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대와 나무, 그리고 바람

Photo by Kim Dong Won
2009년 3월 11일 서울 능동의 어린이대공원에서

바람이 놀러올 때마다
갈대는 마다않고 바람과 놀아주었다.
온몸으로 바람을 맞아들이며
허리가 꺾이듯 휘어지는 것도 모르고
바람과 어울려 놀았다.
바람이 놀러와도
나무는 대개 냉담한 얼굴이었다.
뿌리가 깊고 줄기가 굵을수록 더욱 그랬다.
가끔 바람이 거친 표정으로
놀아달라고 으르렁거리기도 했다.
그때면 그냥 가지를 흔들어
귀찮다는 듯이 손만 내주는 정도였다.
어찌나 바람에 냉담한지
바닷가의 사람들은 나무들을 바닷가에 집단으로 내세워
마을로 향하는 바람의 걸음을 막기도 했다.
바람과 잘 놀아준 갈대는
줏대가 없다고 욕을 먹었고
바람에게 냉담한 나무는
흔들리지 않는 결기를 가졌다고 찬사를 받았다.
바람으로선 도저히 알 수 없는 인간 세상의 일이었다.

**사진 속의 식물은 갈대가 아니라 억새이다.

2 thoughts on “갈대와 나무, 그리고 바람

  1. 결과적으로 바람의 구애를 냉큼 받아들였던 갈대보다 콧대 높게 약간 시큰둥하고
    쌀쌀맞게 맞아준 나무가 더 대접을 받은 세상이네요. 길 가다가 억새나 갈대가
    춤 추는 게 보이면, 잘하고 있다고 위로해 주어야겠는데요.^^

    1. 맨땅에 헤딩이라는 말도 있는데 바람은 거의 맨빌딩에 헤딩하고 다니더라구요. 그 처지가 안타까워 갈대가 올 때마다 잘해주는 듯 싶기도 합니다.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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