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의 기적

Photo by Kim Dong Won
2013년 4월 6일 서울의 올림픽공원에서

그 나무를 기억한다.
아니 정확히는 그 나무의 꽃을 기억한다.
4월 6일, 올림픽공원엔 봄비가 내리고 있었다.
봄비에 젖은 공원의 공기는 그 끝이 쌀쌀했다.
봄이다 하고 소리지르며 튀어나오던 봄꽃들이 움칫거릴만한 냉기였다.
아주 오래전 옛날엔 흙으로 쌓아올린 토성이었으나
지금은 높은 언덕처럼 보이는 성의 외곽을 따라 걷다가
다시 그 나무 앞에서 걸음이 딱 멈추었다.
나무는 지금은 빈가지 뿐이다.
아마 겨우내내 그랬을 것이다.
여름엔 그 나무를 눈여겨 본 적이 없다.
아니 여름엔 올림픽공원을 찾는 일도 드물었다.
때문에 그 나무의 모습은 지금까지는
꽃으로 빈가지를 가득채운 모습과
지금처럼 모든 것을 털어내고
빈가지로 서 있는, 그 둘의 모습 뿐이다.
지난 해, 이 나무 앞에서 걸음을 멈춘 것은 4월 20일이었다.
내 눈에는 누구나 이 나무 앞에선 걸음을 멈출 것 같았지만
사람들은 내 카메라가 향하는 방향을 따라
시선을 짚어간 연후에야 비로소 걸음을 멈추었다.
이유는 간단하다.
나무가 고개를 들어야 볼 수 있는 높이에 있기 때문이다.
산책을 나왔거나 건강을 위해 걷기에 열심인 사람들은
거의 고개를 드는 일이 없다.
시선은 언제나 눈높이에서
그 정도의 수평 상태를 약간씩 위아래로 오가거나
아니면 대개는 거의 지면으로 낮게 깔아두곤 했다.
시선을 조금 높게 들어올리는 일이
사람들에겐 상당히 버거운 것인가 하는 느낌이 들 때도 있었다.
이 나무의 꽃에 대한 기억을 가진 사람들도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그 이유도 간단하다.
이 나무가 벚나무여서
꽃이 피었다 지는 기간이 아주 짧기 때문이다.
지난 해 우연히 때를 잘맞추어 이곳을 지나다
이 나무의 꽃을 보았다.
그날 나는 이 나무의 꽃에 대해 이렇게 적어 놓았다.

오늘 내 시선을 다 가져간 너는
내일쯤 지고 말겠지.
내 시선은 오늘 모두 다 네게 빼았겼으니
네가 지고나면 나는
이제 눈멀어 아무 것도 보지 못하게 되리.

올해 다시 그 나무의 앞에 섰다.
꽃이 지난 해와 똑같이 때를 맞춘다면
이제 다시 꽃으로 가득차기까지 보름 정도가 남았다.
겨울을 버텨낸 나뭇가지의 앙상함을 보고 있노라니
보름 뒤 다시 꽃으로 가득채워진 나무 앞에 서면
마치 꽃이 기적처럼 느껴질 것만 같았다.
알고 보면 기적이란게 별 것이 아니다.
약간 높이 든 시선과
한해에 한 3일 정도 때를 잘맞춘 시간이
기적같은 일을 가져다준다.
갑자기 여름의 모습도 궁금해진 나는
올해는 한여름에 이 나무를 찾아가 볼 생각이다.
물론 오늘의 생각을 잊지 않는다면.

Photo by Kim Dong Won
2012년 4월 20일 서울의 올림픽공원에서

2 thoughts on “꽃의 기적

  1. 사진을 보는 순간, 아! 여기, 하는 데가 있는데 그 중 한 곳이네요.
    저도 2, 30분이면 가볼 수 있는 곳인데, 막상 한 번도 제대로 이 나무를 바라본 적은
    없었네요. 올해엔 벚꽃 피어난 이 나무 구경 한 번 해야겠습니다.

    1. 저도 무수히 갔지만 지난 해 처음봤어요.
      재수좋게 시간을 딱 맞춰야 볼 수 있겠구나 싶더라구요.
      하도 예뻐서 한참을 이 앞에서 사진을 찍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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