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 16일의 아침 나절에 눈발이 날렸다.
올겨울에 들어와 몇 번 큰눈이 내리긴 했지만
그때마다 일과 시간이 겹쳐 바깥으로 나가질 못했다.
이번에는 그때와 달리 주저없이 바깥으로 나설 수 있었다.
13번 버스를 타고 하남 방향으로 나갔으며
산곡초등학교 앞에서 내려 검단산으로 오르기 시작했다.
하지만 버스에서 내렸을 때 아쉽게도 눈은 그치고 말았다.
산의 초입에서 산의 허리춤을 타고 오르는 샛길 하나를 보았다.
눈이 하얗게 덮여있는 눈길이었다.
항상 다니던 길을 버리고 그 길로 들어섰다.
그 길의 끝에서 고추봉이란 봉우리를 만났다.
그리고 그 길을 가다가 곤줄박이를 만났다.
사실 새들과는 가까이 하기가 어렵다.
새들은 인기척만 살짝 비쳐도 화들짝 날아올라 멀리 줄행랑을 놓는다.
그래서 새들의 사진을 찍으려면 망원렌즈가 필요하다.
최소 200mm 정도의 렌즈는 있어야 한다.
그런데 이번에 만난 곤줄박이는
아주 대놓고 카메라 머리맡에 와서 얼굴을 들이밀었다.
덕분에 곤줄박이의 모습을 아주 선명하게 남길 수 있었다.
야, 정면으로 보지마.
눈알이 한쪽으로 쏠리는 느낌이야.
음, 나뭇가지이긴 하지만
그래도 높은 곳에 앉았으니
세상 한번 지긋이 내려다보고.
이럴 때는 꼭 왕이라도 된 것 같아.
어때? 이러니 깊은 생각에 잠겨있는 것 같지?
생각이란게 의외로 간단해.
고개 좀 돌리고 눈만 감으면
생각의 깊이가 저절로 갖추어지는 것 같아.
이럴 때의 모습은 보면
멀리 큰 꿈을 바라보고 계신듯도 하다.
시선을 멀리 아득한 곳에 두면 그곳에 꿈이 생긴다.
내가 고개 돌려서 왼쪽도 보여줄께.
사진찍을 때 보면
이렇게 고개 돌려서 왼쪽 오른쪽 다 보여주더라.
이제 오른쪽 왼쪽 다 보여준거야, 그럼.
날씨가 춥긴 춥나봐.
머리털 곤두서는 느낌이야.
좋아, 좋아, 아주 자세 좋아.
그대로, 그대로.
자, 찍는다.
찰칵!
약간 더 고개를 오른쪽으로 돌려볼래.
오, 좋아, 좋아.
찰칵!
그 상태에서 이번에는 아래쪽으로 숙이면서
눈길을 좀 낮추어봐.
오케이, 좋아, 좋아.
찰칵!
음, 찍어보니 너의 얼짱 각도는 처음에 취한 각도다.
앞으로는 고개를 오른쪽으로 살짝 틀어준 상태로 사진찍어.
너는 그 각도에서 제일 잘 나온다.
아~ 야, 그렇게 정면으로 좀 보지마.
깜짝 놀랐어.
수염기른 병아리인줄 알았잖아.
6 thoughts on “곤줄박이와의 만남”
저나 나나 놓치고 싶지 않는 가지 하나.
비밀이 없으면 허전하듯, 꼭 잡고 싶은 가지 하나쯤은 욕심 부려도 좋을 듯.
사진 정말 좋습니다. 새를 보는 따스한 눈길도 읽혀지구요.
언젠가 눈이 왔을 때 오대산에 가보니까 종이로 고깔을 만들어서 그 속에 새 모이를 넣은 뒤에 절주변의 눈밭에 내놓았더라구요. 눈이 오면 새들이 먹이 구하기가 쉽지 않은 것 같아요. 시장에 들러 좁쌀이라도 사왔어야 하는 건가 싶기는 했어요.
인적이 드문 곳이라 서로 반가웠던 것 같습니다.
한 뼘도 안 되는 작은 새가 다양한 포즈를 취하고 있네요.
눈이 그친 아쉬움을 샛길 산행에서 뜻밖의 친구가 보상해 준 건가요?
사람들 겁내지 않는 새들이 있는 거 같아요.
원래는 동고비라는 새가 사람들 가까이 날아들곤 하는데
눈이 내려서 그런지 이날은 곤줄박이가 바로 눈앞에서 반겨주더군요.
한참 동안 얘들과 놀았어요.
재대로 담을려면 600mm추천 합니다.
멀리서 당겨 잡아야 되거든요.
가까이서 담으면 새들이 놀라거나 달아나죠.
하이고, 저의 능력밖입니다. 200mm도 그저 고마울 뿐이죠.
블로그에 있는 좋은 새 사진들이 그걸로 담으신 거군요.
아주 놀랍더라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