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밥의 은박 이불과 옷 이야기

Photo by Kim Dong Won
2013년 2월 15일 집에서

처음에 김밥은 여럿이 모두
얇은 은박 이불 한채를 함께 덮고 있었다.
머리를 이불 속으로 감추어주는 대신
다른 한쪽으로 발이 훤하게 드러나는 이불이었지만
함께 몸을 포개고 그 이불 속에서 누워있노라면
그래도 먼지를 피하여 편안하게 쉴만 했다.
그런데 그중 유독 불만이 큰 한 녀석이 있었다.
녀석은 언제나 뽀얀 제 피부를
홑겹의 검정색 옷감으로 둘러싸고는
그것을 김밥의 전통 패션이라 이르는
김밥 세상의 그 오래고 획일화된 패션 감각에 불만이 많았다.
그 김밥이 불만을 토로할 때마다
다른 김밥이 이게 맨인블랙 패션이라고
전통을 넘어 현대에서도 먹힌
시대를 초월한 패션이라고 말하곤 했지만
그 고정 불변의 김밥 패션에 불만이 사그라들진 않았다.
그러다 알게 모르게 슬슬 커진 그 불만이
결국은 일을 저지르고 말았다.
녀석은 패션에 대한 불만스런 제 마음을 풀어보고야 말겠다며
모두의 은박 이불로 그만 제 옷 한벌을 해입고 말았다.
반짝이는 그 은박의 옷에
아주 기분이 좋아진 녀석은
아예 옷 속으로 기어들어가 버렸다.
그러나 그때부터 다른 김밥들은
모두 발가벗고 살아야 했다.
김밥은 이상하게
홑겹의 검은 천을 하나만 두르고 있을 때는
발가벗은 느낌이었다.
그 꼴을 두고 볼 수는 없어
할 수 없이 없는 살림에 시장에서 은박천을 끊어다
다들 은박 옷을 한벌씩 해 입히는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역시 김밥은
원래의 김밥 패션만한 패션이 없어 보였다.
전통은 역시 무시할 수 없는 것이었다.
결정적 순간이 오자
그 녀석도 은박의 옷을 훌러덩 벗어던지고
그 맛나고 군침도는 블랙 패션으로 다시 돌아왔다.
김밥만이 갖고 있는 맛의 패션이었다.

Photo by Kim Dong Won
2013년 2월 16일 집에서

2 thoughts on “김밥의 은박 이불과 옷 이야기

  1. 이건 아마도 봄가을 패션인듯 싶고,
    겨울엔 추우니까 랩을 한 장 씌우거나 아예 두툼한 유부 김밥을 만들고,
    한여름엔 아예 훌러덩 벗어 시원한 누드 김밥이 제격이겠어요.^^
    보고 있으려니 아침부터 김밥 땡기는데요.

    1. 김밥도 패션이 다양하군요.
      항상 속만 다르고 겉은 똑같은 줄 알았어요.
      간만에 먹었더니 맛있더라구요. 세줄을 한자리에서 비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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