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의 자연사

Photo by Kim Dong Won
2007년 1월 30일 강원도 인제에서

가끔 시골의 들녘을 지나다 보면
밭에 버려진 무를 만난다.
그러면 애써 농사지은 농부님들의 노고에 생각이 미치고
버려진 무는 안타까움이 된다.
하지만 무의 입장에서 보자면
밭에 버려진 무는
제 생명을 주어진대로 다 누리고
자연으로 돌아가고 있는 중이다.
말하자면 자연사한 무랄까.
무는 버려지지 않는 이상
자연사하기가 어렵다.
항상 가장 잘 익었을 때 밭에서 불려나와
우리의 입맛을 채워주는 것으로
생을 마감한다.
사람사는 세상에선 자연사가 큰 축복이지만
무가 자연사를 하면
무를 키운 농부의 마음이 많이 아프다.
농부에게 무의 자연사는
주어진 생명을 다 누린 것이 아니라
사실은 버려진 죽음이기 때문이다.
우리의 인간 세상에서도 그렇다.
아무리 자연사라 해도 죽음이 버려지면
슬픔은 말할 수 없이 커진다.
하지만 실제로 자연사한 무의 입장이 어떤지
나는 그건 잘 모르겠다.
가끔 자연의 입장은 어떨까를 생각해보면
우리의 자연스런 생각도
그냥 완고한 우리의 입장이 아닐까 싶어진다.
강원도의 어느 시골 마을을 지날 때
밭에서 자연사한 무들이
나의 완고한 생각들을 뒤흔들고 있었다.

2 thoughts on “무의 자연사

  1. 요즘 무 값이 제법 나가는 편인데, 저 녀석들은 때를 잘못 만나 제대로 빛을 보지
    못 하고 한켠에 버려졌군요. 갑자기 시원한 무국이 먹고 싶어지는 식탐 발동.^^

    1. 이곳도 거의 산꼬라뎅이인데..
      지금은 어디쯤인지 찾아가도 여기가 거긴가 할 듯 싶어요.
      무값 좋을 때 도시 구경 한번해야 무가 출세하는 건데 말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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