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올랐던 강원도의 산

강원도 산골에서 자랐던 관계로
어렸을 적 산과 아주 친하게 지냈다.
내가 살았던 영월의 문곡리는
강원도의 마을이 거의 모두 그렇듯이
사면이 모두 산으로 둘러쌓여 있었다.
하지만 그 산들은 우리의 눈앞에 있으면서도
우리의 이름에 값하는 고유한 이름을 갖고 있지 못했다.
그 산은 그냥 앞산이거나 뒷산이었다.
내가 뒷산이라고 부르는 산이 개울 건너 마을에선 앞산이 되겠지만
마을에선 사는 곳에서의 앞뒤를 따져 구별하지 않고
앞산은 앞산으로, 뒷산은 그냥 모두가 뒷산으로 불렀다.
가장 가까운 곳에 있었던 산으로 이름을 가진 산은 접산이었다.
한번도 그 산에 올라본 적이 없다.
어렸을 적의 그 산은 왜 그렇게 높아보였는지 모르겠다.
지금은 그 산의 거의 꼭대기까지 차가 간다고 들었다.
산의 꼭대기에 풍력발전기가 설치되어 있고,
고냉지 배추 재배지가 들어서면서 길이 났다고 한다.
어렸을 적에도 그 산에는 지그재그로 비틀거리며 산을 올라가는 길이 있었다.
벌목한 나무를 실어나르는 산판의 차들이 다니는 길이었다.
멀리서도 그 길이 보였다.
그 산들을 모두 뒤로 하고 고향을 떠난 뒤로
사실 그다지 산을 찾지 않았다.
먹고 살아가는 일에 쫓긴 때문이었다.
걸음이 다시 산으로 향한 것은 2005년쯤부터 였던 것 같다.
오르는 걸음이 힘들어서 그다지 자주 찾진 않았으나
그래도 이때부터 다녀온 강원도의 산들 가운데
유명한 이름들이 모두 들어있다.
그동안 내가 올랐던 강원도의 산들을 모아 보았다.

Photo by Kim Dong Won
2002년 2월 14일 강원도 태백산에서

태백산 풍경이다.
아이를 데리고 함께 갔었다.
가기 전에 친구에게 가장 쉬운 등반 코스를 물었더니
유일사 입구에 차를 세우라고 했다.
친구들의 말대로 등산길이 아주 쉬웠다.

Photo by Kim Dong Won
2005년 3월 11일 강원도 진부의 오대산에서

처음으로 오대산을 찾아갔다.
눈이 펑펑 내리는 날이었다.
처음에는 오대산 정상까지 가보려고 마음을 먹었지만
중간의 적멸보궁에서 걸음을 멈추었다.
눈이 덮인데다가 인적이 없어
내가 따라갈 수 있는 등산로를 찾을 수가 없었다.

Photo by Kim Dong Won
2005년 10월 15일 강원도 속초의 설악산에서

인터넷으로 뒤져서 설악산을 오르는 가장 수월한 등산로를 찾아본 뒤
동서울터미널에서 한계령가는 버스에 몸을 실었다.
아무 준비도 없이 떠난 산행이었다.
그렇게 오래 걸릴 줄 상상도 못했다.
오색으로 내려오니 세상이 완전히 깜깜해져 있었다.
처음으로 10시간을 걸었던 길고 오랜 산행이었다.

Photo by Kim Dong Won
2005년 12월 4일 강원도 원주의 치악산에서

설악산에 다녀오고 나자 사람이 기고만장해졌다.
그해에 원주의 치악산을 올랐다.
그렇게 정상에 집착하는 타입이 아니어서
좀 힘들다 싶은 지점에서 내려가려고 했다.
내려오는 사람에게 정상이 얼마나 남았냐고 물었더니
요기 바로 위가 정상이라고 했다.
정상에 다가서 돌아설뻔 했다.

Photo by Kim Dong Won
2006년 2월 4일 강원도 태백산에서

태백산은 그곳까지 내려가는 것은 쉽지가 않지만
한겨울에 눈소식 들은 뒤에 내려가면
내려간 보람은 아주 크다.

