홈프레스와 롯데 캡슐

Photo by Kim Dong Won
2012년 9월 26일 우리 집 베란다에서


어머니는 영어에 약하시다.
그런데 가끔 그 취약점을 한판승으로 뒤집어 엎으시며
어머니가 정말 영어를 모르는 것인지 헷갈리게 하신다.
가장 먼저 어머니께 걸려 넘어진 건
우리 집 뒤로 멀리 보이는 롯데 캐슬이다.
롯데 캐슬은 그냥 아파트에 불과하면서도
성이 되고자 하는 대담한 욕망을 가감없이 드러낸다.
그 욕망을 하나 걸러내지 않고 적나라하게 그대로 드러내면서
바로 그 이름이 탄생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어머니에겐 어림도 없다.
어머니에게 롯데 캐슬은 항상 롯데 캡슐이다.
어머니는 거대한 성이 되고자 하는 욕망을
매번 작은 캡슐에 담아 밀봉해 버린다.
거대한 성은 어머니 앞에선
손가락에 잡힐 정도의 작은 캡슐로 축소된다.
가끔 나도 무한하게 증식하는 현대 사회의 인간 욕망을
캡슐에 담아 밀봉해 버리고 싶을 때가 있다.
어머니에게 걸려넘어진 것으로 보면
홈플러스도 마찬가지이다.
홈플러스는 갈 때마다
가정에 플러스가 되는 곳이라고 우리를 속이려 든다.
그러나 어머니는 알고 계시다.
그곳이 사실은 우리 가정 경제의 주머니를 쥐어짜서
자신들의 이익을 챙기는 곳이라는 사실을.
그래서 어머니에게 홈플러스는 항상 홈프레스이다.
가끔 영어를 좀 안다고 생각하는 나는 오히려 영어를 모르는 것 같고
영어를 모르는 어머니는
그 짧은 영어 지식으로 세상을 간파하고 계신 것은 아닌지 헷갈린다.

4 thoughts on “홈프레스와 롯데 캡슐

  1. 오랜 궁금증 하나가 풀렸습니다.
    그 동안 털보님의 탁월한 언어 감각과 유쾌한 패러디 술이 어디서 생긴 건지 알고
    싶었는데, 자당께 모태로부터 전수 받으신 것이구만요.
    어떤 면에선 자당께서 한 수 위이신 것 같기도 합니다. ㅋㅋ

    1. 제가 무슨 말을 해도 지지해주시는 강력한 후원자이시죠.
      그런데 요즘은 손녀편으로 많이 기울어서 저보다 손녀를 더 좋아하십니다. ㅋㅋ

  2. 페북이면 좋아요룰 백 개를 누르고 싶어요.
    어머님과 털보님, 두 분이 합체하셔서 시원하게 한 방
    날려주셨어요.
    자본주의가 코피 줄줄 흘리고 있다는…… ㅎㅎㅎㅎㅎ

    롯데캡슐과 홈프레스 입에 착착 붙네요.

답글 남기기

이메일 주소는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필드는 *로 표시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