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박이 꿈꾼 달과 꽃

Photo by Kim Dong Won
2011년 10월 7일 경기도 팔당의 두물머리에서

같은 사람이라도 각자 꾸는 꿈이 다르듯이
같은 호박이라도 모두 다른 꿈을 꾼다.
호박 하나는 둥근 보름달을 꿈꾸었다.
아마도 추석 때쯤 사람들이 올려다보면
마음을 푸근하게 해주는
둥글고 원만한 그 모습이 좋아서 였을 것이다.
밤마다 세상으로 쏟아지는 달빛을 받아가며
호박은 그 꿈을 차곡차곡 그 안에 쌓았다.
그리하여 호박의 꿈이 이루어지던 날,
밭에는 호박이 아니라
잘익은 보름달 하나가 둥실 떠 있었다.
그 호박을 가져다 먹은 사람은
그 날밤 뱃속이 보름달처럼 환해졌다고 한다.
또다른 호박 하나는 꽃을 꿈꾸었다.
호박꽃이 필 때 그 꽃을 고집한 것이 아니라
삶을 그냥 꽃으로 가꾸고 싶었다.
그 꿈이 이루어진 날,
어느 집의 마당 한켠에는 호박이 아니라
꽃잎을 가지런히 펼친 꽃 하나가 피어 있었다.
그 호박을 가져다 먹은 사람은
그 날부터 마음이 꽃처럼 예뻐졌다고 한다.
가끔 우리는 호박을 먹는다고 생각했는데
호박이 아니라 호박의 꿈을 먹을 때가 있다.
호박을 먹으면 배가 부르는데 그치지만
호박의 꿈을 먹으면
마음이 보름달처럼 밝아지기도 하고
또 꽃처럼 예쁜 마음을 얻게 되기도 한다.

Photo by Kim Dong Won
2012년 8월 25일 강원도 영월의 거운리에서

2 thoughts on “호박이 꿈꾼 달과 꽃

  1. 상상력의 지평을 열어 주셨으니,
    보름달 호박은 노란 수박이나 야자열매 또는 공룡알 같아 보이고,
    꽃으로 활짝 핀 호박은 신비의 조개 껍질 같아도 보이는데요.

    1. 호박 덩쿨이 사실 공룡처럼 크게 퍼져나가긴 해요.
      조개껍질 같은 호박은 바닷가로 데려다 줄까봐요.
      그리웠던 파도 소리 실컷 듣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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