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버스

Photo by Kim Dong Won
2013년 2월 6일 서울의 천호대교를 건너는 버스 속에서

종로에서 술을 마셨다.
종종 마시고 있다.
술자리가 시작되는 것은 대개 오늘이지만
술자리가 그 오늘에서 마감되는 경우는 거의 없다.
술자리는 오늘을 어제로 뒤바꾸어 놓으면서
내일로 넘어가서야 마무리가 되곤 한다.
우리는 술을 마시면서 오늘을 어제로 밀어내고
열두시 너머에서 어정거리고 있던 내일을
새로운 오늘로 맞아들인다.
때로는 해를 보내면서 시작한 술자리를
아침 해로 밝히면서 끝맺을 때도 있다.
하지만 최근에 가진 두 번의 술자리는
아주 건전한 방향을 곁눈질하면서
밤 11시쯤 자리를 털고 일어서려 했다.
마치 70년대 군부독재시절의 건전 가요가 다시 들리는 듯한
급작스런 환청에 시달린 나는
일행 중 귀가 얇은 몇몇을 감언이설로 꼬드겨
결국 밤 열두 시를 넘기고야 말았지만
예전처럼 밤 한시를 가볍게 넘기는 불굴의 알콜 대전을 치루진 못했다.
문제는 술자리의 요일이었다.
술자리를 펴는데 있어 특별히 요일을 가리지 않는 나와 달리
직장을 다니는 사람들은 월요일과 화요일의 술자리에선
견딜 수 없는 불안으로 내일의 출근을 걱정하며
슬금슬금 시간의 눈치를 살폈다.
분위기가 이상하게 흘러간다 싶더니
결국 화요일의 술자리에선 밤 11시를 갓넘어서자 마자
술자리가 곧바로 접히고 말았다.
오늘 시작된 술자리가 오늘로 마감이 되다니.
친구들과 헤어져 버스 정류장에 섰더니
집으로 가는 370번 시내버스가 스르르 미끄러져 들어오더니
내 앞에 딱 맞추어 섰다.
냉큼 그 버스에 올랐다.
종로에서 밤 12시가 되기 전에 술취한 나를 태운 버스는
밤 12시가 넘어 천호대교를 건넌다.
버스가 어제의 술자리에 있던 나를
오늘의 집으로 데려다 주었다.
시간을 잘 살펴 밤버스에 오르면 버스가 밤을 달려
항상 술의 힘으로 밀고 넘었던 12시 너머의 미래로
나를 고이 데려다 준다.
그 미래에 오늘의 내 집이 있다.
술의 매력 못지 않은 밤버스의 크나큰 매력이었다.

2 thoughts on “밤버스

  1. 여전히 불굴의 알콜 대전 감당하시는 주량과 체력에 경의를!^^
    겨울날 자정 무렵 한강다리 건너는 버스 풍경이 참 평화롭습니다.

    1. 하남가는 버스가 밤 1시 30분쯤 종로에서 마지막으로 출발하기 때문에
      그거 타고 들어오는데 이 날은 일찍 파하는 바람에 시내버스를 탔어요.
      12시를 넘기면서 천호대교 넘어가는데 정말 마음이 편안하긴 하더라구요.

답글 남기기

이메일 주소는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필드는 *로 표시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