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원리 풍경

Photo by Kim Dong Won
2013년 6월 16일 경기도 양평의 신원리에서

누군가 그랬었다.
농촌은 그 풍경만으로도 지킬 가치가 있다고.
6월초의 농촌을 지나면 그 말을 실감한다.
부용산 자락에 자리잡고 있는 양평의 신원리는 이맘 때쯤
모내기를 끝내 이제 초록을 한뼘 정도 채운 논들로 사람들을 맞는다.
논의 가운데는 나무 한그루가 서서
반복되는 논과 논의 사이에 강조점 하나를 찍는다.
부용산 자락을 타고 내려온 작은 야산에는 밤꽃이 한창이다.
바람이 불 때면 밤꽃 향기가 후욱 콧속으로 날아들어
후각 세포를 강하게 자극하기도 한다.
하늘은 산의 윤곽을 따라 푸른 빛을 맞대
색감의 구성을 보기 좋게 맞추어준다.
구름은 오늘 정신사납게
그 하늘을 이리저리 뛰어다니고 있다.
이곳에서 농사짓고 사는 사람은
사실은 그냥 여기서 농사만 짓고 있는 것이 아니라
이곳의 풍경을 지키고 있다.
야산을 경계로 마을을 1리와 2리로 나눈 신원리는
야산을 넘어가면 또다른 풍경을 선물한다.
모내기를 한 논에는 물이 차있다.
논에 물이 차자 산그림자가 논두렁을 넘어와
슬쩍 논으로 몸을 눕힌다.
모가 자라 벼가 되고 나면
산그림자는 그때쯤 볏속으로 몸을 숨길 것이다.
그렇게 모내기 철에 논으로 몸을 눕힌 산그림자는
익어가는 벼와 함께 논에서 한철을 보낸다.
산그림자가 논을 떠나지 않는 것은
자라는 벼에 산의 기운을 보태주기 위해서이다.
그러니 신원리의 논에서 자란 벼들은
낮지만 그 또한 산이어서 흔들림없는 우뚝함으로는
여느 산과 다를바 없는 부용산의 기운을
고스란히 이어받고 자랄 것이다.
아마 가을쯤 벼를 거둘 때
그 산그림자의 기운도 볏속에서 고스란히 익어
함께 따라올지도 모른다.
신원리의 농부는 단순히 쌀농사를 짓는 것이 아니라
산그림자로 오는 산의 기운을 쌀에 담는다.

Photo by Kim Dong Won
2013년 6월 16일 경기도 양평의 신원리에서

4 thoughts on “신원리 풍경

  1. 논엔 물이 차고, 하늘엔 구름이 찬 게 참 보기 좋은 동네 풍경이네요.
    양평 청계산과 이어지는 부용산은 이름이 좀 있어 보이는 것과는 달리 나즈막한 게
    이 동네 사람들이 마실 삼아 다닐만한 놀이터 같아 보입니다.

    1. 길을 잘못들어 부용산에 오르긴 했지만
      이 산을 넘어 신원역까지 걷는 것도 그리 나쁘지 않더군요.
      산에 주된 등산로가 있는데 그걸 계속 걸으면 물소리길하고 만나고
      그 다음엔 물소리길로 신원역에 가면 되는 듯 했습니다.
      몇번 다닐만한 곳이었습니다.

  2. 저 풍경이 벼를 익게 하여 쌀 속에 깊숙히 강조점을 배여들어 밥을 먹고
    그 밥속의 풍경이 우리 유전자 속에 기록 되는 것이겠죠.
    그럼요..풍경을 동경하게 되더군요.
    건강하시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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