Photo by Kim Dong Won
2006년 10월 3일 강원도 횡계의 선자령에서

선자령이니 이름대로라면 산이라기 보다 고개이다.
그냥 쉬거니 걷거니 하면서 오르기에 좋은 곳이다.
가을녘이라 억새가 아주 좋았다.

Photo by Kim Dong Won
2006년 10월 17일 강원도 속초의 설악산에서

다시 동서울터미널에서 버스를 타고 내려가
한계령에서부터 설악산에 올랐다.
그녀와 함께 갔으며 이때는 중청에서 하룻밤을 잤다.
역시 설악산이었다.

Photo by Kim Dong Won
2007년 3월 17일 강원도 횡계의 선자령에서

눈이 온다는 소식을 듣고
그녀를 꼬셔 차로 대관령까지 간 뒤에 선자령에 올랐다.
눈이 어찌나 많이 쏟아지는지 앞이 거의 보이질 않았다.
세상은 거의 항상 까맣게 지워지지만
때로 세상이 하얗게 지워지기도 한다.
눈이 내리는 날,
강원도의 산에 오르면 그것을 실감할 수 있다.

Photo by Kim Dong Won
2007년 6월 22일 강원도 춘천의 오봉산에서

춘천의 청평사로 사진찍으러 들어갔다가
절의 뒷편으로 솟아있는 산을 올랐다.
나중에 알아보니 오봉산이라고 했다.
원래 산을 넘어갈 생각이었으나
길을 찾지 못해 다시 절로 내려오고 말았다.

Photo by Kim Dong Won
2008년 1월 15일 강원도 진부의 오대산에서

전에 적멸보궁까지밖에 가지 못했던 오대산을 다시 찾았다.
눈이 온지 한참된 데다가
이번에는 사람들이 많아 눈길 위로 등산로가 확연했다.

Photo by Kim Dong Won
2010년 1월 16일 강원도 횡계의 선자령에서

또다시 대관령에서 오르는 선자령을 찾았다.
이날 정말 사람들이 많았다.
사람들이 너무 많다 싶어서 내려오는 길은
다른 길로 내려왔었다.

Photo by Kim Dong Won
2012년 8월 26일 강원도 영월의 봉래산에서

강원도에는 꼭대기까지 차로 갈 수 있는 산이 몇 군데 있다.
영월의 봉래산도 그 중의 하나이다.
고향 친구들 만나러 내려갔다가 차로 봉래산 꼭대기에 올랐다.

정리하고 보니 내가 오른 강원도의 산은
선자령이 세 차례, 태백산, 오대산과 설악산이 각각 두 차례,
그리고 치악산과 오봉산, 봉래산이 모두 한 차례씩이다.
지금까지 올랐던 강원도의 산 중에선 역시 설악산이 최고였다.
올해도 단풍들 때 다녀올 수 있을지 모르겠다.
설악산에 가려고 동서울 터미널에서 버스에 몸을 실으면
항상 운전기사 아저씨는 그냥 검단산이나 가지
뭘 고생스럽게 설악산까지 가느냐고 말하곤 했었다.
아저씨 얘기는 검단산이나 설악산이나 다 똑같다는 뜻이 아니라
단풍철의 설악산은 줄을 서서 올라가야 하기 때문이었다.
줄서서 올라가는 것이 어디 산이냐는 것이었다.
하지만 나는 줄서서 올라가는 산도 좋아한다.
적어도 길을 잃을 염려는 없기 때문이다.
대체로 한적할 때 설악산을 찾았던 나는
갈 때마다 중간에 길을 잃어 해매다가 다시 길을 찾아내곤 했었다.
다시 가면 또 해맬까 궁금하기도 하다.
산의 추억들을 정리하면서 보니
어느 하루 새벽에 집을 나서 좀 멀리 떠나고 싶다.
태백산이나 오대산 정도면 버스를 타고 가도
하루에 충분히 다녀올 수 있다.
올라오는 길의 버스는 어둠 속을 뚫고 서울로 내달릴 것이다.
산행끝에 집으로 돌아오는 버스 속에서의 느낌도 언제나 좋았었다.

