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해 동안의 알바를 끝내고
집에서 어학연수 준비를 하고 있는 딸에게
어느 날 아빠랑 같이 산에나 한번 가보지 않겠냐고 했더니
의외로 그러자고 선선이 응했다.
이왕 가는 길 엄마까지 모두 함께 가자고 했더니
모두가 그러자고 했다.
그렇지만 일정이 금방 잡하진 않았다.
일정은 이날저날로 왔다갔다 하다가
9월 22일 토요일로 잡히기에 이르렀다.
오후 늦게 집을 나설 때
내가 제안한 것은 김밥이나 두어 줄 사서
산을 오르다 가볍게 요기를 하고
저녁을 푸짐하게 먹자는 것이었으나
내 계획대로 되지는 않았다.
신체의 아래쪽 부위에서 배가 고프다는 기별을 전해오는 바람에
가장 먼저 차를 세운 곳은 산이 아니라
마방집이라는 하남에 있는 식당이었다.
한상 차려 먹고 나니 딸은 기지개 켜시고
그녀는 정체불명의 요염한 자세이시다.
졸지에 검단산도 식후경이 되어
검단산이 갑자기 금강산과 맞먹는 산이 되고 말았다.
산곡초등학교쪽으로 들어가
거의 갈데까지 차를 밀고 올라갔다.
계곡 가장자리의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조금 올라가다 보니 배나무가 눈에 띈다.
배나무라고 알려주었는데 호박이 열려있다.
그러니 이 나무는 호박이 열리는 배나무되시겠다.
이번 태풍을 용하게도 견뎌냈다.
등산로 초입에서 누리장 나무 열매가 많이 눈에 띈다.
봄에는 흰꽃으로 우리는 맞는데
가을에는 붉은 꽃받침 위에 까만 열매를 받쳐들고 우리를 맞는다.
간만에 걷는 산길이 좋았다.
두 사람도 여유롭게 걷는다.
딸이 이 정도 등산로라면 걸을만하다고 했다.
돌멩이 네 개가
커다란 바위를 배로 삼아
그 뱃전으로 나 앉았다.
바위는 꿈쩍을 앉지만 그것은 중요하지 않다.
때로 뱃전에 나앉은 기분만 낼 수 있으면 그것으로 충분하다.
바람이 스쳐가면 기분이 더욱 고조될 것이다.
예전에는 산에 가면
꽃이나 나무가 주로 내 시선을 끌어당겼는데
이번 산행길에선 자꾸 바위들이 눈에 들어온다.
이 바위는 타원으로 생겼다.
어쩌다 물소리에 온몸을 묻고 지내는 곳으로 자리를 잡아
물의 사연에 항상 귀를 기울여주는 바위가 되었다.
어디든 이름을 붙이면 특별해지는 듯싶다.
그래서 우리는 이 작은 폭포에
3단 지그재그 폭포라는 이름을 붙이고
그 앞에서 기념 사진을 하나 찍었다.
계곡물이 이리저리 방향을 비틀며 내려오고 있었다.
앉아있기에 딱 좋은 평평한 바위이다.
맑은 물에 눈씻고 맑은 소리에 귀를 씻고 가라고
그 옛날 바위 하나가 등을 내밀면서
이런 자리가 생겼는지도 모르겠다.
그 위용이 대단해 보인 밤나무이다.
사람들이 여기저기서 밤을 줍고 있었다.
밤나무가 너무 높아 밤을 털기는 어려워 보였다.
강원도에선 밤송이가 벌어지는 것을 두고
찰이 벌어진다고 한다.
찰이 벌어지면 밤송이가 다물었던 입을 벌리고
잘익은 밤을 바깥으로 툭툭 뱉아낸다.
지금이 그때이다.
그녀는 처음 만나는 돌탑까지 걷더니 내려가자고 했으나
딸은 그래도 약수는 먹고 가야하지 않겠냐고 했다.
사실 약수까지 가면 정상도 멀지 않다.
첫 약수터까지 가는데는 성공했다.
물로 목을 축이자 딸은 마음이 급변해 내려가자고 했다.
여기서 정상까지 멀지 않다며 그냥 내려가면 너무 억울하다고 했다.
딸이 꼬드김에 넘어가 주었다.
두 번째 약수터에서도 쉬었다.
아직은 숲에 초록이 풍성하다.
검단산은 약수터가 많아
달리 물을 챙기지 않아도 되는 점이 아주 좋다.
드디어 정상에 왔다.
멀리 양평 방향의 풍경이다.
나는 날좋은 날은 정상에 서면
동쪽으로는 속초 앞바다가 보이는데
오늘은 날이 흐려서 전혀 보이지 않는다고 뻥을 쳤다.
딸은 아예 남쪽으로는 제주 바다도 보인다고 하시지 그러냐고 나왔다.
657m를 오른 기념으로 정상 표지석 앞에서 기념 사진을 하나 찍었다.
망원경으로 여기저기 구경해보는 것도 잊지 않았다.
산꼭대기에서 별 서비스를 다 받는다.
내려오는 길에서도 약수터에서 쉬는 것을 잊지 않았다.
약수터의 벤치에 앉아 올라오는 길에 주웠던 밤을 까먹는다.
내게도 한 조각 남겨주는 것을 잊지 않았다.
날이 어두워져 프레시를 밝히고 내려와야 했으나
내게는 아주 만족스런 산행길이었다.
2 thoughts on “딸과 그녀가 함께 해준 검단산 산행”
저는 세시 반부터 다섯시까지 마루공원-객산의 위례둘레길에 있었는데,
산곡 쪽으로 방향을 잡았으면 중간에 만나뵐 뻔 했네요.^^
저 샘물은 올여름엔 물이 말라 나오지 않았는데, 다시 나오는 거 보니 반갑네요.
함께 오르는 동행들이 있으면 포기하고 싶은 순간들도 서로 부추겨 슬쩍 넘어갈 수
있는데, 결국 가족의 응원으로 등정의 기쁨과 멋진 풍경 그리고
또 하나의 추억까지 덤으로 얻으신 것 같습니다.
시간대는 거의 비슷한 듯 싶습니다.
이번에도 우연하게 산에서 만날 뻔 했군요.
셋이서 함께 산행을 하니 이런저런 쓸데없는 소리도 많이하고
그런 점이 가장 좋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