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일의 을지로 골목은 한산하기 이를데 없다.
골목으로 들어가는 사람도 거의 눈에 띄지 않고
골목을 나오는 사람도 보기가 어렵다.
인적이 없으면
그런 곳으로는 걸음을 들여놓기가 쉽지 않다.
우리는 종종 사람이 있으면
사람이 있다는 사실만으로
마음의 긴장을 푸는 경우가 있다.
사람이 가면 나도 따라서 가보게 되고,
사람이 보이면 그제서야 그곳을 기웃거리게 된다.
하지만 일요일의 을지로 골목은 사람이 아주 뜸하다.
때문에 큰길에서 들여다보면 그곳 어딘가에서 사람들이 모여
맥주를 마시고 있으리란 상상을 하기가 쉽지 않다.
밤에는 더더욱 그렇다.
밤의 을지로 골목은 걸음을 성큼 들여놓기엔
약간 짙다 싶은 어둠으로 무장을 하고 있다.
밤도 낮에 방불하는 이 화려한 조명의 도시에서
그런 짙은 어둠은
이곳에는 사람이 없어라고 우리에게 일러주는
친절한 빛의 언질이다.
빛이 그렇게 언질을 주면
아무도 그 골목으로 걸음을 들여놓지 않는다.
그런데 그런 곳에 꽤 괜찮은 맥주집이 있고,
또 단순히 먹을 것만 내놓는 것이 아니라
그냥 그 집에 들어가 앉는 것만으로
우리를 훌쩍 잃어버린 옛시절로 데려다주는
마법같은 분위기의 식당겸 술집들이 있다는 소문을 들었다.
도시는 세련된 곳이다.
그런데 세련미가 넘칠수록 우리는 친근감을 잃는다.
세련된 것들은 눈을 미혹하긴 하지만
저것들도 과연 체온을 갖고 있을까를 의심하게 만든다.
도시는 세련된 곳이지만
아울러 삭막한 느낌이 드는 것은
그곳에서 사람의 체온이 사라졌다는 느낌이 한몫할 것이다.
특히 도시에서도 그렇게 세련된 풍경을 자랑하는 곳은 큰길쪽이다.
그런데 비록 물어물어 알아서들 찾아가야 하지만
아무도 있을 것 같지 않은 그 골목 안에
우리들이 이 도시에서 사라졌다고 생각한 사람의 체온이
그대로 보존되어 있는 곳이 여러 군데 있다는 소문이 들렸다.
그 소문에 홀려 정말 이런 곳에 맥주집이 있을까를 의심하며
밤의 을지로 골목으로 걸음을 들여놓았다.
약간 짙다 싶은 어둠 때문에 다소의 긴장감마저 감내해야 했다.
걸음에는 주저스러운 마음 반, 기대감 반이 딱 절반씩 뒤섞여 있었다.
그러나 조금 들어가자 주저스럽던 마음을 깨끗이 지워버리고
절반의 기대감을 넘치게 채워
나를 반겨준 맥주집 하나를 만났다.
어떻게들 알고 이곳을 찾아오는 것일까.
사람들은 띄엄띄엄 계속 이어졌다.
처음 찾는 내가 메뉴판을 뒤적거려야 했던 것과 달리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리에 앉으면서
곧바로 시킬 안주와 술의 이름을 줄줄이 꿴다.
한두 번 찾아온 사람들이 아니란 걸 한눈에 알 수 있다.
그곳에 앉아서 술을 마셨다.
술을 마시면서 보니
그곳을 찾아온 사람들은 술마시러 온 사람들이 아니라
이 도시가 잃어버린 체온을 찾아 이 골목을 들어온 사람들 같았다.
이 도시가 잃어버린 체온이
이 도시의 골목 어딘가에 아직 그대로 보존되어 있었다.
이제 도심으로 나가면 큰길을 버리고 작은 골목들을 기웃거려 봐야 겠다.
그러다 좋은 술집을 만나면 그곳에서 술을 한잔 하곤 해야 겠다.
2 thoughts on “을지로 골목의 맥주집”
흐힛..
언제 기회가 와서 ..선생님하고 ..맥주 마시면서 글쓰기와 사진에 대해서 말씀 듣고 싶어집니다.ㅋㅋㅋ(가능할까요?)
전 사진은 잘 몰라요. 그냥 글쓰기의 보조 수단으로 활용하는 정도라서..
문학 비평이 제 본업이라 문학 이론이나 미학 이론들만 공부를 하고 사진은 그냥 거의 본능적으로 찍고 있습니다. 사진을 찍는다기 보다 카메라를 이용해 세상을 읽고 다닌다는 편이 맞을 거예요.
그냥 말씀하시는 걸 제가 듣는 편이 나을 것 같아요. 블로그 보니 사진에 대해 많이 생각하시는 것 같던데요, 뭘.
최근에 올라간 사진에 관한 번역 텍스트는 사진 공부하는 사람이 하도 어려워해서 제가 도와주려고 옮겨본 것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