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한강과 북한강이 하나되어 몸을 뒤섞는 두물머리에 서면
커다란 섬 하나가 눈에 들어온다.
섬의 이름은 족자섬이라 불린다.
원래 두물머리는 1년에 한두 번 찾는 곳이었으나
이곳에서 이명박 정권의 4대강 사업에 반대하여
매일 오후 세 시에 생명평화미사가 열리면서
3년 동안 이곳을 찾는 걸음이 잦아졌다.
미사는 9월 3일로 마감이 되었다.
그동안 이곳을 찾으면서 갈 때마다 사진을 찍었고
그 덕분에 족자섬의 사계를 남길 수 있게 되었다.
족자섬이란 이름이 어디에서 연유한 것인지는 알 수가 없다.
다만 족자섬을 거쳐 흘러가는 한강 줄기를
예전에는 족잣여울이라고 불렀나 보다.
그러니까 족자섬이란 이름은 족잣여울에 있는 섬이란 뜻으로
족자섬이 되었을 수가 있다.
지금은 나무가 우거진 섬이지만
예전에는 이 섬이 바위로 이루어진 산이기도 했던가 보다.
그래서 이 섬은 떠드렁산이라는 또다른 이름을 갖고 있다.
미사갈 때마다 항상 눈을 마주했으니
세월로 쳐도 이제는 섬과 맺은 인연이 제법 오래되었다.
미사 마지막날인 9월 3일에 찍은 사진부터
3년전까지 거슬러 올라가 본다.
아침에 약하게 빗발이 뿌린 날이었다.
그러나 비는 오지 않았다.
흐린 하늘에 엷게 채색을 달리하며 구름이 떠 있었고
그 구름을 헤집고 빛이 연하게 내려오고 있었다.
하루를 거슬러 오르면
같은 자리에서 전혀 다른 하늘을 만난다.
구름이 좋아서 시간마다 달리 그려내는 그 그림을
하나도 놓치고 싶지 않은 날이었다.
구름이 산줄기를 따라 낮게 몸을 낮춘 날이었다.
구름 하나가 왼쪽으로 높이 떠 있어서
족자섬을 오른쪽으로 세워 균형을 맞추었다.
4월은 섬이 서서히 겨울잠에서 깨어나는 시기이다.
억새는 바람만 불면 모든 것이 반가워서 손을 흔든다.
너무 흔들어서 겨우내 손이 다 닳는다.
3월초만 해도 족자섬을 향해 손을 흔드는 갈대가 제법 많았었다.
겨울에는 손이 시리다.
그래도 항상 반가움이 더 큰 갈대는
어떤 추위가 닥쳐도 손을 거두는 법이 없다.
겨울날에도 갈대는 여전히 손을 흔들며 계절을 지나간다.
가을의 끝자락에선 갈대들이 너무 무성하여
섬을 향해 손을 흔들라치면 서로의 몸이 얽히고 설키곤 했다.
바람이 잘 때면
섬은 가끔 제 모습을 강으로 내려 물끄러미 들여다 보기도 한다.
사람들은 벌써 3월만 되면 봄이 왔다고
봄에 대한 설레임을 마음에 담아갖고 다니고
섬은 5월쯤되면 푸른 빛을 섬에 담아
사람들의 설레임과 색을 맞춘다.
구름이 부풀어 오르는 날이다.
봄꽃으로 섬도 한창 부풀어 오른 시절이었다.
날은 흐릴 때도 있고 맑을 때도 있다.
흐린 날은 흐린대로 살만하고 맑을 때는 또 맑은대로 좋다.
어느 겨울, 혹독한 추위로 강이 얼어붙자 섬까지 길이 났다.
사람들이 신이나서 섬까지 걸어 들어갔다.
우리가 북반구에 살고 있으니
태양이 섬의 아래쪽으로 질 것 같은데
항상 해는 저녁 때가 되면
섬의 위쪽으로 산을 넘어갔다.
햇볕이 미처 얼음이 침범하지 못한
수면으로 내려앉아 반짝반짝 부서지는 겨울날도 있었다.
강의 걸음을 막고 물을 가둔 팔당댐 때문에
거대한 팔당호가 만들어진 곳이다.
종종 안개가 섬을 가리고 어렴풋하게 초점을 흐려놓는다.
바람이 부는 날은 강의 어디나 온통 물결이다.
강이 재잘재잘 떠들며 하루 종일 섬과 수다를 나눈다.
바람이 자는 날은 강이 조용히 가슴을 열고
섬이 그 품에 안기는 날이다.
눈이 세상을 덮고 먹구름이 날을 흐려놓으면
두물머리의 족자섬은 세상의 색을 지우고
흑백의 수묵화를 친다.
4 thoughts on “두물머리 족자섬의 사계”
안녕하세요 SBS 모닝와이드 제작팀입니다. 사진이 정말 잘 나와서요, 직접 촬영하신 족자섬 사진 혹시 저희 방송에서 사용해도 괜찮을지해서 연락드렸습니다. 현재 저희팀은 족자섬에 서식하는 민물가마우지에 대해 취재 중에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네. 쓰셔도 됩니다.
이렇게 거슬러 올라가면서 계절의 변화를 음미하는 것도 참 좋네요.
김영갑 선생의 제주도 사진책을 보는 기분입니다.
부지런하고 끈질긴 작가님 덕분에 족자섬을 날로 감상했습니다.
사계까진 아니어도 얼어붙은 강을 걸어 섬에 건너가 발을 디뎌보고 싶어지는데요.
섬 가까이 가보니 정말 바위산이긴 바위산이더라구요.
아이들 두 명이 건너가는 바람에 어른들이 아이들 걱정에 줄줄이 따라갔죠.
예전에는 한강이 얼면 소달구지도 건넜다는 얘기를 들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