10 thoughts on “내가 올랐던 강원도의 산

  1. <선자령 눈바람이 그려낸 묵화 한 점>
    까맣게 얼룩진 세상도
    하얗게 지워주는 눈바람.
    그 칼 같은 눈바람 속에 서면
    나도 나무도 함께 어우러지는 한 폭의 묵화가 된다.
    색깔론이 무색해지는 한 점 무채색 풍경화가 된다.

    1. 선자령은 오르는 길이 험하질 않아서 눈이 오는 날도 쉽게 갈 수가 있었습니다.
      근처에 삼양목장이라고 있는데 차로 들어가야 하긴 하지만 풍경은 그곳이 더 좋더군요.

  2. 제가 올라본 적이 있는 강원도 산은… 태백산,오대산 쪼금?, 설악산 뿐이네요
    특히 설악산은 눈이 많이 내려 통제되었는데 해저물녁까지 기다려 몰래 백담사쪽으로 갔더랬지요…
    백담산장에서 쉬는데… 이날 밤… 산장 주인이랑 술만 엄청 마셨더랬죠..
    물론 즐거웠지만, 다음날 오세암쪽으로 가다가 깔딱고개까지만 가다 내려왔지요
    그래도 지금 생각해보면 아주 좋았더랬죠..
    동원님, 언제 저랑 긴 산행 한 번 해봐요… 재밌을거같아요
    일테면.. 지리산 가을 종주…^^

    1. 지리산 종주요? 그거 4일이나 걸린데요. 엄청 힘들다고 하더만요.
      조만간 일끝나면 일단 하루 일정으로 지리산 천왕봉이나 한번 다녀올까 생각하고 있어요.
      경치좋은 산들은 다들 호락호락하질 않더라구요.
      겨울 방학 때 오면 겨울에도 쉽게 오를 수 있는 오대산 한번 가자구요.

  3. 요즘은 부쩍 종합선물세트를 풀어주시는 바람에 눈이 호사를 누립니다.
    올가을 버스 타고 가시는 느긋한 산행이 성사되어서 또 다른 풍경을 선사해 주시길
    바랄 뿐입니다. 태백산이 됐든 치악산이 됐든 오대산이든 한 번 꼽사리껴서
    가고 싶어지는데요. 역시 강원도 산들 좋습니다.

    1. 1년에 최소 한두 번은 강원도의 산에 가주어야 하는 것 같은데
      영 그걸 못하고 있네요.
      태백산은 차를 갖고 가기에는 너무 먼 것 같아요.
      거긴 여전히 길이 험하거든요.
      치악산하고 오대산은 시간만 맞추면 함께 다녀올 수 있을 듯 싶습니다.
      길이 좋아져서 이제는 하루로 충분하지 않을까 싶거든요.
      일을 꾸며보도록 하겠습니다.

  4. 눈 하얗게 쌓인 오대산을 보니 가고싶네요
    눈내린 산은 너무나 가고 싶으면서도 막상 가기 쉽지않으니 맘만 가득하네요.
    다녀오신 모든 산행이 자산이지 싶고 고저 부러울 따름입니다.
    저두 학생때 설악산 치악산 한번씩 다녀왔는데
    치악산은 눈이 많이 쌓여서 하행때 철퍼덕 주저앉아 미끄럼타고 왔던 잊지못할 추억이 있답니다. 청바지에 다닳은 운동화 신고 ㅎㅎ

    1. 선자령에 한번 같이 갔으니 오대산이나 치악산은 얼마든지 겨울에 하루 날잡아 다녀올 수 있을 듯 싶어요. 치악산은 워낙 가깝고 오대산도 선자령 가기 전에 있거든요. 수월하게 오르려면 태백산에 가야 하는데 거긴 차로는 너무 먼거 같아요. 올겨울에 눈소식이 오면 한번 떠나보죠, 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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