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리 거리를 싸돌아 다녀도
우리의 걸음은 거의 흔적을 남기는 법이 없다.
그나마 발자국을 찍어
흔적을 남길 수 있는 경우는
눈이 왔을 때이다.
하지만 눈밭에 찍힌 발자국도 눈이 녹으면서
금방 선명함을 잃고 함께 사라진다.
그런데 요 며칠 골목에는 온통 발자국 투성이다.
살짝 녹듯이 내린 눈 위에 선명하게 새겨진 발자국이
그 뒤를 따라 밀려든 강추위에
그대로 얼어붙은 탓이다.
시차를 두고 걸어가
누구의 걸음이었는지도 모를 발자국이
추위 탓에 모두 함께 뒤엉키며
며칠째 질긴 인연을 이어가고 있다.
느닷없는 이 발자국의 인연을 살펴보고 있노라니
분명 발자국의 주인은 달라보이는데
마치 한몸으로 걸어간 사람의 것인양
옆으로 나란히 찍혀 있는 것이 있다.
실제로 만났다면
평생 사랑하면서 한몸처럼 살았을
연인의 운명이었을까.
발자국의 인연이
모두 그렇게 좋은 것만은 아니다.
어떤 발자국은 다른 발자국의 코를
질끈 밟고 지나갔다.
실제로 만났다면
만날 때마다 으르렁거리며 싸웠을
악연의 운명이었을까.
한겨울 강추위가 밀려든 골목에서
사람들은 우리는 아무 인연이 없다는 듯
모두 무심하게 발자국을 버리고
집으로 회사로 또 어딘가로 가버렸지만
남겨진 발자국들은 며칠째
운명적 사랑이나 혹은 악연의 인연을 엮고 있었다.
4 thoughts on “발자국 인연”
어이쿠! 발 앞부분을 큼지막하게 밟히는 바람에 제법 아팠을 것 같은데요.^^
나란히 찍힌 발자욱은 사이가 좋아선지 발 크기까지 비슷해 보이는데요.
시장가려고 나갔다가 보니까 찍힌 발자국이 얼어붙어서 어지럽게 얽혀 있더라구요.
이거 재미나다 싶어서 시장 갔다 온 뒤에 카메라 들고 다시 나갔죠.
겨울 풍경 찍으러 좀 나가야 하는데 너무 추우니까 그것도 어렵네요.
눈위에 찍힌 발자국이 흔적이 시간위에 찍힌 인연의 불도장 같습니다..^^
(저도 댓글로 은유다운 시적인 글 적고 싶었어요 ^^)
발자국이 살짝 녹은 눈위에 찍힌 뒤에 얼어붙어서
아주 화석처럼 선명하게 남은 것 같아요.
이런 장면도 흔치가 않다 싶더라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