찍는 사람과 그가 본 풍경 – 평창 선자령에서

설악산, 월악산, 치악산, 소백산, 그리고 가까이는 대관령 옛길까지,
그동안 거의 모든 여행을 혼자서 다녔다.
그러다 요즘은 항상 그녀와 함께 여행길을 나서고 있다.
사진을 찍으러 가는 여행이어서 보통은 누군가를 동행하면 크게 불편했다.
곁에 있어도 없는 듯한 동행이라면 모를까,
그렇지 않은 경우엔 항상 혼자가 편했다.
게다가 그녀는 체력도 나를 따라오기에 무리가 많았다.
집앞에서 넘어지면 턱쯤에 걸리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가까이 있는 검단산을 오르다
중턱을 갓넘어서선 그녀를 먼저 돌려보낸 경우가 두번이나 있었던 것 같다.
사실 난 산을 오를 때의 걸음이 빠르지 않다.
사진을 찍는다는 것은 찍을 대상을 유심히 살피고 골라내는 것이 그 첫순서이기 때문에
나는 걸음을 천천히 옮기며 많은 것을 살피는데 주력하지
산의 정상을 빨리 오르는데는 별로 관심이 없다.
그래서 보통 사람들이 산을 오르고 내려오는 시간의 두 배 이상을 허비한다.
그런 나를 쫓아오지 못했으니 그녀의 체력이 크게 약했던 것은 분명하다.
그러던 그녀가 요즘은 보통 사람들처럼 나를 앞서 산을 올라간다.
또 같이 간 시간을 똑딱이 카메라와 함께 하며 나름대로 기록하고 즐긴다.
그녀가 카메라로 사진을 찍을 때, 그녀는 종종 나를 주제로 삼곤 한다.
10월 3일, 함께 평창의 선자령에 갔을 때도 그녀는 내 사진을 몇장 챙겼다.

Photo by Cho Key Oak

선자령을 올라갈 때 봐둔 바위가 하나 있었다.
올라가는 길은 그 바위의 곁을 지나가는 길이 아니었다.
나는 멀리 위쪽으로 보이는 바위를 바라보며
내려오는 길에 함께 할 것을 약속했다.
내가 내려오는 길에 그 바위에 올랐을 때,
그녀가 내 모습을 찍었다.
이런 사진은 사진이 멋있는 것인지,
아니면 내가 멋있는 것인지 아주 헷갈리게 만든다.

Photo by Cho Key Oak

바위는 육중하다.
바위가 육중할수록 그 위로 올라선 나는 새털처럼 가벼운 느낌이 든다.
바위 위에선 그래서 불안하다.
새털처럼 금방이라도 날려갈 것 같아서.
우리가 높은 바위 위에서 불안한 것은
그 위에선 우리가 새털처럼 가볍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Photo by Kim Dong Won

그녀가 나를 찍고 있을 때,
내가 그 바위 위에서 찍은 사진.
횡계 방향의 풍경이다.

Photo by Kim Dong Won

사실 내 눈을 사로잡은 것은
횡계 방향의 풍경이 아니라
멀리 보이는 산의 윤곽이었다.
나는 산이 파도처럼 일렁이고 있는
그 저녁의 어슴프레한 실루엣이 좋았다.

Photo by Kim Dong Won

그러나 내가 바위 위에 올라가서 찍으려 한 것은
사실은 이 사진이었다.
바로 멀리 아래쪽으로 내려다보는 산길이다.
우리는 올라갈 때 저 길에서 옆으로 새어나가
평탄한 숲길을 따라 선자령으로 올랐다.
산길은 대부분 숲이 감추고 있어
우리는 산길을 가면서도 그 길을 내려다 볼 수 있는 경우가 드물다.
우리가 높이를 확보하면 길이 보이는 것이 아니라
그냥 나무가 가득한 숲이 보일 뿐이다.
그런데 가끔 우리가 지나온 길이 저만치 아래쪽에 드러날 때가 있다.
나는 그런 경우를 자주 보지 못했다.
검단산에서 그런 경우를 한번 보았고, 이번이 두번째이다.

Photo by Kim Dong Won

산길은 숨겨져 있다.
나무들 속에, 꽁꽁.
그러나 길의 숨바꼭질은 너무도 허술해서
숲의 어디에 숨어있어도
사람들이 오가며 다져놓은 흔적을 따라가면
금방 찾아낼 수 있다.

