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에 김밥은 여럿이 모두
얇은 은박 이불 한채를 함께 덮고 있었다.
머리를 이불 속으로 감추어주는 대신
다른 한쪽으로 발이 훤하게 드러나는 이불이었지만
함께 몸을 포개고 그 이불 속에서 누워있노라면
그래도 먼지를 피하여 편안하게 쉴만 했다.
그런데 그중 유독 불만이 큰 한 녀석이 있었다.
녀석은 언제나 뽀얀 제 피부를
홑겹의 검정색 옷감으로 둘러싸고는
그것을 김밥의 전통 패션이라 이르는
김밥 세상의 그 오래고 획일화된 패션 감각에 불만이 많았다.
그 김밥이 불만을 토로할 때마다
다른 김밥이 이게 맨인블랙 패션이라고
전통을 넘어 현대에서도 먹힌
시대를 초월한 패션이라고 말하곤 했지만
그 고정 불변의 김밥 패션에 불만이 사그라들진 않았다.
그러다 알게 모르게 슬슬 커진 그 불만이
결국은 일을 저지르고 말았다.
녀석은 패션에 대한 불만스런 제 마음을 풀어보고야 말겠다며
모두의 은박 이불로 그만 제 옷 한벌을 해입고 말았다.
반짝이는 그 은박의 옷에
아주 기분이 좋아진 녀석은
아예 옷 속으로 기어들어가 버렸다.
그러나 그때부터 다른 김밥들은
모두 발가벗고 살아야 했다.
김밥은 이상하게
홑겹의 검은 천을 하나만 두르고 있을 때는
발가벗은 느낌이었다.
그 꼴을 두고 볼 수는 없어
할 수 없이 없는 살림에 시장에서 은박천을 끊어다
다들 은박 옷을 한벌씩 해 입히는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역시 김밥은
원래의 김밥 패션만한 패션이 없어 보였다.
전통은 역시 무시할 수 없는 것이었다.
결정적 순간이 오자
그 녀석도 은박의 옷을 훌러덩 벗어던지고
그 맛나고 군침도는 블랙 패션으로 다시 돌아왔다.
김밥만이 갖고 있는 맛의 패션이었다.
2 thoughts on “김밥의 은박 이불과 옷 이야기”
이건 아마도 봄가을 패션인듯 싶고,
겨울엔 추우니까 랩을 한 장 씌우거나 아예 두툼한 유부 김밥을 만들고,
한여름엔 아예 훌러덩 벗어 시원한 누드 김밥이 제격이겠어요.^^
보고 있으려니 아침부터 김밥 땡기는데요.
김밥도 패션이 다양하군요.
항상 속만 다르고 겉은 똑같은 줄 알았어요.
간만에 먹었더니 맛있더라구요. 세줄을 한자리에서 비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