무 소용이 없었다.
내가 시청 광장에서 광화문역쪽으로 걸어가고 있을 때 그녀에게서 전화가 왔다. 어디야를 물었고, 내 위치를 말해주자, 그녀가 자신의 위치를 내 위치 정보와 맞바꾸었다. 그녀는 가까이 교보빌딩 앞에 있다고 했다. 만나서 맥주 한 잔 하기로 했다. 맥주는 가을로 기울어야 할 시간을 막아선 채 꼼짝않고 있는 여름에 맞설 우리의 무기였다. 술집은 맥주와 함께 에어컨 바람을 더위를 막아줄 방패처럼 우리에게 내줄 것이다.
시간은 오후 세 시를 넘기고 있었지만 아직 오후 네 시가 되기에는 약간의 거리를 남겨놓고 있었다. 문제는 이 시간에 문연 맥주집을 찾기가 어렵다는 것이었다. 대개의 맥주집들은 네 시는 문열기에 이른 시간이라고 담합을 하고 있었고 대체로 6시를 문여는 시간으로 이의 없이 받아들이고 있었다.
그래도 우리는 이 시간에 문을 연 맥주집을 알고 있었다. 교보에서 길을 건너간 뒤 다시 길건너의 동화면세점쪽으로 방향을 잡고 그곳에서 시네큐브 쪽으로 가다보면 오전에도 맥주를 마실 수 있는 집이 있다. 하지만 길을 점령한 여름 더위 때문에 그곳까지 가는 것도 아득한 느낌이 들었다. 우리의 거리 감각은 더위가 기승을 부릴 수록 무뎌졌다. 어떤 거리든 먼거리가 되었다. 동화면세점으로 가려고 횡단보도를 건너가던 나는 눈에 들어온 광화문의 맞은 편 골목을 가리키며 그냥 저 골목에서 맥주 마실 데 있나 찾아볼까 라고 했고, 그녀가 좋다고 했다.
골목에 들어서자 마자 건물들이 짙게 깔아놓은 그늘 덕분에 그래도 견딜만 했다. 한 여름엔 그늘도 아무 소용이 없었다. 그러나 몇 걸음을 옮겨 시청 광장에서 북쪽으로 위치를 옮긴 것만으로 그늘이 효과를 발휘하기 시작했다. 그늘이 드리워진 골목은 걸을만 했다. 도시는 여름을 가로수가 아니라 건물들의 그림자로 막아준다. 우리는 조금 걸을 수 있었다.
몇 걸음 옮겨놓지 않았을 때 그녀가 한 가게의 비닐막에 어지럽게 적혀 있는 문구들 중에서 낮술 환영의 글자를 읽어냈다. 그녀가 낮술 환영을 읽어낼 때 나는 동시에 생맥주 1,900원의 글자를 읽어내고 있었다. 둘이 나누어 읽어낸 낮술 환영과 생맥주라는 단어는 화학 작용을 일으켜 우리로 하여금 그럼 여기 들어가볼까 라는 의견 일치의 결과로 나타났다.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이루어진 글자들의 화학 작용이었다.
문을 열고 들어섰을 때 우리는 당황했다. 안이 너무 좁았기 때문이었다. 네 명이 마주할 수 있는 탁자 하나가 놓여 있었고 마치 포장마차를 연상하게 하는 주방과 그 앞에 놓인 긴의자가 전부였다. 우리의 당황을 눈치챈 듯한 탁자에 앉아 있던 남자가 아무리 낮술 환영이라지만 뭘 벌써 술을 찾아 오는 거냐는 의미가 역력한 눈빛으로 손가락을 들어 한쪽을 가리켰고, 그곳에서 계단이 몸을 꼬며 지하로 가는 길을 아래쪽으로 내리고 있었다.
지하는 넓었다.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 우리는 시작이 아주 좋다고 느꼈다. 일단 맥주 500 한잔씩 가져다 달라고 했고 안주는 골뱅이와 치킨을 반반씩 섞은 것으로 주문했다. 그렇게 그 날의 술자리는 시작되었다. 서서히 술자리가 차기 시작했다. 많이 시끄러워 졌다. 그리고 사람들이 상당히 찼을 때 우리는 자리를 일어섰다. 너무 취한 술기운이 문제였다. 감당하기 어려운 취기를 감지한 내가 오늘은 안되겠다고 말했다. 분하기 짝이 없는 노릇이었다. 왜냐하면 우리는 술자리의 시간을 아무도 없는 자리로 시작하여 채워진 사람들이 모두 자리를 비울 때까지 술자리를 계속하는 것으로 우리가 술자리에서 느끼는 뿌듯함을 얻고 있었기 때문이다.
자리에서 일어나 서로의 집으로 헤어질 때 너무 분한 우리는 내일 또 만나서 내일은 꼭 사람들을 깨끗이 비우자고 약속했다. 그리고 다음 날 우리는 대학로에서 만났다. 어제의 실패를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 다소 늦은 시간으로 약속을 잡았다. 늦은 시간이었기 때문에 이미 술집은 사람들로 가득 차 있었다. 자리를 찾은 뒤에 언제까지 하냐고 물었고 밤 1시반이라는 답을 들었다. 당연히 우리는 그 시간까지 술을 마셨다. 사람들이 모두 비고 우리만 남았을 때쯤 알바생이 우리에게 10분 뒤면 마감이라고 알려주었다. 10분 뒤 우리는 어제의 분함을 오늘의 뿌듯함으로 채우며 자리를 일어섰다. 날은 어제를 버리고 오늘로 넘어와 있었다. 어제는 지하철을 타고 집에 갔지만 오늘은 택시를 타야 했다.
때로 그렇게 술은 텅빈 술집에서 시작하여 사람들로 술집을 모두 채우고 그 다음에 그 사람들을 모두 비우는 것으로 우리 사이를 지나갔다. 그러면 우리에겐 남다른 뿌듯함이 남았다. 그런데 이번에는 그 시간이 이틀이 걸렸다. 우리가 이른 대낮에 술을 약속하면 우리의 술잔이 차고 빌 때 사람들이 들어왔다 나갔으며 우리는 그 모든 사람들의 시간을 우리가 나눠마신 술로 채웠 때 어떤 분함도 없이 자리를 일어설 수 있었다. 술이란 우리에게 마시고 취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이 채워지고 비워지는 시간 속에서 한 잔 두 잔 눌러 담으며 사람들을 채우고 비워가는 시간의 다른 이름이었다. 그 사이에 집으로 돌아갈 때 우리의 걸음을 휘청거리게 만들 취기와 우리들이 끝없이 나누는 얘기들이 있었지만 그것은 술이 밀고간 그 시간의 부산물 같은 것이었다. 대개는 하루를 넘기면서도 하루라고 고집하는 시간 속에 그 자리를 가졌으나 이번에는 하루가 가기 전에 그 시간을 마무리하고 그 다음 날의 시간을 이어붙여 그 술자리를 마감했다. 공간이 시간을 갖듯 술자리에서도 때로 사흘의 시간을 하나로 이어붙이며 그 자리만의 시간이 흐른다.
(2024년 9월 13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