Photo by Kim Dong Won

바위 위에 있을 때 살펴보니
바위의 한쪽 구석이 움푹파여 있었다.
왜 저곳만 저렇게 둥글게 파인 것일까.
헤어지기 싫은 빗물이 저곳에 고여
조금이라도 더 오랫동안 부등켜 안고 지내려 했던 것일까.
자연으로 발걸음을 하면 가끔
바위 위에 파인 작은 돌웅덩이도 그 연유가 궁금해지곤 한다.

그녀는 나를 찍고,
나는 횡계의 풍경을,
저녁 무렵 푸르게 일렁이고 있는 산의 물결을,
내가 지나왔던 산길을,
그 길의 허술한 숨바꼭질을,
그리고 바위의 작은 돌웅덩이를 찍었다.

그녀가 나를 찍고 있을 때,
사실은 나를 찍고 있는게 아니라
내가 찍고 있던 그 모든 풍경을 나에게 담고 있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갑자기 그녀가 찍은 내 사진을 보니
그날 내가 찍던 풍경으로 내가 꽉차는 느낌이었다.

11 thoughts on “찍는 사람과 그가 본 풍경 – 평창 선자령에서

  1. 김작가님, 안녕하십니까? 강영석 입니다.
    추석 명절은 잘 지내셨는지요.
    한강에서 가끔 뵙곤 하는 두 분 부부는 친구인듯 하면서도 애인같고..
    사모님 잘 계시지요?

    시원한 가을 하늘을 보여주시는 ‘푸른 하늘에 물들다..’
    전남 순천만 사진에 넋을 잃고 그만
    허락없이 저의 블러그에 옮겨감을 용서하여 주십시요.
    두고 두고 잘 감상하겠으며 폰번호를 알려주신다면
    제가 호프 한 잔 쏘겠습니다 ^^

    1. 네… 덕분에 잘 지내고 있어요.

      요즘도 달리기 계속 하시지요…
      저는 요즘 손목이 좀 아파서 자전거 타러 못가고 있어요.
      손목이 좀 나아지면 또 자전거 타러 한강 가야지요.

  2. 풍경도 멋지고 김동원님도 멋지세요. 확실히!!^^
    뭔가에 몰두해 있는 모습, 그것이 아름다운 풍경위에서일때 더 빛을 발하나봐요.
    통통이님은 그걸 놓치지 않고 사랑을 담아 찍으신듯.^^
    또 한번 천생연분이 떠올라요.^^

    1. 동네의 낮은 산도 못올라가더니만 나를 따라서 설악산을 가겠다고 하네요.
      오늘은 예전에 구해놓고 못입고 있던 청바지를 입고 아르바이트 나갔어요. 살이 빠져서 그 바지를 입을 수가 있다고 하네요. 갑자기 계속 속을 썩여야 하는지, 잘해줘야 하는지 헷갈리네요.

    2. 그럼 곧바로 다시 살찌는 거 아냐?
      살찌면 건강에도 안좋다는 데… (고양이 쥐생각하기)
      또 살찌면 산에 올라가는 것도 힘드는데…
      날씬해 지니까 보기에는 좋더라. 옷맵시도 나고.

    3. 한때 살좀 빼라고 잔소리한 적이 있었는데
      잔소리는 전혀 효과가 없더니
      속을 한번 썩였더니 곧바로 빠지던 걸요.

      오늘은 비올 것 같더니 또 날이 개는 것 같네요.

    4. 어느 여름인가 소매없는 티를 입고 있었는데
      마침 텔레비전에서 유도 선수가 나온 적이 있었어요.
      유도 선수 한번, 나 한번 쳐다보더니
      와~ 유도 선수나 해라~ 그러더라구요^^

      그래도 꿋꿋하게 이 몸을 유지했는데…ㅋㅋ

      살이 찌면 사람들이 왜 이렇게 살쪄라고 물으면
      남편이 넘 잘해줘서요,… 호호
      살이 빠지면 왜 이렇게 빠졌어… 그러지요.
      그럼 전 또 남편이 넘, 넘, 넘, 잘해줘서요… 라고 한답니다…
      그러니 넘, 넘, 넘, 잘해주고 살빼는 게 낫지 않을까요.후후

      바둑이님 고마워요. Goooooooooood 이어요~^^

    5. 무슨 속을 썩이셨을까 궁금.^^
      속썩이지마세요.^^
      남편들은 있죠 어느날은 천국으로 데려가기도하고
      어느날은 또 한없이 추락하는 지옥으로 데려다놓기도하더군요.
      엄청나게 미울때도있고 또 가끔은 한없이 안쓰럽게 느껴질때도 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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