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과 구름

Photo by Kim Dong Won
2012년 10월 18일 우리 집 베란다에서

어느 날 초승달이 서쪽 하늘에 걸렸다.
저녁놀이 진홍빛으로 아주 곱게 물든 하늘이었다.
들쭉날쭉 윤곽선을 그리며 하늘을 파고든 건물들이
모두 그 하늘의 저녁빛과 초승달에
시선을 빼앗기고 있었다.
저녁을 보내기에 아주 좋은 자리였다.
며칠 뒤 같은 자리를 올려다 보았더니
달은 보이질 않고
대신 구름이 그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달은 오늘따라 왜 늦는 것일까.
하늘을 살펴보았더니
달은 반을 넘게 채운 몸매로
동쪽 하늘에 머물러 있었다.
달은 초승 무렵에는 날렵한 몸매로
제 시간에 맞추어 저녁을 보내기 가장 좋은 자리로 걸음하지만
몸이 불어나면 걸음이 무거워져
멀리 동쪽 하늘에서 저녁을 보내며
좋은 자리는 언제나 몸이 가벼운 구름에게 양보한다.

Photo by Kim Dong Won
2012년 10월 24일 우리 아파트 옥상에서

2 thoughts on “달과 구름

  1. 아직 저나 털보님이나 손주 볼 날이 멀었지만^^, 이 다음에 아이들에게 들려줄
    좋은 이야기거리를 얻어 갑니다. 저녁 하늘 풍경에서 이런 재밌는 이야기를 캐내는
    털보님의 동화적 상상력에 아침이 즐거워집니다.

    1. 내일도 이맘 때 여기서 달사진 찍어야지 했는데..
      다음 날보니까 그 시간에 상당히 동쪽에 머물러 있더라구요.
      그러더니 반달 넘기고선 아예 동쪽으로 완전히 치우쳐서
      이게 달이 해와 달리 하루의 변화가 아주 크구나 하는 걸 알게 되었어요.
      다음 달 10일경이 초승의 반대쯤 되는 그믐 시기인데
      그때는 저녁 때 어디쯤 떠 있을지 궁금하기도 합니다.
      아이패드가 생겨서 달관련 앱을 하나 받았더니 이렇게 저렇게 써먹게 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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