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잎 친구

Photo by Kim Dong Won
2012년 11월 11일 우리 집 베란다에서

베란다에서 유리창을 두드리는 소리가 있었다.
그 누구의 팔이 닿기에도 아득하기만한
아파트 8층의 유리창.
긴가민가 베란다로 나갔더니 창문에 찰싹 붙어
은행잎 하나가 나를 찾고 있다.

-야, 뭐해? 이 좋은 가을날에.
단풍이 완전히 절정으로 치닫고 있어.
게다가 오늘은 비까지 내리고 있어.
촉촉한 이 분위기 그대로 보낼꺼야.
어서 나와서 나랑 놀자.

나는 놀랐다.
8층까지 올라와 유리창을 다 두드리다니.
하긴 베란다에서 빤히 보이는
우성아파트의 은행나무들에게로 자주 놀러가기는 했었다.
노랗게 물든 은행나무의 가을색은 나에겐
색으로 보내는 놀러오라는 뜻의 수신호였다.
원고 때문에 한 며칠 못갔더니 급기야는 집까지 찾아왔나 보다.
하지만 지금은 그럴 처지가 못된다.

어쩌냐.
당장 나가고 싶지만 원고 써야해.
벌써 마감을 이틀이나 넘겼어.
내일은 보내줘야 한단 말야.
그러니 우리 낼보자, 응.

마음은 문밖으로 나서고 있었지만
몸을 겨우 달래 밖으로 나가려는 마음을
몸따라 겨우 방안으로 들여보냈다.

은행잎 친구는 아쉬움을 거두지 못해
비가 그치고 난 뒤에야 걸음을 돌렸다.

Photo by Kim Dong Won
2012년 11월 11일 우리 집 베란다에서

2 thoughts on “은행잎 친구

  1. 그림 같습니다!
    유붕이 자원방래해서 즐거우셨을 것 같습니다. 역시 자연도 사람을 알아보는군요.^^ 비가 내려서 그런지 어제 교회 오가는 길 차도에 수북한 은행잎이 시선을 편하게 해 주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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