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아파트에는
느티나무가 한 그루 있다.
집의 베란다에 서면
빤히 머리가 내려다 보인다.
한창 더울 때,
이 나무의 그늘 아래에 의자를 놓고
앉아서 쉬는 동네 노인분들도 있었다.
항상 머리 스타일이 단정하다.
초강력 태풍 볼라벤이 올라오자
우리는 무슨 피해나 없을까 전전긍긍이었지만
느티나무는 간만에 머리 손질 하게 생겼다며 신이 났다.
바람 미용사는 우선 뒷머리를 살짝 세워 이건 어떠냐고 묻는다.
마음에 안드는지 금방 풀어버렸다.
머리를 한쪽으로 쓸어넘기면서
또다른 헤어 스타일을 맛보는 것도 잊지 않는다.
그리고 종종 머리를 모두 뒤로 넘겨
올백 스타일로 가보곤 했다.
마음을 정하지 못한 느티나무는
하루 종일 머리를 이리 넘겼다 저리 넘겼다 하며
온갖 스타일을 맛보고 있었다.
바람의 미용사가 잠시 지친 기색을 보이면
다시 옛날의 그 단정한 스타일로 돌아갔다.
그러나 휴식은 잠시에 그쳤다.
초강력 태풍 볼라벤이 느티나무에겐
간만에 미용 봉사를 나온 바람의 미용사였다.
2 thoughts on “느티나무의 멋내기”
웬간한 내공의 바람 미용사의 방문 서비스가 아니면 머리를 좀처럼 내맡기지
않을 것 같은 포스네요. 어제 간만에 머리 다듬고 감았겠는데요.^^
수학여행 때 봤던 속리산 정이품송이 이번에 가지가 잘려나갔단 뉴스가 나오던데,
바람 미용사들이 나이 든 노송 머리는 살살 다듬어야 한다는 걸 깜빡했나봐요.
저도 몇몇 사람들로부터 머리를 만져준 것이 아니라
이번에 머리털 뽑힌 나무들이 많다는 얘기를 듣긴 했어요.
아무래도 공인 미용사는 아닌 듯 싶습니다. 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