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를 심은 뒤
농부들이 논의 물을 보러
종종 그곳을 길삼아 걷기는 했지만
그곳은 길이라기보다 둑이었다.
어렸을 적 나는
그 좁은 둑을 아슬아슬하게 타고 가는 재미에
자전거를 타고 그곳을 가기도 했었다.
하지만 그곳은 길이라기 보다
논물을 가두어놓기 위해
논바닥보다 높이를 약간 더 높인 둑이었다.
위의 논과 아래의 논이 높이를 크게 달리하며 층을 나누면
둑은 갑자기 높아지기도 했다.
농부는 그 둑을 길삼아 다니며 벼를 키웠다.
가을에 그 둑에 서서 인기척을 내면
메뚜기들이 산지사방으로 마치 물을 튀기듯
흩어지곤 했다.
그 길을 다니며 농부가 가꾸어내는 것은
온통 생명이었다.
가을엔 그 생명이 황금빛으로 일렁거렸다.
어느 날 그 둑을 따라 사람들이 걷기 시작했다.
그곳의 논둑을 따라 걸어가면
생명을 살릴 수 있다고 믿는 사람들이었다.
강변의 논에서 생명이 위태로워진 시절이었다.
논을 밀어내고
도시 사람들이 몰려와 돈을 쓰며 쉴 수 있도록
유혹의 공원을 만든다는 소문이 흉흉했다.
그러자 사람들이 농부의 둑을 따라 걷기 시작했다.
이제 그곳은 둑이라기 보다 순례의 길이었다.
사람들이 걸어가고 나자
논둑길이 하얗게 빛이 났다.
가끔 사람들은 둑을 걸어서
하얗게 빛이 되는 길을 만든다.
그 길의 끝에서
실제로 사람들의 발길이 모여 빛이 되었다는 소문이다.
2 thoughts on “두물머리의 논둑길”
아침 저녁 날씨가 조금 선선해져서 그런지 긴팔옷 입고 걷는 봄사진이 그리 낯설지
않아 보이네요. 논둑을 걸어본 기억이 손으로 꼽을만한 저는, 그 묘미나 깊이를 제대로 알 수 없지만, 저 길이 농부나 순례자들의 생명의 길이란 것엔 공감이 됩니다.
저는 두물머리에선 유난히 이 논둑길이 좋더라구요.
아무래도 유년 시절에 경험한 친숙함 때문이지 싶어요.
지금은 잡초가 우거져서 다니기가 어려울 정도가 되었어요.
15일 이전에 한번 다녀와야지 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