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집에서 전사했다.
단순히 흐르는 술의 유탄을 맞은 때문은 아니었다.
내가 술을 마신 것이 어디 한두 해인가.
그동안 맥주와 양주가 뒤섞이거나 맥주와 소주가 뒤섞이는
폭탄주의 폭격 속에서도 살아남은 나였다.
그러나 이번에는 막탄을 맞았다.
막걸리와 맥주가 뒤섞여 빚어낸 막탄의 가공할 위력은
그동안 내가 겪어낸 폭탄의 위력과는 차원을 달리했다.
난 그만 막탄을 잘 피해가며
새벽 네 시까지 싸우고 있는 일행들을 돕지 못하고
두 시를 조금 넘긴 시간에 전사하고 말았다.
이미 3차 전쟁이 시작되었을 때
술집의 창문에서 고양이 한마리가 우리들을 내려다보며
저것들은 금요일만 되면 모여서 뭔 짓거리인지 하는 표정으로
나의 운명을 예견하고 있기는 했었다.
고양이가 오늘도 몇 명 골로 가겠군 하는 눈빛을 보였을 때
그 예리한 눈빛의 의미를 읽어냈어야 했지만
나는 이미 판단력을 상실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미 이렇게 된 일 어쩌랴.
부디 부탁하노니 나의 죽음을 소주에게는 알리지 말아다고.
2 thoughts on “전사”
막탄의 위력이 대단했었나 봐요.
창밖 고양이 녀석의 형형쌩쌩한 눈빛과는 다르게 말입니다.ㅋㅋ
그래도 마침 모서리 부분에 잠시 머리를 기대며 장수의 전사를 드러내지 않고
의연한 포즈로 쉼을 맞이하게 돼 다행이었겠어요.^^
간만에 사람들 만난 즐거움에 퍼마셨더니 그만.. ㅋㅋ
그래도 버리고 가지는 않더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