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Photo by Kim Dong Won
능동 어린이대공원에서

여름이 가고 가을이 왔어요.
어제는 능동에 있는 어린이 대공원에 갔었죠.
여기저기 낙엽이 떨어져 있고,
곱게 색깔에 물들어 있더군요.
감나무에선 감이 그 진홍의 빛깔을 점점 더 진하게 익히고 있었구요.
매년 시월이면 우리가 어김없이 맞이하던 바로 그 가을이, 그곳에 있었어요.
음, 가을 정취는 좋긴 한데,
그 정취에 취하면 사람의 마음이 너무 가라앉는 경향이 있어요.
그래서 가을을 좀더 달리 생각해 보기로 했어요.
이건 사실 그녀와 함께 10월 7일, 남한산성에 갔을 때
이미 마음에 담아갖고 온 생각이죠.
그건 바로 여름을 색의 전령으로 생각하는 거예요.
근데 여름은 좀 심보가 고약해요.
갖가지 화려한 색은 꽃들에게만 나누어주고,
나뭇잎과 열매에겐 오직 초록만 나누어줄 뿐이죠.
그래서 온여름내 나뭇잎과 열매는 그저 초록밖에 달리 색을 가질 수가 없었어요.
그러다 가을이 오죠.
가을도 색의 전령이예요.
색의 전령이 여름에서 가을로 바뀌면
여름내내 펼쳐든 손바닥에 그저 초록만 가득했던 나뭇잎에
노랗고 빨간 갖가지 색이 배달되죠.
그럼 나뭇잎들은 서서히 그 색으로 물들어가기 시작해요.
가을 바람이 한번 불 때마다 그렇게 나뭇잎에 색들이 배달되는 거예요.
과일도 마찬가지죠.
여름내내 오직 초록빛 분칠로 지내야 했던 과일들에게
가을에 온 색의 전령은 갖가지 색을 나누어주기 시작하죠.
그러면 감은 드디어 볼에 진홍빛 색조 화장을 할 수 있게 되는 거예요.
생각해 보세요.
작은 손톱에 봉숭아 물을 들였을 때의 그 즐거움을.
그러니 가을이 와서 색의 전령으로부터 노랗고 빨간 예쁜 색을 건네받고,
그 색으로 온몸이 물들었을 때,
나뭇잎은, 또 갖가지 열매들은 얼마나 즐거웠겠어요.
그러니 가을은 봉숭아 물을 들이듯 나뭇잎과 열매들이 색에 물들고,
그래서 즐겁기 그지없는 계절이예요.
손톱이 조금조금씩 자라고, 그러면 손톱에 들인 봉숭아 물도
마치 나뭇가지에서 나뭇잎이 하나둘 떨어지는 것처럼 사라져 버리겠지요.
하지만 그때까지는 물든 손톱을 보며 즐겁지 않겠어요.
그래서 그런지 남한산성에 오를 때나, 어제 대공원을 거닐 때,
괜스리 마음이 설레면서 즐겁더라구요.

Photo by Kim Dong Won
능동 어린이대공원에서

6 thoughts on “가을

  1. 역쉬!
    동원님 카메라에 담아온 사진은 증말 예술이네요.~
    그런데..이렇게 아름다운 계절에..나는, 허헉^^!
    제마음은 아직 덜 익은 땡감..ㅋㅋ..동원님의 좋은글과 고운 사진 잘보았습니다.

  2. 제가 가을을 좋아하는 이유가 그 설레임 때문이에요.
    가을 산에 오르다보면 쉴새없이 감탄사가 나와요.
    꽃의 아름다움을 볼때와는 또 다른 설레임.^^
    고등학교 몇학년때인지는 모르지만 서오릉의 단풍 나뭇가지를 붙잡고
    찍은 사진이 있었어요. 그 사진의 저는 참 수줍으면서도 행복해보였죠.^^
    그 뒷편의 나무들은 눈부신 가을빛이었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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